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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인 인천문인협회 회원
대로변을 걷는 것보다 골목길을 걷는 것이 요즘 들어 왠지 편안하다. 힘이 빠져 "아휴∼"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개나리 담장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고양이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불볕더위도 아닌데 무척이나 덥다. 어머니로 인한 맘고생 때문에 몸이 허해진 것일까? 요즘은 조금만 움직여도 진땀으로 온몸이 끈적거린다. 그늘 밑을 찾을 생각도 없이 뜨거운 땡볕 아래 한참을 멍하니 서서 허공을 응시한다.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선명하다. 입관할 때 하얗게 분단장한 모습이 나를 미치도록 슬프게 한다. 심장이 떨려온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아 그만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어머니께 지은 죄를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가슴앓이에 24시간조차 모자란다.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양반은 골목길을, 크게 될 인물 역시도 골목길을 될 수 있는 한 걸으면 아니 되느니라."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자주 말씀하셨지만, 큰길이 싫고 사람들도 피하고 싶다. 하늘을 올려다볼 자신감도 잃었다. 잠깐 맘속으로 울고 있는데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대로변 가에서 두 할머니가 머리채를 잡고 심하게 싸우고 있다.

 "이거 놓으세요. 싸우지 마세요."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두 할머니는 힘이 없어 밀치지도 못하면서, 머리채만 움켜잡고 욕 싸움만 할 뿐이다. 민망할 정도로 듣기 거북한 욕을 해가며.

 정해져 있지 않은 구역 같은데, 두 할머니는 상자가 서로 자기 구역에 떨어져 있어 자기 몫이라 싸우는 것이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두 분 다 가난에 찌들어 보이는 모습이다. 지갑을 열어 천 원짜리 한 장씩을 드리니 얼른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키 작은할머니는 잽싸게 상자를 당신 손수레에 싣고 서쪽으로 가버린다. 키 큰 할머니는 분함에 못 견뎌 "미친 X!" 하고 거품을 문다. 다시 지갑을 열어 천 원짜리 한 장을 손에 꼭 쥐여 드렸다.

 그녀는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 떨어진 슬리퍼를 질질 끌며 힘겹게 손수레를 동쪽으로 끌고 조금 가다가 나를 향해 설레설레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두 할머니의 모습이 서로 다른 골목길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의 이글거리던 태양은 내일의 희망이 아니라 절망, 슬픔, 눈물 그 자체였다.

 가슴이 몹시 쓰리고 아프다. 고양이가 계속 슬픈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평생을 큰 괴로움 없이 살아온 어머니가 2년 반 동안 치매에 걸려 고통스러웠던 것처럼 저 할머니들도 한때는 행복하게 살다가 저렇게 폐지 줍는 삶으로 변해 버린 건 아닐까? 점점 늘어나는 폐지 줍는 노인들, 아! 어쩌면 좋을까.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중증 치매로 요양원에서 홀로 돌아가신 어머니. 뼈만 앙상히 남아 껴안기도 조심스러운 어머니를 나도 모르게 힘껏 껴안아 보고 온 4일 만의 일이었다. 임종을 지킨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그 옛날 고려장이 있었다더니 내가 어머니를 고려장 한 것이다 싶어 한동안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요양원에 계셨다는 말을 선뜻 하지 못했다. 일주일만 있으면 어머니 첫 제사다. 생전에 좋아하셨던 다알리아꽃을 준비하고픈 마음에 꽃가게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이 땅에서 이런 가슴 저미는 일이 언제쯤 없어지려나.

 새삼스럽게 잊고 있었던 두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설움에 목 놓아 울던 그 골목길에서 아직도 폐지를 줍고 있을까. 또한, 그날 나를 빤히 쳐다보았던 고양이가 바로 내 곁에 있는 것만 같다. 다시 가슴에 통증이 인다.

  ▶ 필자 : 2009년 에세이스트 신인상 수상/갯벌문학회·내항문학회·에세이스트 회원/저서『밤비에 자란 사람(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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