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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죽고 아들 조비는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 제국을 창업하고 황제가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중신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한중왕 유비에게 황제 위에 오를 것을 권하는데 유비는 강경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제갈량이 진언했다."성인께서는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순리에 어긋난다고 했지요(名不正則言不順). 허나 지금 주공께서는 명분이 정당하고 언사가 순리에 맞습니다(名正言順). 하늘의 뜻을 받들지 않는다면 도리어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그리하여 유비는 서기 221년 4월 촉한 황제로 즉위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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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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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직전에 형주를 다스리던 유표 진영이 어이없이 망한다. 일찍이 난세의 준걸로 칭송받던 유표가 둘째 부인 채 부인의 일족에게 휘둘려 체제가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채 부인의 친정 동생 채모는 군사령관이었지만 자질이 모자랐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신야성의 유비를 헐뜯었다. 형주 북방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유비 세력을 어떻게 하든 약화시키려 몸부림쳤다고 할까. 채모는 대놓고 유비를 없애려 했다. "유비는 세상에 알려진 사납고 야심을 지닌 호걸로 신야성에 오래 두면 반드시 해가 될 것이니 없애야 한다."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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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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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백만 대군이 남하할 때 장강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지던 손권 진영은 항복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주유는 이런 주장이 못마땅했다. 때마침 제갈량이 와서 격장지계로 손권을 부추겼고 손권은 싸울 결심을 하지만 주유는 혹시 모를 변화를 염려했다. "저는 장수로서 이 몸이 죽는다 해도 조조와 결전할 각오입니다. 다만 주공(손권)께서 뜻을 바꾸실지 몹시 걱정이 됩니다(只恐將軍 狐疑不定)." 손권은 주저없이 패검을 뽑아 앞에 놓인 탁자를 내리치면서 말했다. "누구든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한다면 이 탁자처럼 될 것이다." 마침내 적벽대전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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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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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최후 승자는? 흔희 사마의를 지목하는데 그리 흔쾌하지 못하다. 소설에서 굳어진 그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정략적이거나 제갈량과의 결전에서 보듯 여러 모로 부족해 농락당하기 일쑤고 다행히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사했기에 승전 장군이 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마의는 결코 무능하거나 정략만으로 버틴 인물이 아니다. 그는 원래부터 앞에 나서길 싫어했고, 집안의 흥망에 보다 관심이 많은 입장이었으며 최적주의자로 손꼽을 만한 나름의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병사하기 직전, 사마의는 촉한의 사신을 맞이했다.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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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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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에 대해서 악행이나 대전투에서의 허허실실 모략을 말하는 경우는 많으나 소탈하고 실제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한번은 반동탁연합군의 일원으로 철수하는 동탁군을 추격하다가 대패하고 나서 동군으로 들어가 장래를 기약하며 기반을 다질 때였다.조조가 대장장이와 함께 담금질을 하면서 작은 칼을 만들고 있는데 북해 땅에서 선비라고 소문난 손빈석이란 인물이 찾아와 이 모습을 보더니 빈정거렸다. "동탁과 맞선다는 사람이 고작 풀무장이와 어울려 칼자루나 만들다니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조조가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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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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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라는 인물은 어머니의 편지(물론 가짜였다)를 받고 유비 진영을 떠나 조조가 있는 허도로 갔고, 떠날 때 제갈량을 추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마음에 없었으나 하는 수 없이 적벽대전 당시 조조 진영에 머물고 있었다. 이대 방통이 연환계를 쓰고 주유와 황개의 고육계가 있자 화공(火攻)을 예측하고 꾀를 냈다. 즉 조조가 적벽에 있을 때 멀리 서량의 군사가 허도를 노린다는 소문을 내고 자원해 그들을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조는 서서의 제안에 몹시 흡족하게 여겨 병력 3천을 내어주면서 허도로 돌아가게 했다. 이리하여 그는 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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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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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조조는 정치적 수완이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전략과 전술에도 뛰어나지만 문학적으로도 중국 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독서를 본업처럼 한 인물이었다.어지러운 세상에서 정치가, 군사전략가, 문학가로서 이름을 날린다는 건 몹시 힘든 일이려니와 역사에서 그리 흔한 경우가 절대로 아니다. 더구나 그의 글은 담대하면서도 섬세하게 세상의 어지러움을 극복하고 민생을 어여삐 여기는 뜻이 분명하다. 쉽지 않은 자세인 것이다.오늘날 정치를 보면 권력층의 공공연한 반칙과 그들만의 특혜, 내편 의식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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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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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을 천하의 기재로 미화시키려는 「삼국연의」의 묘사는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하다. 심지어는 다른 이의 공적까지 슬쩍 가져다가 제갈량에게 보태 주는 걸 서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제갈량의 맞수들은 모조리 바보나 멍청이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그 중 하나가 위나라의 대장군 조진이었다. 정사의 기록에는 배포도 있고 지략이 풍부했으며 끝내 병들어 죽게 됐으나 순순히 사마의에게 대장군 직인을 내준 인물이었다.그런데 조진과 사마의에 맞선 제갈량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장수는 모름지기 거취와 진퇴, 강약과 강유를 조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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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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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물리친 손권·유비 연합군 내부 다툼도 흥미진진한 전쟁의 연속이다. 물론 칼과 창을 쓰는 싸움이 아니라 지략과 이를 받아치는 계략의 승부다. 그 주역이 제갈량과 주유. 특히 형주를 둘러싼 대결이 볼 만했다. 형주를 점령한 유비에게 반환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지자 유비는 서천(西川)을 차지해 근거지를 마련하면 형주를 손권 측에 넘겨주겠다는 각서까지 써주는데 이를 받아온 노숙에게 주유는 호통을 치며 ‘우리가 서천을 빼앗아 줄 테니 유비는 길을 빌려주고 군량을 지원해 달라’는 명분으로 형주 공략 계책을 세운다. 이 제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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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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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무대에서 의미 있는 두 전쟁을 꼽는다면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이다. 이 두 전쟁에서 공통점은 다수의 병력과 병참의 이점을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상대에게 궤멸적 패배를 당했다는 것과 중국 대륙을 간단한 세력 분할로 마무리했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에 관한 무수한 계책과 실패 요인 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관도대전의 경우 워낙 막강한 원소 진영이었으므로 간단히 물리치기는 불가능했다. 또 승자가 됐지만 조조로서 마무리하려면 꽤 시일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풍토병에 걸려 책사 곽가를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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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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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도원결의를 통해 관우, 장비 같은 인물들을 거느리게 되고 첫 번째로 사회에 나가 두각을 나타낸 일이 도적떼로 변한 황건군 잔당 토벌에 참여한, 이른바 의병으로 참전했던 것. 이때 사세가 궁해진 황건 무리 하나가 투항할 뜻을 전해왔는데 정부군으로 나선 주준이라는 장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모조리 죽이겠다고 앙앙불락댔다. 이때 유비가 타일렀다. "지금 저들이 사방으로 포위돼 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국 죽기를 각오하고 대들 것이 분명합니다. 일찍이 듣기로 만 명이 한마음으로 뭉치면 당해낼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 저들은 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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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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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형주에서는 조조 군에게 항복할 것인지 싸울 것인지 군신 사이에 토론이 있었다. 부손이라는 자가 먼저 "조조에게 투항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하자 유종이 화를 내며 "무슨 소리냐! 내가 선친(유표)에게서 기반을 물려받은 지 얼마 되었다고 항복부터 권하느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괴월이란 사람이 조용히 타일렀다. "세상에 거역하고 순응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원칙이 있습니다. 지금 조조는 조종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어 자칫 맞섰다가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습니다."결국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하기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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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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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촉·오 삼국시대 군주들은 저마다 천하통일의 꿈을 키우고 부국강병(富國强兵) 목표를 세웠다. 당연히 백성을 살찌우고 국력을 튼튼히 해 상대보다 우위에 서고 이를 실현하려고 했을 터.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망국의 임금은 대략 폭군이나 암군으로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부모 잘 둔 덕분에 호강을 누리며 온갖 못된 짓을 다했던 것이다. 촉한의 유선, 동오의 손호는 그런 인물의 전형으로 손꼽을 만하다. 유선은 나라가 망한 뒤에 연회를 열면 히죽히죽 웃으며 즐겼고, 손호는 조금 강단이 있어 진무제 사마염이 "짐이 이 자리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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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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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무대가 끝나가는 시기에 유비가 세운 촉한과 손권이 세운 오는 한심한 나라의 전형으로 꼽힌다.오에서 손휴(孫休)가 즉위하면서 이 사실을 촉한에 알렸고, 촉한의 유선은 사신을 답례로 보내 축하했다. 손휴가 재차 사신을 보냈고 다녀온 사신이 촉한의 형편을 보고했다. "요즘 촉한에서는 내시 황호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그에게 아부하는 공경대신이 많았습니다. 바른 말하는 이가 없고 들에서 일하는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습니다.소위 제비나 참새 같은 것이 둥지를 튼 큰집에 불이 날 줄을 모르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손휴가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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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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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의 첫 작품 주인공은 장비였다. 원(元)나라 말기였으니 한(漢)민족이 장비처럼 용맹하게 몽고족을 물리쳐주길 기대했던 까닭이다. 사실 이후 개정판이 나오고 가필 보완이 수없이 이뤄지지만 장비의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선 시커먼 털북숭이 사내, 힘은 태산을 뽑을 정도로 강한데 꾀를 쓸지 몰라서 무모하리 만큼 저돌적이고 단순한 사내, 그러면서도 결의형제를 맺은 유비와 관우에게는 막내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열렬한 사내가 바로 장비였다. 일설에는 그림에도 능했다고 하지만 남아 있는 작품은 없고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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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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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의 역할이 뭔가? 흔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좌에 앉은 2인자의 덕목을 이야기할 때 여러 관점이 있다. 촉한의 제갈량은 중국 역사상 명재상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제갈량이 재상의 역할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병길우우천’. 이 이야기는 「사기」에 나오는데 전한시대 재상이 병길이 어느 날 행차 도중 싸워 맞아 죽은 시신이 길에 즐비했음에도 왜 싸웠는지 묻지도 않고 지나갔는데, 얼마 후 사람이 몰고 가는 소가 심히 헐떡거리는 걸 보고 ‘소를 얼마나 먼 곳에서 몰고 왔느냐?’고 물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측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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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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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죽은 날 밤, ‘하늘과 땅이 슬픔에 잠긴 듯 달도 빛을 잃었다(是夜天愁地慘 月色無光)라고 「삼국지」는 기록하고 있다. 그의 죽음이 지닌 의미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이유일 것이다. 유비 사후, 제갈량은 어리석은 군주와 용렬한 조정대신이 설치는 촉한을 추스르면서 북벌에 나섰으나 끝내 사마의의 견수자중(堅守自重)이라는 전략 앞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병사했다. 그때가 54세. 가을 바람 불어오는 음력 8월 말 오장원에서였다. 이때 제갈량은 제단을 쌓고 본명등(本命燈)과 49개의 작은 등잔불을 밝히고 인간 수명을 주관하는 북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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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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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무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100만 대군에 맞선 손권·유비 연합군의 주유와 제갈량이 서로 견제하고 다투면서도 조조군을 물리칠 결정적 한 방을 마련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각기 자신의 손바닥에 글을 쓰고 동시에 펼쳐 보였다. 그 손바닥에는 불 화(火)자가 적혀 있었다(周瑜掌中字 乃一火字 孔明掌中 亦一火字). 이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파안대소한다. 그리고 나서 주유가 제갈량에게 말했다. "이미 우리 둘의 의견이 똑같으니 더 이상의 의문은 없소. 절대 누설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이후 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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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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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서 진영을 벗어나 배신자로 꼽힐 위험이 있었지만 이런 세속의 룰을 벗어났을 뿐더러 귀순한 촉한의 대장군이 됐고, 제갈량의 후계자로 명성을 날린 인물이 강유였다. 하지만 그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고, 조급한 탓에 번번이 기회를 잃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때는 촉한의 2세 황제 유선이 환관 황호에게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는 등 위기에 처해 있었다. 중산대부 초주가 강유에게 글을 지어 보냈다. "큰 나라에 걱정거리가 없으면 언제나 오만해지고 작은 나라에 우환이 있으면 항상 선정(善政)을 생각한다. 오만이 쌓이면 혼란이 생기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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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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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이 직접 전투에 나섰다가 조조군에게 포위돼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였다. 주태(周泰)라는 장수가 뛰어들어 온몸에 창과 칼을 찔리면서도 두 번씩이나 포위를 뚫고 손권을 구해냈다. 감격한 손권이 주태의 상처를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그대는 나의 공신이니 나는 당연히 공과 함께 영광과 치욕,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주태에게 푸른 일산을 하사해 그의 공적을 모든 이가 알 수 있도록 했다. 위태로운 주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긴 고사는 무수히 많다. 또한 주군 앞에서는 굽실거리다 뒷등에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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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