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것이 종착지인 생존 게임은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같은 비현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 콜로세움에서 벌였던 검투사들의 사투는 실재했던 생존 게임으로, 이 대결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사자, 호랑이, 불곰 등의 맹수와 맞붙는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잔혹한 광경이지만 당시에는 로마 시민들이 열광하는 최고의 오락이자 볼거리였다. 이토록 자극적인 쇼 이면에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로마 황제의 권력에 함부로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사랑을 다양한 시각으로 다룬 플라톤의 대화록 「향연」에는 인간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 평생 헤매는 까닭을 언급하고 있다. 토론에 참가한 아리스토파네스는 본래 인간은 남성, 여성, 자웅동체 이렇게 3개의 형태를 가졌으며, 각각 두 개의 몸에 하나의 영혼이 깃든 존재라 설명한다. 즉, 인간은 샴쌍둥이처럼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다리가 붙은 채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 인간은 이후 신을 공격하면서 그 형벌로 몸이 나뉘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자신과 완전히 한 쌍이었던 영혼의 반쪽을 찾아 떠돌게 됐다는 것이 아리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의 모습과 사회생활을 할 때의 모습에 차이가 있다. 편안한 상황 속에서는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데 반해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본성을 일부분 감추며 살아간다. 남에게 보여지는 우리의 태도나 성격은 사회적 규범 안에서 표출된다. 이는 타인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자아인 셈이다. 이를 다른 말로 페르소나라 한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자아 중 의식의 이면으로 소외되는 측면을 ‘그림자’라 불렀다. 이 그림자는 의식적인 생활 속에서 구현이 적을수록 어두워지는 경향이 있다. 즉, 페르소나에 의
익숙함을 넘어 새로움에 도전하는 삶은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반한다. 사실 현재 생활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일에 발을 담근다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우선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안의 목소리도 도전을 머뭇거리게 한다. ‘혹시라도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마음이 싹을 틔우면 새로운 모험을 향해 방향을 튼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새로운 길을 함께 해 줄 친구가 있다면 도전의 여정은 조금 수월해진다. 2021년 6월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애
어린아이들은 종종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어 현실 세계로 불러오곤 한다. 심심하거나,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를 찾는다.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 눈에는 보이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나타나는 친구들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는 어린아이 눈에만 보이는 숲의 정령인 토토로를 통해 포근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이나 일부 마니아만을 위한 장르가 아니라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누구나 즐기고 공감 가능하다는 인식의 발판을 제공한 작
삶과 죽음은 공존할 수 없는, 분리된 두 세계처럼 보인다. 현실에서 말하고 숨 쉬며 살아가는 그 호흡이 느닷없이 탁! 끊기는 순간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이상 누구도 그 시간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죽음은 화제로 올려서는 안 될 금기어와 같다. 그런 까닭에 죽음, 장례식, 제사는 더없이 슬프고 엄숙한 시간이다.그런데 지구 반대편 멕시코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분위기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무엇보다 삶과 죽음을 반대라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의 오늘은 죽은 자의 어제가
"당신은 평범합니까 아니면 특별합니까?" 이 질문에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쩐지 튀는 것 같고,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자신의 진가가 가려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우리는 모두 비범함과 평이함 사이를 무수히 오가며 살아간다. 상황에 따라서 특별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론 지극히 평범한 나를 마주하기도 한다. 연륜이 쌓이면 평범한 삶에도 무수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청소년기에는 그렇지 않다. 평범하다는 말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특별함과는 반대 지점에 있는 단어로 인식된다. 사춘기 시절 특출난 줄 알았던 자신이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스티브 잡스’라는 등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올해로 잡스의 사망 10주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창조적이며 시대를 앞서 나간 ‘애플(Apple)’의 이미지와 함께 한다. 양부모 손에 자란 잡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와는 거리가 먼 유년시절을 보냈다.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고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에 빠지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교시절, 이제 막 새롭게 떠오르는 전자공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21세기 디지털 혁신을 이룬 애플 공화국의 시작이었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잡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1인가구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이는 전체 가구 중 31.7%로 2인가구 비율인 28%보다 높다. 이제 1인가구의 모습은 2015년 이후 가장 대표적인 가구의 형태가 됐다. 연령대별로 보자면 20∼30대와 60∼70대의 1인가구 비중이 높게 나타나 미혼 가구와 배우자나 자녀 없이 홀로 지내는 고령 가구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청년 1인가구의 59%가 임차 주거 형태이며, 고령 가구는 상대적으로 자가 비율은 높았으나 소득 대비 주거
화변(禍變), 그 끔찍한 재앙은 찌는 듯한 삼복더위 중에 발생했다. 1762년 7월, 부왕인 영조는 차기 왕인 이선을 폐위하고 8일 동안 뒤주에 가둬 사망케 했다. 이를 역사는 ‘임오화변’이라 부른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기에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 일은 학술적으로도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영화 ‘사도’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파 싸움의 결과라는 학계의 통설에서 벗어나 왕과 세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족사에 보다 세밀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아서 부모·자식 간의 연을 다할 수 없었던 비극적인
2017년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는 이후 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는 운동으로 전개돼 널리 확산됐다. 국내에서는 2018년 법조계에서 시작돼 연예, 정치, 교육, 스포츠업계 등 다양한 조직에서 부당한 성추행 및 성폭행이 있었음을 용기 있게 밝히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위계를 앞세운 군대 내 성범죄의 심각성이 고발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인격체라는 인식 대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혹은 해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구한 것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다. 길고 긴 임진왜란에서 조국을 위해 스스로 일어난 의병,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핍박에 대항한 동학운동의 농민들, 식민통치에 항거해 남녀노소 모두 참여한 3·1운동, 한국전쟁 시 국가를 위해 용감히 싸운 군인들. 그리고 2021년 현재,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위험 속에서 한국이 방역 모범국이 될 수 있는 기저에는 전 국민의 적극적인 방역수칙 동참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중심에는 평범한 보통 사람인 국민이 있었다. 영화 ‘1987’은 군사정권에
중국에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가 있다. 바로 ‘탕핑’이다. 누울 당(躺)에 평평할 평(平), 즉 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최소한의 생계비로 삶을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지칭한다. 중국은 최근 성장 둔화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직업이 있다 해도 대도시에서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탕핑족은 일하지도, 집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결혼과 양육의 책임에서도 벗어나 생존만 유지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나라에도 N포세대라는 용어가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두 가지가 일치한다면 그야말로 천운이겠지만 대체적으로 어긋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꿈과 현실 사이, 그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우리를 번민의 시간 속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결론은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자는 것으로 결정된다. 이는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귀결 같은 느낌마저 든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우리네 삶이 안쓰러워 보인다. 하지만 현실을 위해 잠시 꿈을 미뤘다는 건, 완전히 접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삶은 알 수 없음의 연속이다. 그 속엔 당황스러운 일도 있지만 놀라움과 즐
지난달 28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사회 환원 계획에 따라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2만3천여 점의 개인 소장 미술품과 문화재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단연 이중섭의 그림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명성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원본으로 접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에 기증된 이중섭의 작품은 무려 104점으로 엽서화, 은지화와 함께 대표작인 ‘황소’와 ‘흰소’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내년 3월 ‘이중섭 특
5월 첫 주는 배우 윤여정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으로 뜨거웠다. 영화적 성취와 함께 특유의 솔직하고 유쾌한 입담이 돋보인 수상 소감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윤여정은 아카데미에서 자신을 영화계로 이끈 고(故)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데, 2년 전 봉준호 감독도 칸영화제에서 김기영 감독에게 존경의 뜻을 전한 바 있다. 국내외 영화계에서 시대를 앞선 천재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김기영은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병리적 관점으로 포착했다. 윤여정 배우의 영화 데뷔작 ‘화녀(1971)’는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온 계급 간
가왕 조용필이 1972년 발표한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으로 시작한다. 엘레지의 여왕인 이미자의 대표곡 ‘동백 아가씨’는 말 못할 사연을 가슴에 품고 그리운 님을 기다리다 울다 지친 여인을 빨갛게 멍이 든 동백꽃에 비유했다. 하춘화가 리메이크한 ‘아리랑 목동’에서도 동백꽃이 제 아무리 고와도 사랑하는 내 님만은 못하다는 가사가 나온다. 이처럼 우리 대중가요에 심심찮게 언급된 동백꽃은 서양의 예술작품에서도 사랑받는 소재다.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를 원산으로 하는 동백나무는 18세기 후반 선교사
최근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이는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당하는 사람을 혼란에 빠트리고, 급기야는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없어 가해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행태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1938년 연극 ‘가스라이트(gas light)’에서 유래됐다. 오늘은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1944년 영화 ‘가스등’을 소개한다.부모를 잃고 이모와 함께 살아가던 폴라는 청소년기에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다. 유명 오페라 가수인 이모 앨리스 엘퀴스트가 자택에서 살해된 것이다. 이에 폴라는 런던을 벗어나 이탈리
장미처럼 붉고 화려한 꽃이 있는가 하면 단아하고 청순한 매력의 이름 모를 꽃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를 결정하는 것은 취향에 따라 갈릴 뿐 정답은 없다. 어떤 꽃이건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오즈 야스지로의1958년작 ‘피안화’는 두 부류의 꽃 중 후자를 닮은 작품이다. 드라마틱한 갈등 구조도 약하고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중무장한 영화도 아니다. 카메라는 정적으로 대상을 비추고 화면을 채운 공간은 집 안, 회사, 식당, 기차역 등 일상의 장소들이다. 오락용 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오즈 감독의 영화는 특유의 차분하고 정갈한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코세이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명 감독들이 한결같은 존경을 표하는 감독이 있다. ‘우리 시대의 셰익스피어’, ‘진정한 거인’으로 칭송되는 이 사람은 ‘세기의 아시아인’으로도 선정된 일본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다. 영화 ‘라쇼몽(1950)’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그는 독특한 서사 전개와 생동감 있는 화면 구성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후대 영화인에게 귀감이 됐다. 뿐만 아니라 필모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휴머니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