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가 있기에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고 바쁜 일정을 기꺼이 소화해 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멀리 가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루하루를 쉼 없이 달려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몸은 지쳐 있고 마음 역시 공허함과 좌절감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왜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나에 대한 남들의 기준은 높은데 그 기준에 내가 도저히 맞
급속도로 진화하는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편리한 삶을 제공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렸으니까요. 지하철 승객들 대부분의 시선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 발달이 주는 혜택이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순기능만 존재할까요? 아닐 겁니다. 우리가 속도와 수월성이란 단맛에 집착해 평온과 여유로움이라는 또 다른 삶의 기쁨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이와 관련해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아잔 브라흐마 저)에 사색해 볼 만한 예화가 있습니다."어느 날 한 사람이 아침 일찍 밭을 갈려고 물소를
사람이 두 번 살 수 있다면 두 번째 삶은 그 이전 삶과는 무척 다를 겁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되고, 후회하며 슬퍼할 테니까요. 그래서 살아만 날 수 있다면 과거와는 달리 살겠다고 다짐하겠지요. 죽음에 대한 사색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 사색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성 이야기 111가지」(박민호 저)에 유명 소설가의 일화가 나옵니다.38세의 사형수인 그는 기둥에 묶입니다. "사형 집행
글을 읽고 쓰는 일이 본업이니 스트레스가 없을 거라고 지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한 문장을 써 놓고 다음 글을 이어가지 못해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지낼 때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난관에 봉착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있으며, 가까운 벗이나 동료들과의 오해로 인해 갈등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항변하고 싶지만 더 깊은 갈등을 초래할지도 몰라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때면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이럴 때는 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해도 말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초등학교 시절 어느 더운 여름날, 온몸이 땀에 젖도록 뛰어놀다가 집에 오는 길에 친구들과 개울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개헤엄을 치며 놀다가 잠시 물속을 들여다보니 송사리 한 마리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녀석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두 손을 녀석 가까이 가져갔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송사리를 낚아챘습니다. 물 밖에 나와 두 손을 펼쳐 보니 있어야 할 송사리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송사리가 저보다 더 민첩했던 겁니다. 자그마한 송사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순식간에 자신의 방향을 바꿀 수 있
대선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각 당의 경선부터 지금까지 나라의 장래에 대한 깊은 고심의 흔적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경쟁 후보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된 그들의 언행에서 실낱같은 희망마저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무척 불편합니다.닭과 소가 대화를 나눕니다. 닭이 "사람들은 참 나빠. 자기네는 아이를 하나둘만 낳으면서 우리보고는 무조건 알을 많이 낳으라고 하잖아"라고 말하자, 소는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 젖을 먹으면서도 사람들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아"라고 답합니다.어떤 상황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달리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전의 삶에서 그 이후의 삶으로 변하는 지점이 ‘변곡점’입니다. 저 역시도 돌이켜보면 20대에 품었던 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꿈의 방향이 바뀐 변곡점에는 어김없이 해결하기 힘든 ‘고통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처절한 몸부림 끝에 장애물을 극복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그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게 된 힘겨웠던 과정이 저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다는 것을요. 빈민교육을 주창했던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에 관한 자료들을 찾다가 우연히 그의 어린 시절 일화를
어린 시절의 저는 시력은 무척 좋았습니다. 안경을 쓴 친구들이 멋있어 보여 그들을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돋보기를 써야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통계수치를 볼 때는 안경을 쓴 채로 돋보기까지 손에 들고 봐야만 합니다. 그런 탓에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섬세한 아름다움이나 화려한 꽃의 정교함을 보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많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 이 두 세상 중에 어떤 세상이 실재하는 걸까요?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 읽기’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 따스한 햇볕, 늘 그곳에 서 있는 나무처럼 그런 존재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 역시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여럿이 있을 땐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곤란을 겪고 있는 벗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귀한 사람이지 않을까요?정채봉 시인의 ‘만남’이라는 글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인의 글에서 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 여성이 남편과 두 번째 사별하고 믿음직한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세 번째 남편은 아내를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에 겨워야 할 부인은 어쩐 일인지 몸은 더 약해지고 얼굴마저 날이 갈수록 초췌해져 갔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물었습니다. "어디 불편한 일이라도 있는 거요?"그러자 부인은 단지 마음의 병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이에 남편은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해서 어떻게 사랑해주면 되겠느냐고 묻자, 부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당신이 또 죽으면 어떻게 해요?"이 글은 어느 목사님의 설교 자료집에 있
민들레꽃은 장미꽃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민들레는 민들레로 살아야 민들레답게 사는 겁니다. 민들레가 장미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민들레로 사는 것이 행복할 겁니다. 이것이 민들레다운 삶입니다.사람도 같습니다. 나다운 나로 살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다운 나로 살려면 ‘나’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아야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나를 성장시킵니다. 이런 태도로 사는 것이 나다운 나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남을 흉내 내는 것으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민들
다 가져서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 알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정상에 올랐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 모르는 것을 알았을 때, 원하던 지위에 올랐을 때의 기쁨은 짧은 시간 동안만 느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하고 어떤 생각을 가슴에 담아야 할까요?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 때 그 아이는 행복해합니다. 어른이 볼 때는 인형 따위가 무슨 행복이겠나 싶겠지만 어린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가장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른인 우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온갖 생각을 지어내는 ‘생존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일과 무관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존재의 마음’입니다. 생존의 마음은 상대의 행동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마음이지만 존재의 마음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고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따라서 생존의 마음이 일으키는 나의 감정은 상대의 태도에 따라 결정되기에 감정의 노예라고 한다면, 존재의 마음은 내 감정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감정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이렇게 두 개의 마음을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관찰하게 됩니다. 관찰하면 그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그가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니까요. 김기원 시인은 ‘사랑하면 보인다’라는 시를 통해 사랑의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사랑하면 보인다/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 사랑은 상대나 대상에 대한 관심이자/ 배려에서 출발해,/ 느끼고 공부하고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탁구를 사랑하면 탁구장에 자주 가게 되고/ 탁구의 룰과 수많은 기술을 터득하듯이/
사랑이 삶에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나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왜 그럴까요? 이성복 시인은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해줍니다. ‘그리워서’ 즉 사랑하기 때문에 병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올바른 방법을 몰라서 결국 병이 난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시 「오늘 아침 새소리」 중 일부를 옮겨봅니다.‘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 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2년 가까이 우리 사회를 고통스럽게 만든 코로나가 최근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어 걱정이 큽니다. 그동안 견뎌 온 것만도 아픈데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 저)에 두 명의 화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앙리 마티스는 오귀스트 르누아르보다 거의 28년이나 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친한 친구로 지냈습니다. 르누아르가 인생의 마지막 40년을 집 안에만 있었을 때 마티스는 그를 매일 찾아갔습니다. 관절염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르누아르는 병환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
종교에 심취한 청년이 위대한 수행자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 내용이 「지혜, 함께 가자」(문형동 저)에 실려 있습니다. 청년이 신을 사랑하고 싶다며 그 비결을 묻자 수행자는 대답 대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대는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청년이 "이 세상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그렇다면 이웃이나 형제도 사랑하지 않는가?"라고 다시 수행자가 물었습니다. 청년은 단호하게 "저는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일은 세속적인 일이 아닌가요? 저는 어떻게 해서든 신의 뜻만 따르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사람을 사랑하지 못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인생 수업」은 죽음을 앞둔 수백 명의 환자를 인터뷰한 결과, 우리가 인생에서 꼭 깨달아야 할 것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말은 아마도 무척 정직했을 겁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들,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하고 싶은 일들을 말했을 테니까요. 이 책의 프롤로그에 있는 문장이 제 가슴에 담겼습니다."우리는 배우기 위해 산다. 배워야 할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나아가 이 과목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그래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라면 성인이 돼서도 불행한 삶을 살기 쉽지만,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결핍은 성격적으로 거칠어지기 쉽습니다. 그런 거친 태도가 인간관계를 원만치 못하게 해 결국 비극적인 삶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삶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사랑 중에 부모님의 사랑만큼 진실한 것은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빛을 발할 때는 자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입니다. 2015년 성탄절 하루
오늘 글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우울증을 앓던 한 남성의 방화로 시작된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192명 중 한 분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연용호 저)에서 저자는 그분의 여고생 딸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쓴 글을 전하고 있습니다."오늘은 용돈 받는 날. 이번 주는 수학여행도 있고 해서 넉넉히 주실 것을 기대했지만 예전처럼 3만 원. 평소 쓰던 가방을 가져가기도 창피하고 신발도 새로 사고 싶었는데 화가 났다. 친구들은 용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