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쩔 수 없이' 통합 도산법안에 개인회생제를 삽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만큼 대량 개인 파산의 위험이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적지 않은 수의 신용불량자가 생겨난 상태에서 내년 예산은 긴축 기조로 편성됐고 그런 가운데서도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국민의 1인당 담세액이 사상 최초로 300만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게다가 지금의 저금리 상태가 마냥 지속될 수만도 없다. 이래저래 개인 파산이 늘어날 조건이 고루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당국이 지난 7월 개인 워크아웃제를 통해 구제할 대상을 30만명 가량으로 추산했을 정도니 이후에 사정이 더욱 악화된 상태에서 정부로서는 구제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와 일부 젊은이들의 무절제한 경제행위 등을 고려, 일종의 경제사면제도인 이 제도는 대다수 성실한 생활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신중하게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기업에 대한 워크 아웃 제도 시행과정에서 지적됐듯이, 부실기업에게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우량기업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부실을 치유하기 위해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필요한 정책일 수는 있으나 개인들로서는 불공평하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따라서 대량 개인 파산을 막기 위한 정책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행과정에서의 지나친 온정주의나 무분별한 구제 방식은 배제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환란을 겪는 과정에서 생겨난 생계형 신용불량자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국가적으로 구제조치를 취해줘야 할 것이다. 기업 도산과 정리해고 등으로 인한 대량 실업과정에서 생겨난 적지 않은 가장 실업자들과 장사가 안돼 대출을 받고 여전히 갚을 길이 막연한 소상인 등이 대상일 것이다. 반면 파산시켜 마땅한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부동산 투기 등 한탕주의에 빠져 금융기관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만성적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들, 도박 등에 빠져 완전히 셈이 흐려진 사람들이 그런 부류다. 일정수입이 있더라도 구제 대상에 포함시켜서는 곤란한 사람들이다. 이미 몇 차례 파산 절차를 밟았어야 할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 많은 개인 파산 대상자들 중에서 어떻게 옥석을 가리느냐는 것이다. 법적 절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일에 소요되는 인원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모든 대상에 대해 공평한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이런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도, 구제대상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를 굳이 이렇게 인기가 덜한 방향으로 시행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통합도산법 확정 및 시행시기가 정치적 변동기와 맞물려 있어 자칫 인기에 영합하는 쪽으로 흐르기 쉬울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필요하기는 해도, 이 제도의 도입 자체가 선심성을 띠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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