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도시’ 여주에서 지역 청소년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아동을 대상으로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경기도교육청 꿈의학교 프로그램이 운영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인 ‘여주사람들’이 만든 ‘책과 함께’다. 우리 동네에 사는 책언니·책오빠와 함께 책놀이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이 책을 읽은 다음 그 책을 갖고 어린이들과 노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단순히 책과 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청소년이 어린이들과 책으로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내는 과정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문화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청소년 문화기획자로 한 걸음 성장하게 된다.

▲ 학생들이 강사 초청 ‘책 놀이 기획자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 책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 프로그램의 운영주체는 ‘여주사람들’이다. 이 단체는 여주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모임이다. 주된 활동 목적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민주시민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2014년 처음 구성됐으며 SNS에서 활동하면서 가입자를 2만5천 명이나 모을 정도로 여주지역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책과 함께’는 2017년 도교육청에서 꿈의학교 승인을 받아 시작됐다. 꿈의학교는 운영 형태에 따라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학교’와 ‘학생이 만들어 가는 꿈의학교’, ‘마중물 꿈의학교’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학교’는 어른이 만든 프로그램에 학생이 들어와서 활동하게 한다. ‘학생이 만들어 가는 꿈의학교’는 학생이 자체적으로 꿈의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주사람들’은 첫 출발을 전자로 시작해 후자로 꿈의학교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2009년 스타홀릭을 시작으로 꿈의학교로 발전해 활동하게 됐다. 스타홀릭은 여주지역 각 학교에서 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만든 연합동아리다. 중고생들이 활동하면서 시민과 대중들에게 별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등 시민 관측활동을 벌였다.

 ‘여주사람들’은 2016년 ‘스타홀릭’이 꿈의학교로 선정돼 운영하고 있으며, 이듬해부터 ‘책과 함께’도 꿈의학교로 승인을 받았다. ‘책과 함께’가 모태가 돼 올해부터는 또 다른 꿈의학교인 ‘책읽는경강선’이 파생돼 나왔다.

 이 3개의 프로그램은 언뜻 보면 다른 활동처럼 보이지만 지역 청소년이 재능기부를 통해 지역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이 꿈의학교에서 활동한 청소년들은 매월 한 달에 한 번씩 여주에서 성남 판교까지 가는 전철에서 특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요즘에는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거의 스마트폰을 한다. 그런데 이 꿈의학교 아이들은 전철에서 책 읽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기 위함이다.

 판교에서 여주까지 편도로 40분 정도 걸린다. 파티를 하면 드레스코드가 있듯이 ‘책읽는경강선’에도 북코드를 도입했다. 이는 곧 책의 주제다. 한 달에 한 번씩 책 읽는 주제를 정한 뒤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판교광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왔다.

 주제에 맞는 책을 읽고 판교광장에서 그 주제에 맞는 플래시몹을 한다. 가령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자는 메시지를 보여 주기 위해 일회용품 관련된 책을 읽은 뒤 텀블러로 물 마시는 플래시몹을 벌였다.

 이렇게 ‘책과 함께’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지역사회에서 삶을 환기시켜 주는 역할을 자긍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 놀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청소년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지역사회와 융화된 꿈의학교

 올해 활동하는 학생은 38명이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참여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이번 여름방학 동안 병설유치원 6개소에서 모둠을 나눠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책 읽어 주는 활동을 18회 진행했다.

 ‘책과 함께’ 운영진은 지역 특성상 관할 면적이 넓은데다 대중교통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는 곳도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병설유치원을 직접 다닐 때 불편하지 않도록 실어서 데려다 주는 역할을 맡았다.

 고등학생들은 유치원 원아들에게 소개해 줄 그림책을 읽고 이에 맞는 활동을 기획, 병설유치원을 찾아가 캠프를 해 줬다. 책을 읽고 책 주제에 맞는 놀이를 진행한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놀잇거리를 찾고 기획해 내는 게 청소년 문화기획자 과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책을 읽고 놀이하는 데서 프로그램이 끝나는 게 아닌 이 책을 만든 글작가·그림작가를 초청해 만나는 자리까지 만들어 낸다. 일반 시민 및 어린이 등 누구나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 6월 황학산수목원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낮은 산을 등반하는 어울림 등반대회를 열었다. 관내 병설유치원 300명 정도가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책과함께’ 학생들이 책으로 노는 활동을 만들었다. 책으로 여는 6개 코스를 만들어 등반하는 중간 중간에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코너였다. 부모들의 호응을 얻었고 지역교육청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이를 계기로 지역 병설유치원에서 다른 프로그램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책과 함께’에 참여하는 고등학생들은 어쩌면 자신이 소개하는 책이 한 어린이 인생의 첫 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신중하게 그림책을 선정하려고 애쓴다.

▲ 유치원 등반대회에서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는 어린이들.
 # 애향심까지 쑥쑥 키워 줘

 이달 말께 ‘책과 함께’ 청소년들은 책잔치는 물론 낭독회도 준비하고 있다. 낭독회는 1년에 4번 정기적으로 연다. 이미 두 번 진행됐으며, 나머지는 김장철에 장을 보러 올 때 할 예정이다.

 ‘책과 함께’가 김장철에 이러한 행사를 진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김장철에 시장으로 장보러 오는 시민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는 ‘책과 함께’ 운영주체인 여주사람들이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인 ‘토닥토닥도서관’이 여주지역 대표 전통시장인 한글시장 한복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도서관은 시장 상인회의 도움으로 공간을 마련했다. ‘책과 함께’ 꿈의학교 공모사업을 통해 청소년들이 프로그램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자주 방문하면서 소비가 이뤄지고, 아이들이 기획해 낸 활동에 어린이와 부모가 같이 온다. 이곳 작은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동안 부모들은 한 시간 반 정도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장을 본다. 서로 윈-윈(win-win)하는 전략을 잘 짠 셈이다.

 시장에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과 같은 프로그램을 열 때는 시장 상인들도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해 가게에 들어가서 하는 활동을 만든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전통시장을 친숙하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면 부모들도 따라나오면서 가게 매상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다.

 ‘책과 함께’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최종 방향은 아이들이 성장한 다음에 여주를 뜨고 싶어서 안달하는 삶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이곳 꿈의학교 상주활동가 2명과 청년활동가 6명은 내가 나고 자란 이곳에서 매우 재미나게 어른이 돼서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심어 주려고 한다.

 이러한 목표는 조금씩 실현돼 가고 있다. 청년활동가 6명이 모두 ‘책과 함께’ 책언니·책오빠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 꿈의학교에서 참여하면서 책언니·책오빠로 활동했던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고 취업했지만 이곳 도서관에 와서 활동하고 있다. 20대 초반 청년들이다. 실용음악과, 물리치료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청년이다. 책으로 하는 진로와는 전혀 다르다. 책으로 하는 활동에 재미를 느껴서 이렇게 남은 것으로 ‘책과 함께’ 프로그램 운영진은 판단하고 있다.

 ‘책과 함께’ 김동헌 상임활동가는 "나도 나중에 ‘책과 함께’ 꿈의학교에서 만났던 책언니·책오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해서 그 아이가 커서도 여주를 자랑스러워 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그동안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열심히 활동에 임해 준 덕분에 처음에는 아이들은 오고 싶어 하는데 엄마들이 못 오게 했으나 요즘에는 못 가게 하는 엄마들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대 기자 pjd@kihoilbo.co.kr

사진=시민단체 ‘여주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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