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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맹추위가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저수지의 물은 꽝꽝 얼고 북풍이 더욱 거세다. 코끝에 와 닿던 새벽 공기는 미세먼지와 범벅돼 식초처럼 따갑다. 새벽녘 잿빛 산속에 서 있는 나목(裸木)들은 나뭇잎을 발등에 떨군 채 냉기를 참아내고 있다. 등산객에 새벽잠을 깬 고라니가 덮었던 나뭇잎을 황급히 떨궈낸다. 새들은 나뭇잎 사이에 떨어진 씨앗을 찾기 위해 앙상한 가지 사이로 비상한다. 자연은 매서운 추위에도 서로 덮어주고 안아주며 스스로 공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이 겨울이 지나면 가랑잎 사이로 새싹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매년 1월 1일 동트기 전에 열리는 홍성의 ‘백월산 영신 고천대제’에 큰마음먹고 참가했다. 오리털 외투로 몸을 감쌌지만 얼굴에 파고드는 새벽 추위는 매섭기만 하다. 어제의 일출과 오늘의 일출이 그리 다르지 않을 터이지만 사람들은 새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오늘 떠오르는 일출에 환호성을 지른다. 그것은 어제와 다른 내일이 있을 거라는 소망 때문이다. 낡음과 역경을 무찌르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속엔 이미 기적이 들어있다.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고, 설계를 하지만 한 해를 다 보낼 즈음엔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반쯤 이뤄졌거나 포기한 일들로 아쉬움이 남는다. 이루지 못한 꿈들이 누추한 꽃다발처럼 거리에 나뒹군다. 그러나 등뼈가 휘도록 열심히 일해도 잘사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낙담하지는 말자. 꿈과 희망을 잃으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늙고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잠꼬대를 하며 밤에 꾸는 꿈이 아니라 낮꿈 말이다. 낮꿈은 희망이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삶에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논하고 있다.

 내일에 희망이 있는 자가 여행을 떠난다. 인생이란 여행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는 여행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생을 작은 저수지를 뱅뱅 도는 조각배에 비유했지만 인생은 앞으로만 가야 하는 편도여행이다. 그래서 "인생은 되돌아보면 이해될 수 있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나가야 하는 존재"라는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에 더 호감이 간다.

 진정한 여행이란 자아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다. 거창한 계획을 세워 놓고 작심삼일 만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내내 화두처럼 붙들고 끝까지 밀고 나가보는 것이다. 데이비드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동료나 이웃, 또래집단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영향을 받는 삶의 유형을 ‘외부지향형’(other directed type)으로 명명했다. 도시라는 공간에 모여 사는 우리는 이런 삶에 익숙해져 있고, 국회의원, 장관, 교수, 대표이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나라고 여긴다.

 남보다 더 큰 아파트, 더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무한경쟁을 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모두 지친 ‘피로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어린이집, 양노원 학대사건과 같은 비도덕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CCTV를 설치하고 감시망을 확대한다. 윤리 회복이 없는 외부지향적 삶에서 이러한 사건 발생과 대처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이런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칼 폴라니가 말하는 ‘거대한 전환’(The Grand Transformation)을 멈추는 일이지만 인류가 지속되는 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존재지만, 지속적 자아 탐색여행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할 수 있는 래디컬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우리는 윤리가 실종된 사회에서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도 지난(至難)하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높은 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면서 형이상학적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형이상학적 존재는 듣고 보는 것(reality)외에도 더 큰 세계가 있음을 자각하고, 그것의 보편적 가능성을 자기 안에 실현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타인을 향한 손가락을 내려놓고, 자연의 질서 속에서 서로 덮어주고 안아주며 겸허한 주체로 다시 태어나길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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