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374-3 일대 일동-영중도로 확·포장공사 구간에서 기원후 2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형건물의 흔적이 확인됐다.
 
세종대박물관(관장 최정필)은 이곳에 대한 긴급조사를 실시한 결과 바닥 평면기준으로 길이 17.5m, 너비 8.2m의 긴 네모꼴(장방형) 대형 건물터 1기를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건물터는 동-서로 축이 긴 방향을 이루고 있으며 벽체 가장자리를 따라 불탄기둥이 박혀 있다. 지름 15㎝ 안팎의 통나무인 현존 기둥은 80~90㎝의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돼 있다.
 
집터 안쪽으로는 기둥 및 지붕시설을 이루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불탄 목재가 북쪽 벽을 따라 엎어져 있다. 동쪽 벽 주변에서는 불탄 흔적이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단단하면서도 특별한 무늬가 없는 소위 경질무문 토기와 격자무늬를 새긴 토기가 섞여 출토되고 있으며 네발 달린 짐승을 형상화했음이 분명한 동물 토우(흙인형)가 한 점 확인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길이 7.3㎝, 꼬리길이 2㎝, 다리 높이 1.7㎝인 이 토우는 머리가 떨어져 나가 어떤 동물을 나타내려 했는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나 발굴단은 돼지나 개 모양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토우는 경질무문토기와 같이 석영과 운모 조각이 많이 섞인 찰흙을 바탕흙으로 이용했으며 몸통과 다리, 꼬리 부분에는 손자국이 남아 있다.
 
바닥 평면 형태나 출토유물로 보아 이 대형 건물터는 풍납토성과 강원도 일대를 비롯해 한강·임진강 유역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집중 확인되는 별도의 입구시설을 갖춘 소위 呂(여)자형이나 凸(철)자형 집자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번 일동면 건물터에서는 별다른 입구시설은 찾지 못했다.
 
축조 시기는 풍납토성 발굴성과로 볼 때 기원후 2세기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풍납토성에서 이러한 집자리를 집중 발굴한 바 있는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呂자형, 凸자형 집자리 대부분은 입구시설을 집 몸체보다 높은 곳에 만들기 때문에, 후대의 경작지 조성이나 공사 등의 과정에서 파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呂자, 凸자형 건물터는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돌무지무덤(적석총)과 더불어 그 분포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 기록된 초기 백제 영역과 거의 겹친다는 점에서 최근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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