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발표한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당시 검찰과 경찰이 역사적 합의를 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 조정안이 국회로 넘어 갔다. 여야는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서는 검찰 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권의 핵심공약 중 최대 이슈로 부각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의 핵심은 ▶검사의 송치 전 수사 지휘권 폐지 ▶경찰에 1차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 부여 ▶검찰의 보완 수사요구권 확보 등으로 이 조정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등 10여 개 법률을...
느지막이 눈을 뜬 아침에 문뜩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지난주 휴가랍시고 빈둥대며 게으름을 피우는 내 꼬락서니가 영 못마땅한 참이기도 했다. "그래 무작정 나가보자." 걷기에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머릿속이 하얬다. "어딜 가지?" 막상 갈 데가 떠오르지 않았다. 머뭇거리기를 채 1분도 안 돼 집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쯔쯧’ 혀를 차 잇새로 소리를 내며 스스로의 한심함을 삭였다. 책장을 향해 흐리멍텅한 눈을 치켜 올리는 순간 흰 바탕 표지의 책 한권이 들어왔다. 역사소설 「사도세자의 고백」이었다. "옳지, ...
1968년 개통된 경인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축과 방음벽 등이 인천의 동서를 갈라 놓아 지역 및 주민 간 단절이 심화되면서 주변지역을 빠르게 낙후시켰다. 이 길을 50년 만에 연결하고 사람들이 함께 하는 길로 탈바꿈시키는 역동적인 단초가 세워져 눈길을 끈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총 50조 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주요 국정과제인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정부는 ‘2018년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안’을 의결하고 전국 99곳을 도시재생 뉴딜사업지로 선정한 가운데 인천의 ...
올해 초, 경기문화재단의 계약직 문제에 대한 취재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재단 한 정규직원이 이런 말을 건넸다. "사실 역차별 받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디테일한 인용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 간접인용으로 바꾸자면 요(要)는 이렇다. 급여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소위 ‘무한책임’은 정규직원에게만 있다는 의미다. 이런 류의 인식은 이후에도 최근까지 몇몇 정규직원에게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아니 직(職)을 걸더라도 나의 생각은 다르다. 재단 정규직원의 진짜 문제는 계약직과의 대립이 아니다. 정규직원 내부에 ...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속편인 ‘신과 함께-인과 연’이 개봉되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어차피 인간은 영원히 살 수는 없는 존재다. 과학이 발달해 생명연장의 꿈이 이뤄진다고 해도 100살을 겨우 넘기는 것이 고작일 게다. 돈과 권력으로 불노초(不老草)를 구해본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다. 그래 봐야 100살 안팎이다. 그래서 사후세계에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사후세계는 과연 어떤 세상일까? 종교에 근거했겠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사후세계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서 49일...
불가마 더위가 멈추지 않고 있다. 짜증을 넘어 공포감이 몰려온다. 사람의 정상 체온을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니 그럴 만도 하다. 재난 수준이다. 환경오염에 따른 이상기후가 가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1967년 지금의 폭염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무서운 내용을 담은 「아이언 마운틴 보고서」라는 책이 미국서 출간됐다. 아이언 마운틴은 뉴욕주 근처 허드슨시에 있는 거대한 지하시설이다. 냉전시대 소련의 핵공격을 방어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뉴저지의 스탠더드 오일, 쉘, 하노버 제조 신탁회사 등 수백 개에 이르는 미국 최대 기업의...
"아버님, 살려주옵소서." 죽음의 냄새가 물씬거리는 뒤주의 귀퉁이를 부여잡고 갇히기를 거부하는 사도세자의 처절한 절규였다. 왕과 세자 군신 끈으로는 죽음의 엄습을 피할 길이 없기에 부정(父情)에 매달린 자식의 마지막 애소(哀訴)였다. "노비의 세금을 반으로 감하라" 했던 애민의 군주 영조는 피붙이의 정을 모질게 끊고 야합의 권력을 좇았다. 나이 마흔둘에 얻은 아들을 옅은 조각 빛조차 스미지 않는 좁은 뒤주에 가뒀다. 스물일곱의 아들은 아비의 불호령에 물 한 모금 들이키지 못했다. 초여름의 더위와 굶주림에 신음하기를 여드레, 사...
이제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가 왔다. 그 불편은 고통이 깔려있는 불편(不便)이요, 치우침이 없는 불편(不偏)이다. 둘 다 아픔이 따르기는 매한가지일 게다. 앞에 것은 ‘바닷물이 밀면 배는 한꺼번에 떠오른다’고 믿는 자유 시장경제의 배신에서 오는 쓰라림일 게다. 나중 것은 정치인과의 맹목적 친분을 거침없이 도려내고 그들의 설레발을 분노로 발라내야 하는 비정(非情)이다. 하나같이 시대정신과 결의하고 이겨내야만 하는 마뜩한 괴로움이다. 한국지엠 사태가 6·13 지방선거와 맞물려 우리나라 경제계와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정부는 채찍...
그리 오래지 않은 얘기다. 지방선거 이후 공무원들 사이에서 ‘손가락을 자르자’는 무시무시한 얘기가 떠돈 적이 있다. 농(弄)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이 말은 진짜 손가락을 자르자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후보에 대한 실망을 담은 자조(自嘲)다. 당시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말이 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8년 동안 지방정부를 이끌었던 이에 대한 실망은 새로운 인물을 선택하게 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인수위원회 진행 과정에서 밑천이 드러났다. 새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지금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라는 의미다. 살아오면서 늘 바라고 소원한 것 같다. 어릴 적 동네 한구석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이번에는 꼭 저 놈의 딱지를 넘기게 해달라’는 젖비린내 나는 간절한 바람에서부터 입시와 취직, 결혼, 승진, 건강 등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바람으로 나이를 먹은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지천명을 넘긴 지금도 여전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요즘은 이러저러한 것보다 ‘...
개인적으로 요즘 무기력하다. 계절 탓도 있겠지만 가을도 아닌데 이런 때가 있었는지 싶을 정도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하는 고민?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주 현실적인 모자람 때문이었다. 돈이다. 며칠 전,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인생 처음으로 독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거처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일적인 이유 외에는 평소 관심 없던 부동산에 신경을 쓰려니 이만저만 머리가 아프던 찰나였다. 특정지역을 설정하고 얼마에 거래가 됐는지 확인한 순간 앞선 모자람이 확 밀려 ...
GM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다가 1953년 국방장관에 임명된 찰리 윌슨은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 경력과 공공성이 생명인 공직생활 사이에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GM 총수다운 발언이었다. 기업은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에두른 표현이자 친기업 정책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당시 GM은 거칠게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 9월~1945년 8월)이 끝날 무렵 GM은 미국 최대의 자동차 생산 업체일...
선거는 좌절의 경기다. 거기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선수들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승리를 꿈꾼다. 처음부터 패배는 나의 것이 아니라 상대의 몫이다. 그토록 단단한 맹목적 확신도 드물다. 그 순진한 망상은 얼마 못가서 무참히 깨진다. 승리의 월계관은 선택받은 극소수의 차지로 끝난다. 나머지 대다수는 패자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만에 하나.’ 선거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 승자의 자리가 하나다. 하지만 그것을 향한 도전자들의 수와 욕망이 넘쳐난다. 천신만고 끝에 이긴 자는 늘 각광을 받는다. 우리는 승자에 환호하고...
#1. 7년 여 전으로 기억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취재차 출장을 갔을 때였다. 다른 회사 후배 여기자 한 명과 홍보대행사 여직원 한 명, 그리고 나 총 세 명은 마치 한 팀처럼 몰려 다녔다. 공식일정은 모두 마친 상태에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그곳의 ‘밤문화’가 궁금했다. 암스테르담은 공창(公娼)이 제도화돼 있다. 그래서인지 홍등가(紅燈街)는 음성적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하나의 ‘관광지’와 같았다. 주변 풍경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와 관련된 상점들이 많았다. 그 중 ‘∼ SHOW’라고 씌여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
"대감, 올해에 농사를 지어도 좋을는지 어떨는지…." 성(城)안의 한 노인이 영의정 김류 앞에 꿇고 여쭈었다. 해토머리에 땅이 부풀고 물기가 잡혀서 다랑이 밭에 봄보리라도 심으려면 애벌갈이를 시작해야 할 노릇이었다. 때는 병자호란, 임금(인조)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남한산성 행궁에 들어앉아 있었다. 청(淸)은 손금처럼 성 안이 내려다보이는 망월봉에 진을 치고, 기름이 번들거리는 홍이포(紅夷砲)로 행궁을 조준하고 있었다. 도원수 김류에게 노인의 물음은 살길이었다. 나가서 청에 맞서 싸울지, 머리를 조아리고 ‘칸’을 맞아들일지...
사전적으로는 ‘음력으로 그 달의 열 닷새째 날’이다. 굳이 이를 따지지 않아도 통상 ‘한 달의 중간’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중간 혹은 절반은 참 많은 의미를 지닌다. 과거의 정점이며 미래의 시발이다. 지난 일들이 좋지 않았더라도 이를 다잡고 앞을 바라볼 수 있다. 더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딱 좋은 시점이다. 전체를 놓고 봤을 땐 공평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반을 토대로 앞으로의 반을 유추할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중용(中庸)이 화두가 되기도 했다. 저서의 실체를 떠나 개념 자체가 중간 혹은 절반과 닮았다...
황해도 옹진군 동광면, 팔순을 훌쩍 넘긴 내 어머니의 고향이다. 전쟁을 피해 잠깐 피했다 오자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선 게 마지막 고향길이다. 1주일만 있으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길고 험한 피난길에 아버지는 흔한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멀쩡한 고향집에는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었지만 맏딸인 어머니는 그렇게 남쪽에서 천애 고아가 됐다. 16살 때 일이다. 전쟁이 끝난 후 남북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서슬 퍼렇게 맞서는 대치가 이어지면서 이북의 고향은 더 이상...
이번 글 역시 앞서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워낙은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경기문화재단의 문제를 거론하려 했고, 형식도 머릿속으로 얼추 맞춰놨으나 다른 문제로 기사가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글마저 재단 이야기라면 자칫 오해 아닌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현재도 취재 중인 기사에 자칫 진정성을 의심 받지는 않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역, 지역사회, 지역이기주의는 아닐까 하는 지역에 대한 화두다. 그런데 십여 년간 지역기자로 활동하던 인간이 갑자기 지역이 화두라...
"국내의 자제를 가려 뽑아서 머리를 깎고(변발) 되놈(만주족)의 옷을 입혀서 지식층은 가서 빈공과(賓貢科·중국서 외국인을 상대로 실시한 과거)에 응시하고, 세민(細民)들은 멀리 강남(江南·양쯔강 이남)에 장사로 스며들어 그들의 모든 허실(虛實)을 엿보며 그들의 호걸을 묶어 조직한 다음에야 천하의 이(利)를 꾀함직하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지 않겠소." 북벌(北伐)의 상징적 존재 어영대장 이완(李浣)이 천하 평정의 길을 묻자, 허생(許生)이 이르는 방도다. 인재등용과 훈척들의 추방 및 명나라 후예와의 결탁, 유학(留學)과 무...
담백하고 명료하다. 수(數)의 속성이다. 철학적 사유와 현세적 분석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수는 그 자체의 직진성만으로 충분하다. 수의 흡입력은 그 명징성에 있다. 보태거나 덜어내지 않을수록 수의 절대성은 오롯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에다 자꾸 의미를 덧칠한다. 줄이고 늘려 상대성을 마구 잡아당긴다. 가치로 수를 치레하고, 해석으로 그 값을 분장한다. 간단하고 분명한 수의 본성을 흩어버리고 그 자리에 왜곡하고 변주한 수로 채운다. 정치색이 진한 세속일수록 이런 흐름은 더욱 짙다. 얼마 전 인천시는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