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쿼바디스’는 190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동명의 역사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제목 ‘쿼바디스’는 라틴어 ‘Quo vadis, (domine)?’에서 따온 문구로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를 의미한다. 영화는 로마제국의 5대 황제인 네로 집권기를 배경으로 제국의 퇴폐상과 로마 대화재 그리고 기독교 탄압을 묘사한다. 다만,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종교적 색채는 옅어지고 로맨스와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머니와 아내마저 살해하며 광기어린 폭군으로 거듭난 네로는 매일같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사치와 쾌락에
한 사람에게는 여러 모습이 존재한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다르고, 사적인 만남과 공적인 자리에서 보여지는 모습 또한 상이하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자아가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도덕성이다. 비록 100% 순수한 악인이나 선인은 있을 수 없겠지만, 우리는 양심에 따라 선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1958년도 영화 ‘악의 손길’은 바로 그 양심과 도덕성을 저버린 결과를 다룬다.멕시코 법무부 소속 마약 수사관인 마이크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역에서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계획한 모든 것을 다 끝냈을 때는 홀가분함과 성취감을 주지만,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마지막은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6년 개봉한 영화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30년 동안 인기리에 생방송된 라디오 쇼의 고별 공연을 담았다. 한때 정상을 달리던 이 프로그램은 시대가 변하면서 구시대 유물이 돼 종영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른다. 인생의 거의 전부를 쇼에 바친 사람들. 이제는 다시 없을 무대를 위해 그간 사랑받은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생방송 시작 6분 전, 쇼를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올바른 태도를 알려줄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좋은 것은 주변과 나누라 하고, 다른 사람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며, 어려운 일을 겪는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라 말한다.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 까닭은 오늘 소개하는 작품 ‘웡카’가 아동문학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동문학계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로알드 달의 대표작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는 엉뚱한 상상력과 흥미로운 전개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영화 ‘웡카’는 그중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기반으로 한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심신이 피곤할 때 우린 속세를 벗어난 자연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잠시 교외에서 쉬다 오거나 그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등산이나 공원 산책으로 만족해야 될 때가 많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뉴스부터 끊으라"고 조언한다. 세상사 시끄러운 소식을 안 보고 안 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화되는 느낌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번 해 봤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장기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멀리 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결국 며칠 만에 접속한 인터넷 포털뉴스
장수하는 어르신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운동과 식사를 포함한 규칙적인 생활, 미리 걱정하거나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 삶의 방식과 더불어 이것을 핵심으로 꼽는다. 바로 따뜻한 관계성 유지다. 가족, 친구, 지인을 비롯해 자연과의 친밀하고도 긍정적인 교감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한 장수의 비결로 통한다. 하지만 때로 우린 인간관계를 끊고 싶을 때가 있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받는 상처와 스트레스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한 채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두 이름을 보면 자연스레 흑인 민권운동이 떠오른다. 미국 내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주장한 이들은 흑인 인권 향상에 크게 기여한 양대 산맥이다. 두 거목과 함께 1960년대 후반 활동한 프레드 햄프턴이란 청년 또한 인종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검은 표범을 상징물로 내세운 블랙팬서당의 일리노이주 지부장이었던 대학생 프레드는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런 청년이 자택에서 살해당한다. 임신한 약혼녀 그리고 여러 명의 당원들이 함께 잠든 새벽, 느닷없이 총성이 울린다. 무려 9
가족과 집이라는 이 평범한 단어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없이 복잡한 감정을 내포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이자 언제든 돌아가 편히 쉬는 유일한 곳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남보다 못한 사람들, 벗어나고 싶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가족은 자의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뜻이 맞지 않거나 어느 한 사람에게 과도한 책임이나 희생을 강요할 경우 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다시 안 보면 그만인 남과는 달리 쉽사리 연을 끊어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가족이 그렇다. 한때 누구보다 화목하고 단란하게 살았지만,
숨은 영화 찾기 칼럼에서 그간 많은 영화를 소개했다. 세어 보지 않았지만 가장 자주 언급된 감독은 필시 알프레드 히치콕일 테다. ‘39계단(1935)’, ‘사보타주(1936)’, ‘레베카(1940)’, ‘의혹의 그림자(1943)’, ‘현기증(1958)’, ‘이창(1954)’,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싸이코(1960)’, ‘새(1963)’ 등에 이르기까지 5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이 감독은 무성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에 이르는 영화사의 중요한 기술적 변화에 탁월하게 대처하며 현대 영상문법을 개척하고 정립했다
본래 달걀을 완숙으로 익힌다는 의미의 ‘하드보일드’는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비정한 혹은 냉혹한이라는 맥락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하드보일드 문학이나 영화라 함은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냉담한 태도로 묘사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이때 불필요한 수식어 없이 건조하고 빠르게 상황을 전개하는 특징은 부조리한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의 반영이다.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미키 스필레인은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을 이끈 대표 창조자들이다. 이들의 작품들이 1940∼1950년대 영화로 활발히 제작되면서 범죄와 폭력을
볼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하는 작품이 있다. 배우들의 완벽한 하모니, 빈틈없는 서사, 마음을 두드리는 음악, 전체적인 완성도와 메시지 등 매번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영화 ‘대부’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최고작으로 꼽는 이 영화는 2022년 개봉 50주년을 맞이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다시 봐도 여전히 감탄하는 이유는 마피아 소재라는 표피 아래 흐르는 서사의 보편성에 있다. 특히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끝내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의 비극 사사가 인상적이다. 3부작으로 전개되는 영화
인생은 등산과 같다. 정상에 오르려고 고군분투하는 시간은 길고 어렵고 힘들다. 정상에 선 기쁨은 포기하지 않고 오른 사람만이 만끽하는 행복이다. 비록 머무는 시간은 짧지만 그 가치는 충분하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산이다. 올라가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내려가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빠르다. 잘 내려가는 방법에 대한 숙지 없이 가다 보면 가속도가 붙어 쉽게 넘어지기도 한다. 앞선 경험이 토대가 돼 더 높은 등정에 도전하듯 우리 삶도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간혹 대단한 노익장을 선보이며 인생 후반부에 전성기를 이뤄 내는 경우도 있지만,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 세계는 선과 악이 분명하고, 원인과 결과가 선명하며, 결국 모든 일은 옳게 잘 돌아가는 완벽한 세상이었다. 그러니 착하고 바르게만 살면 분명히 복을 받는다고 했다. 산타 할아버지를 믿듯이 동화 속 세계관을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아동기를 지나면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닌 무수한 회색으로 이뤄졌음을 눈뜨게 된다. 성장을 거듭하며 우리는 자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감당해야 하는 인생의 무게는 어쩌면 살아있음을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난관과 고통이
녹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산천의 푸르른 초목이다. 싱그러운 자연의 색이 바로 녹색이기 때문이다. 평온하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초록색은 신호등의 진행지시 및 구급, 구호, 비상구 등 안전을 상징하는 색으로도 활용된다. 그런 맥락에서 ‘그린 북’이란 제목을 보면 ‘수목원 관광 안내서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녹색 책으로 불리는 ‘그린 북’은 사실 흑인 운전자를 위한 가이드 북을 말한다. 이 책은 뉴욕의 우체국에서 일하던 흑인 빅터 그린이 제작한 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따 책 제목을 정하고 표지도 녹색으로 만들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문명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담은 장르를 서부극이라 한다. 미국영화 등장과 함께 시작된 웨스턴 장르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황금기를 이뤘다. 서부영화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존 포드 감독인데, 1939년 영화 ‘역마차’를 시작으로 ‘황야의 결투’(1946), ‘리오 그란데’(1950)로 전설을 써 내려갔다. 포드 감독은 후기작인 ‘수색자’(1956)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 서부영화에 대한 자기성찰을 담아내기도 했다. 사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서부극이 차지하는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두드러지듯, 빛과 어둠은 상반된 개념인 동시에 서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공존의 대상이기도 하다. 빛과 어둠이 세계를 이루는 한 쌍이듯이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도 두 개념은 공존한다. 새미라는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파벨만스’도 기쁨과 시련의 빛과 어둠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23년 3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삶을 녹여낸 작품으로도 알려졌다. 잊을 수 없는 꿈의 세계를 선사하는 스필버그와 영화와의 만남, 그 시작을 담아낸 스토리 ‘파벨만스’를 만나보자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코맥 매카시는 2006년 묵시록적 세계를 그린 소설 「더 로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환갑이 넘어 얻은 늦둥이 아들과 여행 중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떠오른 여러 생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대재앙이 휩쓸고 간 황폐한 세상에 부자가 덩그러니 남겨진다면 어떨까?’라는 상황을 가정해 「더 로드」를 창작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더 로드’는 바로 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생존이 전부가 된 끔찍한 환경 속에서 아들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버지의 사랑과 투쟁을 담은 영화
한순간의 선택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은 대체로 ‘일생일대의 도전을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소한 찰나의 선택은 어떨까? 이를테면 몇 시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고, 점심 메뉴로는 뭘 먹을지를 고민하는 그런 사소한 선택 말이다. 그 경우에도 우리 삶이 180도로 달라질까? 언뜻 생각하면 그 정도로는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고 본다면, 찰나의 선택도 꽤 묵직하게 느껴진다. 1998년 개봉한 영화 ‘
푸른 눈의 백인, 금발, 20대 초반 여성으로 9등신 비율에 잘록한 허리와 길고 매끄러운 다리 그리고 미소를 띤 얼굴이 인형 바비의 전형적인 형상이다. 1959년 미국의 마텔 사에서 출시한 바비는 공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가 된 바비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추앙의 대상이 됐다. 유행을 선도하며 시대를 앞서 갔던 바비는 어느샌가 여성의 미적 기준을 획일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후 마텔 사는 발 빠르게 다양한 인종과 체형의 바비 인형을 선보였지만, 이미 바비라는 존재는 늘
1941년 개봉한 흑백영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논란을 빚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다. 그 까닭은 소위 말하는 20세기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시민 케인’을 물리치고 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작품상만이 아니라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에 있어서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만큼 잘 만든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존 포드 감독이 선사한 이 가족 멜로드라마는 개봉 당시 "시적 이미지로 빚어낸 놀라운 걸작"이란 평가와 "산발적인 에피소드", "눈물과 석탄가루의 흉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