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하루 앞둔 섣달그믐(양력 2월 7일)이었다. 아침 밥상을 물린 뒤 오랜만에 가족·친지들이 모두 둘러앉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묵묵히 버텨 내는 피붙이들에게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건강하자, 승진도 하고, 돈도 많이 벌자. 시집·장가 가고, 열심히 공부해서 바라던 학교에 꼭 붙자. 으라차차!’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 모처럼의 만남은 그렇게 농익어 가고 있었다. 순간, TV 자막에 속보가 떴다. ‘북(北), 장거리 미사일 발사.’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TV에선 벌써 난리가 났다. 청와대는 박...
청소행정은 기초자치단체의 고유 사무다.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가 군·구에 위임한 사무가 아니다. 그만큼 청소행정은 최말단의 일이다. 주민 생활과 밀착해야 한다는 얘기다. 흔히 행정사무는 권력 행사를 기반으로 한다.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자유를 규제한다. 그러나 청소 행정사무는 다르다. 권력 행사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생활의 안전을 담보하는 복지사무다. 인천시 남동구가 정초부터 쓰레기로 난리법석이다. 제때 치우지 않아 길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로 주민들의 입이 댓 발 나왔다. 동 주민센터 직원들은 시도...
선거의 해다. 깊은 불황의 그늘에 새해도 뭐 하나 나아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고문’처럼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건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이제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국회는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로 예비후보 등록을 끝냈지만 헌재가 정한 선거구 획정 최종 시한을 넘겨 ‘1일 0시’부터 선거구가 모두 사라지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았다. 이미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들은 자신이 싸워야 할 전장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현역 국회의원 역시 ...
공무원(公務員)을 영어로 ‘Civil Servant’라고 한다. 시민의 머슴이라는 뜻이다. 법 테두리 안에서 착하게 살고자 하는 시민들에 대한 무한의 봉사, 그 단단한 무장이 ‘공무원 정신(精神)’이다.지치고 힘들 때, 그 고단함을 딛고 새로운 삶과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행동하는 양심’ 그것이 공무원의 참된 모습이다.공무원의 힘은 선량한 시민들의 ‘믿음’과 ‘따름’에서 생성된다. 공무원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공공성(public)의 발현’이라는 시민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서다.이는 공권력(公權力)의...
EBS가 수능대비로 오래된 고전문학 300선 중 오영수의 단편 「갯마을」을 소개한 적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지 하면서 천성적인 게으름 탓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옛 고전도 아직 손을 못 댔다. 황금 어장을 남에게 내주고, 제대로 주인 행세도 못한 채 세금만 물게 된 인천의 한 섬마을을 찾아가며 얼핏 접했던 소설의 줄거리가 떠올랐다. 대충 줄거리는 스물을 갓 넘긴 보재기(해녀)가 고향인 제주 앞바다를 지킨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일제강점기 어린 해녀가 잠수기를 들여온 일본인에게 쑥대밭이 된 제...
「벌거벗은 임금님」의 어리석은 왕은 착한 사람에게만 옷이 보인다는 재봉사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다가 어린이에게 망신을 산다. 허세와 가식으로 가득한 정치인을 풍자한 이야기지만 왠지 모르게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진실을 말한 ‘어린이’이다.거짓에 속은 왕과 그런 왕을 오히려 추어올리는 위정자들에게 거침없이 던지는 어린이의 손가락질은 흡사
시작은 “민족대표 33인 중 인천에 살고 있는 후손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막연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3·1운동 당시 33인의 애국지사 중 수도권 대표자로 지정된 인물 중 인천에 거주하는 후손은 모두 4명이다. 국가보훈처는 비교적 이들의 행적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김행식(9
학교에 가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했고, 공부도 곧잘 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딱 한 가지 매 맞기가 싫었다. 당시 시험성적에 따라 ‘타작’이 예고된 날이면 더욱 심했다. 마치 지옥에 끌려가는 심정이랄까.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에게 매를 맞은 네 살배기 아이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 자아
스포츠는 스토리(story)다. 그 자체가 역사이고 감동이다. 체육 ‘웅도’ 인천의 스포츠가 바로 그렇다. 개항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스포츠의 효시가 된 인천은 한인 최초의 야구단 ‘한용단(1919년 창단)’을 탄생시켰고,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 군인들에 의해 처음 축구가 전파됐다. 인천이
“당신이 세월호 증·개축을 지시한 것 맞습니까. 그리고 세월호 선사(청해진해운)로부터 자금을 빼돌려 회사를 부실에 빠뜨린 건 아닌가요.”만약 숨진 유병언(73)씨가 전남 순천의 매실 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고 검찰에 자수하거나 체포됐다면 어땠을까. 아마 검찰은 그에게 이같이 추궁했을 것이다. 이미 그에게 주어진 배임과
현상금 5억 원.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73)전 세모그룹 회장을 지명수배하면서 검찰이 내건 신고 보상금이다.희대의 탈주범 신창원과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걸린 현상금의 10배다. 단연 역대 최고 금액이다. 검찰은 유 씨에게 배임과 횡령, 조세 포탈 외에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추가했지만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 6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며칠 ‘헌법 1조 2항’을 몇 번이나 곱씹어 되뇌었는지 모른다.세월호 침몰 참사 보름이 지났다. 이제 생존자가 있을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분노만 차올랐다.사고 발생 초기, 현장을 찾은 대통령 앞에 무릎 꿇고 “
한비자(韓非子)에 보면 ‘법은 이루의 눈이고 사광의 귀’라는 말이 있다. 유달리 눈이 좋은 이루와 귀가 밝은 사광을 가리켜 군주가 그들과 같은 눈과 귀를 갖고 있지 못하니 법에 의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천년의 시간이 흘러 군주가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도 법은 무엇이 맞고 틀리는지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다. 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