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삽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때로는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살았음을 깨닫기도 하고, 중요했다고 여긴 것들이 하찮은 것이었음을 알고는 후회하기도 합니다. 본질을 모르면 주변 잡것들에 시선이 가고,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마치 유명 화가의 전시회에 간 사람이 어느 작품 앞에서 "액자가 무척 비싸 보이는 걸 보니 저 그림이 대단한 그림인가 보다"라고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액자의 화려함으로 그림의 가치를 매긴 겁니다. 전시장을 찾은 목적, 즉 ‘본질’은 작품을 보기 위해서이
"영하 50℃ 시베리아 벌판의 늦은 밤, 아홉 살 소년이 처음으로 늑대로부터 가축을 지키는 임무를 아빠에게서 부여받고 밤을 새우며 벌판의 눈보라와 맞서고 있다.험준한 시베리아 유목민들은 아들이 아홉 살이 되면 혼자 생존하는 법을 가르친다. 소년은 늑대와 싸우고 칠흑 같은 어둠, 칼날 같은 눈보라와 두려움과 싸워야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소년은 유목민의 긍지를 제 삶으로 인정하게 된다.언제나 아들의 주변을 맴돌며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불행을 끌어다가 아홉 살 소년 앞에 무릎을 꿇려놓고서 사죄를 받아낸다. 눈앞의 행복을 가르치는 것
저주에 가까운 듯한 거친 막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총선은 끝났고 당선자들이 결정됐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언행을 보면서 예쁜 딸을 두고 여신(女神)들이 벌인 질투와 암투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알 수 있는 ‘쌍바위 고개’의 전설이 떠올랐습니다.지리산 쌍바위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바위를 말하는데, 하나는 암벽이 온통 얽어 있는 ‘마마 바위’와 만삭이 된 여인의 모습처럼 아랫배가 불룩하게 나온 ‘삼시랑 바위’가 그것입니다. 「뒤주 속의 성자들」(김윤덕)에 이 전설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어느 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보들의 거친 막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선거는 ‘축제’라고 배웠지만 정작 그들이 쏟아내는 그 어떤 말에서도 축제와 같은 설렘이나 희망을 느낄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들리는 말은 대체로 경쟁자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됐으니까요. 그러니 누가 당선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 풍요로운 나라가 될지 의문이 듭니다. ‘백유경’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다섯 명이 함께 돈을 내 하인을 샀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하인에게 자신의 옷을 빨아 달라고 하자, 나머지 네 명도 똑같이 "
젊은 시절 제가 무척 난감한 문제에 빠져 허덕일 때마다 어른들이 자주 해 주신 말씀은 "사서 고생도 한다는데…"였습니다. 일부러라도 고생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이 말이 그저 저를 위로하는 말이라고만 여겼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그분들의 말씀이 위로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김용규)에서 저자는 독일의 현상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말을 전합니다."고난도 가치다. 고난이 어째서 가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사실 불행을 견뎌 낼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고난은 가치가
각 당 출마자들이 거의 다 결정됐습니다. 그런데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큰 듯합니다. 특히 과거에 한 부적절한 거친 막말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후보 사퇴가 이어집니다. 한때 화가 나서 뱉어낸 과격한 말이나 글이 자신의 꿈을 접게 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정치인과 같은 공인의 말은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 말이 고스란히 국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주의 언어보다는 희망의 언어를, 거친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을 구사해야 합니다.「김진배의 매직 유머화술」이란 책에는 ‘내년에 꼭 승진할 사람들과
서너 마지기의 땅을 가진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땅을 사랑했습니다. 다른 농부들처럼 그 역시도 봄이 되면 씨 뿌리고 여름이면 거름을 내고 쉬지 않고 김을 맸으며, 가뭄 때는 열심히 물을 뿌려 주는 성실한 농부였습니다. 농한기에는 풀밭으로 소를 데려가 풀을 뜯게 하고 그동안 그는 버들피리를 불었으며, 때로는 그늘 밑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멀리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농부를 땅도 사랑했습니다.그러나 측량 기사들이 나타나면서 농부가 변하기 시작했습
분노는 한자어로 화(火)입니다. 화가 날 때는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나 즐거운 일을 마주할 때는 기분 또한 좋아집니다.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무엇이라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긍정적 에너지입니다. 그러나 화의 감정은 어떤 것이라도 일언지하에 거부하는 파괴적인 에너지입니다.오늘날 우리 사회는 화를 권하는 사회처럼 보입니다. 구성원들이 양쪽으로 갈려 상대를 비난하며 분노를 표합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짜증과 고성과 폭언과 유언비어가 난무합니다.이런 태도가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할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화(火)는 대체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갈릴까요? 어쩌면 ‘생각의 차이’에서 갈리는 건 아닐까요.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했어도 어떤 이는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지만, 어떤 이는 그것을 계기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후자의 삶을 살까요?어느 목사님의 설교 내용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한 소년이 골목길에서 노는데 친구가 장난 삼아 던진 돌이 그만 소년의 한쪽 눈에 명중했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에 맞은 눈이 크게 다쳤고, 나머지 한쪽 눈도 못 쓰게 돼 앞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라고 했습
‘성공’이 외부의 것을 쟁취했을 때 느끼는 거라면 행복은 내면, 즉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느끼는 희열입니다.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할 때는 언제일까요? 롤린 매크로티 교수는 이에 대해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느낄 때"라고 말합니다.「마음을 움직이는 인성 이야기」(박민호)에서 저자는 ‘녹아 없어진 씨앗’이란 제목의 노르웨이 전설을 소개합니다.악마가 어느 으슥한 곳에 창고를 짓더니 그곳에 각종 씨앗을 심었습니다. 미움과 배신, 슬픔과 눈물, 절망 등과 같은 씨앗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 저 마을에 이 씨앗들을 뿌렸더니 사
철학은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누군가가 본질을 말하면 혹자는 "교과서 같은 말만 하네", "그렇게 살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겠나?", "세상 물정 모르고 답답한 말만 하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인이든 단체든 자신의 존재 이유에 해당하는 본질을 잊어버리는 순간 ‘배가 산으로 가는’ 혼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엉뚱한 수다」(앤소니 드 멜로)에서 2개 사례를 찾았습니다.#1. 어느 죄인이 파문을 당하고 사원 출입이 불허되자 그는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죄인이기 때문에 저들이 저를 제지합니다.
뉴스의 중심에 늘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정치가 국민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요즘 국민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힘겨워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정치인들의 말에서 도무지 ‘희망’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상대를 ‘탓’하며 온갖 저주의 언어를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이 제 눈에는 오직 자신들만이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그래서일까요. 건축가와 정형외과 의사와 정치인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 자신의 직업이라고 우기는 유머 하나가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수록 곳곳에 자신의 흔적도 늘어납니다. 얼굴에는 주름이, 마음에는 기억이 그것입니다. 주름과 기억 속에는 놀랍게도 엄청난 지혜가 숨었습니다. 지혜는 고통을 겪어야만 얻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주름과 기억은 많은 세월, 그것도 혹독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특히 많이 생겨납니다. 견디기 힘든 겨울 추위를 겪은 뒤 비로소 나이테가 하나씩 생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명체에만 주름이 생기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타이어에도 주름이 있다고 합니다. 「언어의 온도」(이기주)에서 저자는 타이어 가게 직원과 고객이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타
똑같은 상황을 놓고도 왜 사람들은 달리 해석해 서로를 응징의 대상으로 여기는 걸까요? 왼팔과 오른팔이 자신만이 몸의 주인이라고 다투면 각각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일곱 가지 다른 색깔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 무지개가 아름다워지겠지요. 그런데 마치 무지개를 한 가지 색으로 만들어 버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한 요즘의 거칠어진 세상을 보면 무척 안타깝습니다.이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분별심’이 도사립니다. 분별심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선한 마음이 분별심입니다. 그러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무척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은퇴한 친구들을 만나면 예외 없이 하루가 너무 빠르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는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졌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일 년이 하루 같다고나 할까요. 저 역시도 새해를 맞이한 지금 작년을 돌아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 없이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해 벽두부터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됩니다.인터넷에서 구한 글을 훑어보다가 미국의 제20대 가필드 대통령의 대학 시절의 일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같
제자가 스승에게 추위나 더위를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스승은 그것이 없는 곳으로 달아나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제자가 그곳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추위가 오면 추위 속으로 뛰어들고 더위가 오면 더위 속으로 뛰어들라고 스승은 말해 줍니다.이 말을 곱씹어 보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상황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비난이나 원망 대신 그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행동하라는 뜻일 겁니다.‘지금 이 순간’ 겪는 불편한 상황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어
이타심으로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을 성자라고 불러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성자’를 떠올리면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10여 년 전 에콰도르 축구대표팀이 좋은 예입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연용호)에 따르면, 2006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영국에 패한 에콰도르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굶주린 주민을 돕기 위해 참가했기 때문입니다. 한 선수는 "어려서 살던 저희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병원에 가려면 한 시간이나 걸려 시내로 나가야 했다"고 했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4번’은 ‘월광곡’ 또는 ‘월광 소나타’라고 불리는 유명한 곡입니다. 당시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던 부유한 귀족 출신 줄리엣 귀차르디에게 헌정한 곡이라고 알려졌습니다.물론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컸고 신분 차이도 있어 짧은 인연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아픈 이별은 위대한 곡이 돼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그런데 이 곡이 만들어진 배경에 또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뒤주 속의 성자들」(김윤덕)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고 해도 한 번쯤 음미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어느 날 베토벤
꽤 오래전 학교에서 ‘이기심’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며칠 후 한 학생이 이메일로 이기심에 관한 좋은 자료인 듯싶다며 뉴스 기사 하나를 보내 줬습니다. 미국의 대표 관광지인 옐로스톤 국립공원 안에 있는 ‘모닝글로리 연못’에 관한 영국 데일리메일지 기사였습니다.기사에 따르면 모닝글로리 연못이 40여 년 만에 푸른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연못 가장자리에 선명한 노란색 띠가 형성됐고, 가운데는 붉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겁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맑고 푸른 물이 샘솟는 온천이었
나라의 일꾼을 뽑는 선거가 다가온 탓인지 곳곳에서 거친 막말을 쉽게 듣곤 합니다. 좋지 않은 일이라도 뉴스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게 도움이 된다는 헛된 믿음이 있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그들이 꼭 알아야 할 점은 리더의 말 한마디가 국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들의 저주에 가까운 말은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해 결국에는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처’는 국민의 것이 되고, ‘영광’은 그의 당선으로 끝나 버릴 테니까요. 그러니 리더의 언어는 감동을 주는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