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품에는 시대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해당 작품의 시공간은 현재와 차이가 나더라도 작품이 주는 감동은 오랜 여운을 남기며 묵직하게 다가온다. 오늘 소개할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71년도 작품으로 우리에게는 영화음악인 ‘해는 뜨고 지고(Sunrise sunset)’라는 곡으로 익숙한 추억의 명화이다.
우리에게 ‘장발장’으로 더욱 친숙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불행한 사람들)’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재창조되고 있다. 여러 장르의 창작물 중에서 원작 소설만큼이나 대중의 오랜 사랑을 받아 온 것은 뮤지컬 버전으로, 이는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전세계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번 겨울에 개봉
노년의 삶과 죽음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느 누구도 나이듦과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2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 ‘아무르’는 늙음에 대한 성찰을 죽음과 사랑의 이야기로 그려낸 작품이다. 오랜 시간 함께 사랑하고, 믿고, 의지
영화의 지향점은 감독마다 다양하다. 독일 뉴 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은 소외된 자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주노동자, 가난한 사람, 성적 소수자 등이 그가 주목한 사람들이다. 21세에 영화계에 데뷔해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40여 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한 파스빈더는 끊임없이 사랑에 집착했다. 그가 그린 소수자들은 모두 사랑에 목마른 애정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신의 27번째 작품인 ‘란(亂)’을 통해 인류에게 보내는 유언,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각색해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인간의 폭력성과 전쟁, 그리고 몰락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 등을 비관
최근 우리 사회는 끔찍한 범죄들로 들끓고 있다. 어린이 성폭행 사건과 시신 훼손 및 유기 등의 흉악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형량 강화와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범죄 수법과 이후 시신 유기 등의 상황이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되면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 구형에 대한 국민 정서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중
한국·중국·러시아와 일본과의 영토 분쟁은 여전히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는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과거 식민지 영토의 귀속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독도와 댜오위다오, 북방영토 등 동아시아를 둘러싼 영토 분쟁에 있어서 일본은 국제법만을 내세워 해결하려 들지만 일본의 이러한 입장은 분쟁국면을 더욱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국내 영화의 위상을 높인 작품으로, 지난 9월 가장 뜨겁게 주목받았던 한국 영화였다. 극장을 찾아 이 영화를 봤을 때, 관객들로 가득 찬 극장 안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이 이토록 대중적이었던가? 반문을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눠 보자면,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의 기준은 주관적인 것이라서 나에게 재미있는 영화가 타인에게도 재미있으란 법은 없으며,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봤다 해서 나에게도 그와 똑같은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이를 둘러싼 감정과 정서에 따라
시원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가을. 올해도 어김없이 단풍은 제 몸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건만, 청량한 가을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높고 파란 하늘 아래 붉게 물든 단풍은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보이며 더욱 우리를 설레게 한다. 사계절 중 가을이 뿜어내는 화려한 색감은 보
오늘의 삶을 대하는 모습은 그 사람의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한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 같아도 꿈을 꾸며 살아가고 늘 그 꿈을 향해 노력한다면 어떠한 모습으로든 그 미래는 현재가 되기 마련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다고 새 삶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 어느 곳에서든 그 인생은 별반
선과 악, 자본과 종교. 이 두 개념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나,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19세기 말에 시작된 미 서부 석유재벌의 탄생과 그 자본을 필요로 하는 종교의 탐욕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 남자가 좁은 갱도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자신을 향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언제입니까? 상황이 슬퍼서 흘리는 것도, 세상을 향한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흘리는 눈물. 그 눈물의 순간은 일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자신에게 쏟아내는 눈물은 삶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진정한 깨달음을 의미하기에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값지다. 이토록 뜨거운 눈물은 그간
8월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염원하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했던 17일간의 경기. 우리가 선수들을 응원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삶에 지친 우리들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한 광고 문구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희망과 감동을 함께했다. 이처럼 여러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세상은 향기롭게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생명을 얻어 태어나는 것이 그렇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이는 아무도 없다. 죽음도 이와 같다. 주어진 삶의 주기를 살다가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 또한 스스로의 결정권을 벗어난 일이다. 세상 만물은 자연의 섭리 속에서 생과 사를 맞이하고 우리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순리에서 벗어난
팔색조, 카멜레온 그리고 배우의 공통점은 바로 변신이다. 새로운 이미지로 변화된 배우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자극을 준다. 유행의 속도가 빠르며 새로운 신인들이 넘쳐나는 쇼 비즈니스 산업에서 변화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만을 보여 주는 배우는 도태되고 결국엔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은 모습으로도 영원한 스타가 된 배우가 있다. 금발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철드는 시기도 늦춰진 것일까? 요즘 사람들은 대다수가 실제 나이보다 저연령화된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40대 남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TV 드라마를 보더라도 중년의 연애 방식이라는 것이 20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세월을 빗겨간 동안외모에 여전히 꽃미남,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업을 두
돌이켜보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다. 이미 지나 버린 과거이기에,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에 그저 추억할 수밖에 없는 그때 그 시절. 오늘 소개할 영화 ‘디어 헌터(The deer hunter)’는 세 청년이 맞이하는 인생의 전환점을 담아낸 작품이다. 유쾌했으며 평화로웠던 그들의 청춘은 베트남전 참전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제철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 주는 영화가 있다. 짙게 깔린 어둠 속 차가운 밤공기, 뿌옇게 흩어지는 담배연기와 독한 위스키 한 모금.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한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의 키스. 거친 차바퀴 소리에 뒤따르는 매캐한 연기. 다급한 총성과 황급히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어떤 영화가 상상되는가? 이 모든 요소들은 일명 ‘검은 영화’
7·8월에 집중됐던 여름휴가는 최근 6월 말과 9월 초순께로 다변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오늘은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통해 색다른 의미의 여름휴가를 선사하려 한다. 1959년 개봉해 ‘산드라 디’라는 불멸의 청춘배우를 탄생시킨 추억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서양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