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성명학에서 이름은 자신의 영과 육신을 움직이게 하고 후천적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사람이 태어나 부여받는 사주는 선천적인 운명으로 평생에 걸쳐 삶의 형질을 설계하고 도면화해 처음부터 타고난 운명에 따라 살아가지만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대표하는 구분과 식별을 위한 기표로서 후천적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음양의 결정체라 보고 있다. 예부터 자식이 태어나면 이름을 아무렇게나 짓지 않고 아이가 가진 사주의 선천적 명운을 고려해 작명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성명학에 따라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학식이 높거나 한문학에 뛰어난 이웃에게 작명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순 우리말 이름을 사용하는 바람이 불면서 이쁘고 아름다운 순 우리말 이름이 유행처럼 등장하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그 유행에 편승했다. 아름답고 이쁜 우리말로 이름을 짓고 또 부르기 좋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최근 순 우리말로 지어진 이름을 바꾸려고 법원에 개명을 신청한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지난 5년간 법무부에 접수된 전체 개명 신청건수는 98년에 2만4천여건에서 지난 8월말에는 2만9천여건을 매년 10% 가량씩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남들이 부르기에도 민망한 이름들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상당수가 순 우리말 이름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작명을 함에 있어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주위의 사람들이 이름을 듣고 이쁘다는 칭찬을 하겠지만 막상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생활을 할 때면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하겠지만 여전히 한자이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순 우리말 이름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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