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글로벌 도시로 눈에 띄게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다. 최근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외국 기업과 학교 등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가 생겨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역 내 외국인 주민의 증가를 불러왔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6만7천869명이었던 인천지역 내 외국인 주민등록인구는 올 5월 말 기준 7만331명으로 늘었다. 인천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주민과 기존 주민들 간 어울림은 지역의 또 다른 숙제가 됐다. 각종 지원센터 등 외국인 주민 정착을 돕기 위한 시...
# 5월 22일 오전 5시 50분께 부평구 한 노래방에서 40대 여성이 일행과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다. 누군가 몸을 더듬는 느낌이 들어 화들짝 깨어나 112신고를 했다. 출동한 인근 경찰 지구대원들은 노래방 객실 안에서 "도와 달라"는 외침이 나왔지만 문이 잠겨 있어 섣불리 진입하지 못했다. 50대 남성 노래방 주인이 문 파손을 걱정하며 별일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때 소방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은 특수장비로 문을 개방했고 이후 경찰은 신고자의 진술을 듣는 등 조사와 사건 처리에 나설 수 있었다. 당시를 회상...
인천은 택시가 포화 상태다. 지역 택시면허 대수는 1만4천369대다. 2014년 3차 인천 택시총량제 용역 결과 적정 대수는 1만770대로 현재 3천599대가 공급과잉이다. 택시발전법령에 따라 감차 규모를 조정해도 2천837대를 감차해야 한다. 특히 ‘타다’ 등 렌트카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 운송 플랫폼이 나오면서 시장까지 빼앗기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택시업계는 자체 플랫폼(럭키7택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시민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갔다. 그러나 타다 등 플랫폼의 고급 차량(카니발), 편리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일부 시민들은 ...
‘공공분야의 일자리 발굴’과 ‘취업 취약계층의 민간 일자리 연계’를 잇는 징검다리. 경기도일자리재단이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이 두 가지 목표를 융합한 정책적 시도에 올해 첫발을 뗐다. 일자리재단의 ‘새로운 경기 징검다리 일자리 사업’은 공공분야 일자리를 발굴해 구직 희망 도민들의 취업을 연계하는 정책이다. 참여자들이 다양한 공공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이 경험한 유사 직종의 민간 일자리로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양적인 면만 부각됐던 기존의 일자리 정책에서 벗어나 규모는 적지만 질...
지금 우리 사회는 반목과 불화가 만연한 것처럼 보인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특정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가짜 뉴스까지 동원되는 실정이다. 이번 본보 창간호 주제는 ‘융합·공유’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화두라고 여겨진다. 프롤로그를 장식한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궁인 화성행궁 내 좌익문 앞에 설치된 ‘인공 보름달’이다. 수원시가 화성행궁 야간 개장을 맞아 관람객들에게 보름달의 좋은 기운을 심어 주기 위해 지름 5m의 인공조...
인천과 경기는 하늘이 열린 그 처음부터 하나였다. 살아가는 방식과 땅의 모양새는 달랐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하나로 녹여 내며 공동체로 어우러져 성장해 왔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통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며 동북아 중심도시로 우뚝 선 인천과 대한민국 인구 4분의 1을 품고 국내는 물론 세계 4차 산업혁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경기도의 성장 키워드 역시 어울림이다. 그렇게 인천과 경기는 어떠한
30년 전 안양은 농촌으로 둘러싸인 소규모 도시, 조용한 도시였다. 1973년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됐지만 15년 뒤인 1988년에도 안양은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도시의 모습, 그 자체였다. 당시 재정 규모는 480억 원, 공무원은 800명을 밑돌았다. 지방도시의 면모는 1988년 당시 정부의 대규모 5대 신도시 건설에 안양이 포함되면서 변해 갔다. 1982년 16개 동이었던 행정구역이 1, 2년 간격을 두고 신도시 아파트 입주 시점이 막 1994년까지 분동이 이뤄졌다. 1995년부터 2000...
예로부터 이천은 쌀과 도자기, 온천으로 유명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 맥주업계를 대표하는 오비(OB)맥주 공장이 들어서고 이어 1980년대 초·중반쯤 소주공장인 진로와 반도체 회사인 현대전자 등 굵직한 기업들이 자리를 잡는다. 이때부터 이천은 생산과 소비의 투 트랙 경제도시로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천시의 과거와 현재 이천시가 최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수도권규제로 크게 성장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관선에 이어 지방자치시대를 맞으면서 민선 시장들의 노...
광주시 30년 전과 오늘 현재의 예산을 비교해 보면 1988년 273억 원이던 것이 현재는 1조690억 원으로 무려 39배나 증가했다. 1988년도와 현재 주요지표를 비교해 보면 인구는 17만2천여 명에서 36만5천여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학교 수도 인구 증가율과 비슷하게 학교는 27개 교에서 54개 교로 늘었다. 가구는 4만3천여 가구에서 14만4천여 가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인구 증가율보다 가구수 증가율이 높은 원인은 1인 가구 증가 여파로 분석된다. 광주지역은 여러 차례 행정구역 개편과 변화를 겪으면서 면적의 ...
시흥이라는 명칭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일원의 지역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잉벌노현,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곡양현, 고려 태조 23년(940)에 금주로 불려오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에 금천현이라 했는데 이후 조선 정조 19년(1795)에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안양에 만안교를 가설한 후 고려 성종 때(991) 금주의 별호를 취해 시흥현으로 개칭하면서 시흥이라는 지명이 처음 생기게 됐다. 시흥현은 100년 후인 1895년 시흥...
내년 1월 1일자로 오산시는 출범 30년을 맞는다. 대한민국 대표 교육도시 오산이라는 그동안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혁신교육도시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산천을 전국 최고의 도심 청정 하천으로 만들고, 독산산성의 본모습을 되찾아 유네스코 등재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삼미동 옛 서울대 부지에 미니어처 테마파크, 복합안전체험관, 에듀타운을 성공적으로 조성하고 세교2지구 개발을 더욱 촉진하며, 운암뜰 첨단복합단지 개발 및 죽미령을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할 유엔평화공원을 완성하겠다는 목표...
1986년 시로 승격한 과천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청정 주거도시였다. 높은 시민의식과 튼튼한 자립 기반을 바탕으로 문화·관광도시로 변모해 왔다. 1980년 과천신도시 개발사업이 첫 삽을 뜨고, 1982년 정부 제2종합청사가 조성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급속히 바뀌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정부 부처가 대거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다시 변화를 맞고 있다. 과천시의 과거와 현재, 재도약의 청사진을 그려 본다. # 전국 최고의 전원계획도시 과천 과천은 깨끗한 물과 공기를 갖춘 전원도시이다. 시 전체 면적 35.86㎢...
▶민경욱 국회의원 ▶박찬대 국회의원 ▶안상수 국회의원 ▶유동수 국회의원 ▶윤관석 국회의원 ▶정유섭 국회의원 ▶홍일표 국회의원 ▶홍인성 인천 중구청장 ▶이항진 여주시장 ▶김성기 가평군수 ▶이용범 인천광역시의회 의장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김성해 인천 연수구의회 의장 ▶최재현 인천 남동구의회 의장 ▶최찬용 인천 중구의회 의장(이하 가나다 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석승 21세기 안보전략연구원장·교수 ▶강옥엽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강용희 ▶강인순 민관소통위원회 ▶강주수 인천평화복지연대 상임대표 ▶고정현 ㈜...
한 도시의 상권 변화 과정은 그 도시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몰락과 궤적을 함께 한다. 사람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도로와 철도 등 기반시설도 확장된다. 항구 등도 영역을 넓힌다. 그곳을 통해 사람들은 수많은 물류와 기술, 그리고 유행까지 함께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시는 사람과 물류, 기술, 첨단을 달리는 유행이 결집한 ‘상권’, 즉 ‘번화가’를 형성한다. 본보는 인천의 도시 형성 과정과 함께 최근 30년간 번성했던 상권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지역 ‘번화가’의 흥망성쇠 과정을 통해 지역 ...
인천은 30여 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신포동을 중심으로 한 소극장 르네상스 시대를 맞는다. 인천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카페 깐느’가 1974년 개관한 이후 1978년 인천의 대표 소극장인 돌체가 본격적인 소극장 시대를 이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인천에 다수의 소극장이 생겨나 연극과 공연의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된다. 소극장은 단순히 공연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시대가 소통하는 장소다. 「구술로 보는 인천 민간 소극장사」의 저자인 장구보 구보댄스컴퍼니 대표는 소극장 운동의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북부가 ‘평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4·27 남북 정상회담이 기폭제가 됐다. 이곳은 군사분계선(DMZ) 등이 가로질러 접경지역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개발에서 소외돼 주민들의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 경기북부에는 평화를 매개로 봄바람이 불고 있다. 선두에서 남북 교류를 이끌어 나갈 경기북부가 되길 모두가 기원하고 있다. 사실 가평·고양·구리·남양주·동두천·양주·연천·의정부·파주·포천 등 10개 시·군은 그동안 도시화 진행이 더뎌 낙후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지역총생산(GRDP)만 봐도 그렇다. 2015...
2014년 8월 1일 오전 9시 55분께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고양시 덕양구 창릉동 삼송 신시가지로 이사 온 김한길(40)씨 가족이 전입신고를 마친 순간, 고양시는 상주인구 100만 명을 돌파했다. 1992년 2월 1일 시 승격 당시 25만7천834명에 불과했던 상주인구가 22년 만에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울산·수원·창원 등 9개 광역 및 대도시 다음으로 대한민국 10번째 100만 대도시로 거듭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고양시는 일산신도시에 이어 삼송·지축·향동 등지에서 택지개발사업을 활발히 펼쳐 지역도시브랜드 지수 평...
의정부하면 입영 장병들이 거쳐 가는 306보충대와 미군부대, 부대찌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도청 북부청사 등 행정기관이 많아 북부지역의 수부도시 역할도 하고 있지만 그 역사를 논할 때 반세기 이상을 함께 한 미군부대를 빼놓을 수 없다. 306보충대는 1950년대 창설과 이전을 거쳐 1989년 의정부시 용현동에 자리를 잡았다. 매년 입영자와 보충병 등 10만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고, 군입대를 위해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 의정부의 군사도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의정부는 한국전쟁 때부터 서울로 진입하고 나가는 중요 관문으로서...
남양주시는 1986년 구리시가 승격·분리되고, 1989년 미금읍이 남양주군에서 분리돼 시로 승격됐다 통합돼 도·농복합형의 통합시로 거듭났다. 농촌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부를 인구밀집지역으로 설정해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도시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도시근교형 농촌지역으로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의 통합은 도시와 농촌의 통합이었지만 마찰 없이 진행됐다. 도·농 통합은 그동안 왜곡된 도시와 농촌 간 기형적 발전 격차를 지방자치단체의 재원 분배 최적화와 행정효율의 극대화를 통해 해소하자는 일종의 대안이었다. 통합 이후 도시와 농촌...
양주는 경기북부 행정 역사의 모태이자, 수도권의 행정중심도시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옛 양주의 위상과 역사문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 정체성을 확립하는 등 북부 중심도시로 도약을 위해 쉼 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서울시 일부와 의정부시, 동두천시, 남양주시, 구리시, 연천군 일부, 고양시 일부 등을 관할하던 양주와 미래형 복합도시로 변모하는 현재의 모습을 조명해 본다. # 양주시의 과거 양주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서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