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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연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우리 사회가 ‘조국’ 이슈에 묻혀 있었던 지난 한 달 동안에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준비는 진행형이었다. 지난주 우익성향이 강한 정치가들을 중용한 개각을 단행한 것을 보면, 아베 정부의 입장은 더 강경해진 것으로 보인다. 개각을 단행하면서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외교 자세와 관련해 "새로운 체제하에서도 먼지만큼도 안 바뀐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말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이후 평균 3개월간 일본정부는 1천100 여 개 품목에 대한 수출심사를 하게 된다. 향후 문제는 ‘군수전용이 가능한’이란 문구를 이용해 민간수요 대상의 품목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자의적인 해석을 내려 수출통제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한일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전망이 가능하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 7월 말 개최되는 도쿄올림픽을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는 아베 정부가 이번 사태를 적어도 올림픽까지 끌고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올림픽 이전에 갈등이 수습된다면 우리 경제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까지 한일 갈등이 장기화돼 일본의 경제보복 강도가 높아진다면, 우리의 제조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갈등의 조기 수습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보다 안정적인 기술구조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가 풀리더라도 향후 한일 관계의 여하에 따라 일본이 또다시 기술적 우월성에 입각한 부당한 경제보복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나 휴대전화, LCD(액정표시장치) 등에 있어서 한국은 일본을 앞섰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들 제품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소재, 부품, 장비에 있어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해 왔다. 이 부분을 노린 것이 이번 일본 경제보복의 본질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양국 간에 외교적으로 수습되지 않는 한 일본은 우리의 취약한 기술적 고리를 노리고 경제보복 강도를 높일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 방안 수립에 분주하다. 두 가지 각도에서 대응 방안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수입처 다변화다.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소재, 부품, 장비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우리나라는 CNC(컴퓨터 수치제어) 공작기계 핵심 부품인 CNC 시스템의 91%를 일본에서 수입했는데 그 중 85%가 일본 화낙(Fanuc)사의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본 경제보복을 계기로 우리 기업들은 CNC시스템의 수입처를 독일 지멘스(Siemens)사로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하나의 대응 방안은 기술의 국산화다. 사실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국산화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이 요구된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돼 있는 일부 소재 품목에 대해서는 조만간 기술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핵심 소재 기술로 들어가면 몇 년 안에 일본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며, 그야말로 몇 십 년 노력을 해야 가능한 분야가 많다.

 소재는 주로 화학이나 신소재 관련 R&D를 통해서 개발되는데 그 근간인 기초과학 수준에 있어서 일본과 우리의 격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23 대(對) 0, 이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수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의 격차다. 결국 소재 기술에 있어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초과학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우리의 기술적 대응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 따라서 일본이 경제보복을 하더라도 금방이라도 기술 국산화가 될 것처럼 진실을 왜곡해서, 결과적으로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내키지 않더라도 일본과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한일 갈등을 풀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일본에 의존했던 기술을 국산화하는 과제는, 정권 차원을 넘어 긴 안목으로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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