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서울 독립공원 내 위치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빨간 벽돌의 교도소 건물 안에 파란 죄수복의 죄수들이 보따리 하나씩을 품고 늘어서 있다. 간수의 입방 구호를 큰 소리로 복창하고 감방에 들어가는 죄수들의 표정이 싸늘하다.

서대문형무소 내 실재 감방을 배경으로 촬영이 진행 중인 이곳은 세계에서 제일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는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씨의 삶을 그린 홍기선 감독의 영화 「선택」(공동제작 영필름, 신씨네)의 제작현장이다.

「선택」은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했다 51년 유엔군 포로가 돼 수감된 뒤 전향서 쓰기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95년 45년만에 자유의 몸이 된 김선명씨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김선명역은 「둘 하나 섹스」의 남자주인공 김중기씨가 맡았으며 그에게 끊임없이 전향을 강요하는 교도관 오태식 역에는 「공공의 적」, 「아 유 레디?」의 안석환이 출연한다.

지난 10월3일 크랭크인해 현재 40%정도 진행 중인 이 영화는 이곳 서대문 형무소와 구 수도여고내에 지어진 교도소 내부 세트를 주배경으로 촬영을 하고 있다.

유난히 추운 날씨에 벽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라 한기가 없어지지 않는 촬영장이지만 홍감독이 10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며 4차례나 촬영이 무산되다 기획 6년여만에 힘들게 제작되는 까닭에 촬영스태프나 출연배우들의 표정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 밝은 편이다.

이날 촬영된 장면은 전향서를 작성하지 않는 죄수들이 독방에 들어가는 장면.독방생활은 주인공 선명의 전향에 대한 선택의 갈등이 절정에 달해가는 곳이다.

"자, 슛 들어갑니다. 양말 좀 벗어주세요" 맨발에 고무신을 신은 80여 명의 죄수역 엑스트라들은 감독의 OK사인이 떨어지자 햇볕으로 몰려 나오고 복도에는 김선명역을 맡은 배우 김중기만 남아서 힘들게 감정을 잡고 있다. 이어지는 신은 선명이 반평 남짓의 독방에 들어가며 독방생활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사상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장면이다.

주연을 맡은 김중기는 전대협 남북청년학생회담 남측 대표단장을 맡은 바 있는 학생운동권 출신 배우. 홍기선 감독이 장산곶매와 얄라셩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80년대 영화운동을 했고 오정옥 촬영감독도 「파업전야」의 촬영을 맡은 바 있어 배우, 감독, 촬영감독이 모두 운동권에 몸담은 경험이 있는 셈이다.

'꼭 있어야 할 영화'라는 사명감으로 뭉친 감독과 촬영스태프, 배우 등은 10억이라는 적은 제작비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촬영을 계속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하는 마지막날인 이날도 새벽까지 촬영이 이어졌다.

한편 이날 촬영장에는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의원이 방문, 감독, 출연배우 등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선택」은 11월말까지 촬영을 마치고 내년 봄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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