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마니아들은 여전했고 서태지와 록을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을 매서운 찬바람도 꺾을 수는 없었다.
 
서태지가 직접 기획하고 참가한 록 페스티벌 `2002 ETPFEST'이 지난 26일 오후 2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장장 7시간30분간 서울 잠실 보조경기장에서 펼쳐져 한·미·일 3국의 10개팀이 열띤 무대를 선사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우선 무대규모가 관중을 압도했다. 총 비용 30억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공을 들인 무대는 가로 75m 세로 31m로 양옆의 정사각형이 스테이지를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총 3개의 대형스크린을 설치, 무대상황과 미리 준비된 영상을 담아 공연장의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오후 8시50분부터 시작한 서태지의 무대. 무려 6시간 이상 그를 기다린 팬들은 20m 높이의 4개의 불기둥과 함께 짙은 청색의 재킷에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 아래에서 홀연히 등장한 서태지를 발견하고 `태지'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대경성'과 `인터넷 전쟁'을 정통 록 사운드에 실어 부른 그는 이어 “오랜만에 직접 만날 수 있어 반갑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냈다.
 
`환상속의 그대', `컴백홈' 등 귀에 익숙한 `서태지와 아이들'시절의 히트곡을 불러 친근감을 이끌어낸 뒤 10여m로 솟아오른 폭죽과 함께 `난 알아요'를 부를 때는 10년전 데뷔 때의 앳된 모습이 담긴 뮤직비디오를 멀티비전에 담아 옛추억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시대유감'을 부를 때는 최근 게재된 서태지 및 이번 공연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스크린에 담아 언론에 대한 유감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무대 연출의 히든카드로 준비된 것은 무대의 양 옆에서 쏘아올린 수백개의 은색리본. 노래와 함께 하늘을 수놓은 은색리본에 일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이어 공연 종료시간을 5분 남긴 밤 9시55분 엔딩송인 `take5'가 끝나갈 무렵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시에나 볼 수 있을 법한 대규모 불꽃축제가 시작됐다.
 
형형색색의 하늘을 수놓은 불꽃에 탄성을 자아낸 관중들은 10시가 넘어서야 질서정연하게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이에 앞서 6시간 넘도록 진행된 국내 그룹 피아, 리쌍, 디아블로, YG패밀리, 일본 록밴드 도프헤즈와 라이즈 및 미국의 스크레이프, 타미리 등의 공연에서도 록 매니아들의 열정적인 호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10개 팀의 릴레이 공연을 바탕으로 록 페스티벌이라 하기엔 서태지에게 너무 치우친 느낌이었다.
 
낮에 무대에 선 7개의 밴드들은 공연 시간 15∼20분에 낮인 관계로 제대로 된 조명 효과를 연출할 수 없었는데 반해 서태지의 무대에는 75분이라는 시간배정에 대부분의 연출과 특수효과도 집중됐다.
 
그러나 추운 날씨속에 7시간 이상을 서서 록의 세계에 흠뻑 빠진 관중들로부터 이 행사가 1회에 끝나지 않고 우드스탁 페스티벌 혹은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과 같이 국내의 정기적인 록 페스티벌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에는 해가 진 뒤 기온이 5℃이하로 떨어지는 등 강풍을 동반한 추위에도 불구, 2만5천여명이 입장해 대부분 7시간 이상 자리를 함께 해 성황을 이뤘다.
 
수서경찰서 소속의 180여명의 경찰과 앰뷸런스 3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고 다행히 사건·사고 및 부상자 없이 공연은 종료됐다.
 
그러나 오후 2시부터 줄을 서 기다리던 관객이 3시30분이 돼서야 입장하고 스태프의 정보부족으로 관중들에게 원활한 안내가 이뤄지지 못하는 등 일부 진행상의 미숙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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