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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이 고요할 리 없다. 2인실이라 나름 조용할 만도 하건만 수시로 세상이 들이닥친다. 이 바쁜 세상에 시간을 내고 마음을 담아 문병온 정성을 감사하게 받아야겠지. 밤늦은 시간, 살짝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직 안 자지?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는 잠 억지로 청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집으로 갈 수가 있나. 기분전환해 줄 테니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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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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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바닥에 은행잎이 가득하다. 농익은 가을밤, 재즈 공연장의 무대가 퍽이나 아름답다. 연주가 시작되고 객석에 순간 몰입이 온다. 스포트라이트조차 강렬함을 버린 온기로 연주자를 비춘다. 귀에 익은 선율은 서양악기의 기본에다 해금과 가야금 피리가 더해져 녹아내리다가 휘감듯 조였다가 마음을 흔든다. 스탠다드 재즈곡에서 민요 트로트 팝을 아우르며 편곡의 우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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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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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늦겨울 뉴욕의 어느 골목길에서 맹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맹인입니다’라고 쓴 패찰을 목에 건 맹인에게 누구도 돈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시인 앙드레 불톤이 팻말의 문장을 고쳐 써 주었다. 오래지 않아 빈 깡통엔 지폐와 동전이 수북하게 쌓였다.언어는 묘한 마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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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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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연휴를 끼고 1박 2일 서울나들이를 다녀왔다. 수시로 서울을 방문하지만 일 때문에 가는 곳이라 정해진 장소에서 행사나 모임이 끝나면 돌아오기 바빴다. 외국인들이 감탄한다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껴 볼 여유도 없이 늘 허겁지겁이었다.웅장은 위압감을 동반하는데 서울의 자연은 친화적이다. 한강도, 북악도, 고궁도, 오래된 골목길도 사람들에게 놀러와 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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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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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시대다. 성형이 유행을 넘어 대세인 세상이라 외모 가꾸기는 국민의 5대 의무라는 우스갯말도 생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겉모양이 좋은 것이 그 내용도 좋을 것이라고 단정하게 된다. 처음으로 대면하는 상대방을 판단하는 데 단 3초면 충분하다고 한다. 3초 만에 각인된 첫인상은 50번 이상을 만나야 바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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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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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강화 고인돌 유적지 탐방을 다녀왔다. 기울어진 받침돌에 안정을 주려면 덮개돌을 어떻게 놓아야 할까요? 유물해설을 하시는 분은 사진작가라는데 다방면에 박식해 풍부한 지식을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주었다. 고인돌 유적지에서 그분의 설명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 세계에 있는 고인돌 유물 중에서 70%가 우리나라에 있어 ‘고인돌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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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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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여성문화회관은 나의 삶에 뭉클한 감동을 준 장소다. 회관이 개관하고 초창기 무렵인 1995년 이곳에서 문학 강의를 들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설렘과 두려움, 열정과 좌절 사이를 오가면서 내 자아를 마주볼 수 있게 해 준 곳이라 늘 관심이 가는 장소다.여성문화회관의 운영이 인천시로 이관이 된다고 한다. 인천YWC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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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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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부터 마음이 편해진다. 일거리를 싸와서 집에서 처리해야지 마음먹고 챙겨온 서류가방은 거실 구석에 던져두고 좀 쉬었다. 한숨 자고 개운한 정신으로 집중해야지. 잠깐 졸았나 싶다가 책도 읽고 신문도 뒤적이고 노래도 듣는다. 이럴 땐 커피가 제격이라 하겠지만 요구르트에 과일 몇 조각 넣어 갈아서 마신다.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자기체면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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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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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모임을 이어온 친구 넷이 하루 여행을 갔다. 아흔아홉 고비 인생사라는데 지금 힘들게 깔딱 고개를 오르고 있는 친구를 위로할 겸 떠나온 자리다. 비는 물안개처럼 흐르고 숲은 싱그러웠다. 숲속 쉼터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피톤치드 샤워를 했다. 아줌마들답게 오물조물 싸 온 간식거리가 비오는 날의 별미가 되어 맛났다. 살짝 허전한 속을 채워주는 음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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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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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사이에 세 번의 부고를 받았다. 각별한 인연을 가졌던 분들이다. 투병 중인 분도 계셨지만 부고는 급작스러웠다. 이제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나. 장마로 우중충한 하늘이 먹장이다. 돌아가신 분 모두 가슴이 미어졌지만 유독 더 생각나는 그분은 평생 독신이셨다. 연민에, 회한에, 복잡한 잔상이 가슴에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폭우가 쏟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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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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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하늘이 붉어지는 시간이다. 휘황한 조명이 켜지면서 홍콩 섬의 마천루는 환상을 입는다. 스타의 거리 어디쯤에서 ‘심포니 오브 라이트’쇼를 봤다. 편안하고 적당히 유치한 몸짓을 지극히 관광객다운 일탈이라 여기며 즐겼다.생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나와 성인으로서의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딸과 짬을 내 여행을 왔다. 서로 바빠 오붓하게 둘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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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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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500년 전, 신천지를 찾고 있던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1천 마일이 넘는 긴 항해 끝에 태평양의 한 섬을 발견했다. 부족민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 줄 것이란 기대감으로 족장은 마을 주민을 이끌고 신세계로 이주를 했다. 막상 와 보니 정착을 하기엔 조건이 좋지 않았다. 땅은 척박했고 낚시를 하기에도 제약이 많았다. 사람들은 족장의 지도하에 힘을 합쳐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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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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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화창하다. 꽃들로 세상은 환하고 여린 초록이 눈을 싱그럽게 한다. 계절의 여왕답다. 1년 중에서 가장 좋은 달 5월, 5월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기념일이 유독 많다. 그래서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처럼 익히 알고 있는 기념일부터 입양의 날, 부부의 날, 실종아동의 날, 세계인의 날, 생물종 다양성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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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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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집 4부자 이야기를 봤다. 잔잔한 감동이다. 가업을 잇는 것은 피로 연결된 장인정신의 승계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고 못 배워 시장통 구석에서 생계를 위해 시작한 떡집 일꾼이 사장이 되고, 이제 장성한 아들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을 보면서 장인을 만드는 세월이 녹록지 않음을 알게 해주었다. 평생 외골수로 떡을 만드시는 아버지의 자부심은 떡집 아들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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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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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이지적 향기가 공존하는 그분은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고 평론을 하는 교수다. 어느 날, 날마다 자살을 생각한다는 말을 해 가슴이 떨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실행에 옮길 의지가 확고한 것은 아니겠지만 혼란스럽고 외로운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했나 보다. 상한 속을 위로해주고 말을 잘 들어줄 것 같다며 주변에서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입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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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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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살포시 잠이 들었다. 온통 노란빛으로 화사한 산수유 꽃밭에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여인. 몽환의 노란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부드러운 봄 햇살에 웃음이 간질간질 터진다. 산수유 축제 마지막 날 주말인데 만개는 아직 일러 활짝 핀 꽃을 볼 수 없다. 수줍은 봄처녀 자태로 상춘객의 마음을 잡아끄는 꽃가지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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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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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지금 소통의 부재로 대립이 잦다. 정치는 정치대로 계층은 계층대로 연령별은 세대차로 말이 안 통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따져보면 아이러니한 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우리나라만큼 갖추어진 현장도 드물다. 단일 언어를 쓰는 나라가 생각 외로 많지 않은 데도 우리는 단일 언어를 쓰는 국가이다. 계층별로 쓰는 언어의 격이 다른 영국을 위시한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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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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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졸업시즌이다. 올 해는 친척이나 지인의 자녀들이 유독 졸업하는 학생이 많아 2월을 분주하게 보냈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혹은 그 이상의 어떤 졸업이든 졸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문을 통과했다는 마침이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의문을 품지 않고 단계를 밟아나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끔은 지친 당나귀 같아 힘겨웠고 가끔은 우아한 백조처럼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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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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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다. 지난주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수십 종의 초콜릿 상품을 진열해 놓고 홍보를 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초콜릿 상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 매장을 기웃거리며 깜찍하거나 로맨틱하거나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한 다양한 초콜릿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 수제 초콜릿부터 몇백 원짜리 상품까지, 질도 모양도 포장도 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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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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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선거를 앞두고 지닌 연말부터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넘쳐났다. 탁월한 민의 대변자로 ‘내가 적역입니다’를 선전하는 내용들이다. 재선 의원은 업적 나열에 열심이고 예비정치인들은 개혁의 주체가 될 자기를 알아달라고 굵게 밑줄을 긋고 시선을 모은다.우리 사회, 지금 어수선하다. 위에서, 아래에서 제 목소리 내기에 경쟁이다. 자극적인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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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