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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봉 경기본사
‘잠수함 속 토끼’라는 말이 있다. 과거 잠수함 내부의 공기양을 측정할 수 없던 시절, 선원들은 잠수함에 토끼를 태워 공기를 측정했는데 토끼의 호흡이 정상을 벗어난 후 6시간이 지나면 잠수함 내에 모든 산소가 소진된다는 데서 유래한 이야기다. 사전에 위험을 감지해야 하는 상황에 곧잘 비유된다.

 고양 벽제 목암지구 내 주택조합사업을 두고도 이상 징후가 포착돼 조합원들에 대한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주택조합사업은 토지주 또는 일반 시민들이 조합을 꾸려 시행사와 시공사를 선정해 주택을 마련하는 제도로, 성공적으로 시행만 된다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품이 없어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한 번 조합에 가입하면 탈퇴가 쉽지 않고 사업이 무산되면 조합원이 낸 분담금을 받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가 시행사가 일명 ‘먹튀’를 하면서 사기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양 벽제 목암지구에서 진행 중인 신안실크밸리 지역주택조합사업에서 ‘결손법인’인 ㈜에스디산업개발이 시행사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 사실이 본보 취재로 확인된 뒤, 일부 조합원들의 탈퇴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결손법인은 쉽게 설명해 ‘이익 없이 손해만 본 기업’으로 에스디산업개발은 무려 총부채 규모가 1천894억 원에 달했다. 사업을 이끌 능력이 부족한 업체가 시행사를 맡다가 사업이 지연되면서 조합원들이 막대한 추가분담금을 내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는 만큼 조합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고양시는 해당 기업의 재무 상태를 따질 필요 없다며 사업 실시계획은 물론 이 회사가 주도한 조합설립까지 인가했다. 해당 부지 내 분묘 문제와 승인 조건이었던 국도39호선 우회도로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기업과 공무원 간 유착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시의 도시주택국장을 지낸 A 전 일산서구청장은 지난 2016년 6월 명예퇴직 후 신안건설산업의 인허가 담당 임원으로 취업했다. 한 건축사는 이를 두고 "지역주택조합 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고양시가 껍데기만 있는 기업을 사업 시행사로 선정했다는 게 석연치 않다"며 "기업과 공무원 간 유착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지자체가 시행사의 재정건전성을 꼼꼼하게 따지지 않는다는 구멍 뚫린 행정 절차를 이용해 사업시행사들이 허울뿐인 회사를 앞세워 과장·허위광고로 조합원을 현혹하는데도 시가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본보의 심층 보도를 통해 고양시와 신안건설산업, 에스디산업개발의 ‘수상한 거래’를 알게 된 고양 벽제 목암지구 내 조합원들이 사업 무산의 위기를 느끼고 시공사와 시행사에 사실관계를 줄기차게 문의하고 있지만 이들 업체는 "아무 문제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조합원들의 탈퇴 요구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조합원들을 보호해야 할 고양시는 눈치(?)만 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해당 사업의 인허가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정당한 절차를 따랐는지, 예상되는 문제는 없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조합원의 울타리가 될 지, 예상되는 사태의 방관자가 될 지 선택은 시의 몫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이 거품이 되고 난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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