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오로지 힘(power)이 좌지우지하는 국제정치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힘 있는 국가가 되는 꿈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근대 이후 세계 어느 나라든 자신들의 국가체제를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앞서고, 강하고, 바람직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우리의 경우는 더더욱 간절한 바였다. 구한말 이 땅의 정치지도자들이라고 해서 이런 추세를 읽고 기대를 갖지 않았을 리 없다. 하나 제대로 역할을 못했기에 일본이라는 국가 안으로 강압적으로 끌려들어가 망국의 비운을 겪어야 했다. 단 한 걸음 빨리 근대국가 체제를 만든 일본에게...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미국 외교술의 노하우(?)를 밝힌 적이 있다. "어떤 것을 협상하려 할 때는 우선 상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상대가 두려워하는 것이 뭔지, 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지 등. 그러고 나서 우리가 그들로부터 원하는 것을 취하고 그게 그들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믿게 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요술방망이 같은 외교술이라고 자화자찬한 것일 텐데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즉, ‘상대가 두려워하는 것이 뭔지, 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이다. 작금의 한일 역사전쟁과 경제전쟁에서 우리는 반성하지 않는 ...
우리는 지금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전쟁을 치르면서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은 평화 헌법을 바꿔 군대를 보유한 나라를 만들면서 동북아에서 자신의 몫을 키우려는 구조로 바꾸려 우리와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논리가 바로 "내가 하는 행동이 국제 규범"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정책을 자기 쪽에 유리하도록 바꾸거나 우리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사실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아베 총리, 트럼프 대통령 이 세 사람의 목표는 비슷한 점이 많고...
젊은 시절 소니의 사각형 트랜지스터와 ‘워크맨’ 등에 매료당했던 기억을 가진 이들이 꽤 많다. 일본제의 위력(?)이 상상 외로 컸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했을 때 흥분한 시민들이 일본제품 불매 운동과 왜색문화 추방을 소리 높여 외치며 일장기를 불태우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결말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흥분이 가라앉으면 또다시 일본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아베 일본 총리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반발해 일어나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옛 기...
곧 제헌절이다. 1948년 7월 12일에 국회를 통과하고 5일 후인 17일에 공포돼 ‘헌법이 제정된 날’을 뜻하는 제헌절이 생겼다. 헌법은 나라의 기초를 설계한 문서로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초석이 마련되고 제시된 날이기에 제헌절은 대단히 중요한 날이다. 그러나 대통령 권력이나 의회 권력을 차지한 정치권은 제헌절은 물론이고 헌법까지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제헌절을 법정공휴일에서 배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것만이 아니다. 헌법은 각종 공무원 시험의 과목이었다가 제외되기도 했다. 공무원으로 행정 기술자를 ...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꼭 69주년이 되는 주말에 남·북·미의 최고지도자 3인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1953년 7월 휴전 이후 수차례의 군사적 충돌 위기가 있었고 2017년 하반기는 전쟁 재발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한반도를 둘러싼 검은 먹구름은 위태위태하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져 한반도의 검은 먹구름은 걷히고 평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 줬다. 특히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서 채택이 무산된 뒤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가 중단되는 곡절을 겪긴 ...
‘김원봉 떠받들기’와 ‘백선엽 찬가’로 이념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현충일에 문 대통령이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고 결과적으로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되었다"고 언급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차명진 자유한국당 전 의원은 김원봉의 월북 이후 정치적 행적을 거론하면서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했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일제의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만나 "백 장군님이...
6월의 홍콩은 대규모 시위와 반중(反中) 집회, 파업 예고와 철회 등으로 소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천안문 사건 30주년 추모 집회에 18만 명이 모였고, 중국으로의 범죄인 송환(송환법)을 허용하는 조례 개정 반대 시위에는 100만 명이 넘었다. 홍콩 인구 700여만 명 가운데 어린이와 노인을 빼면 ¼ 이상이 거리로 나와 반중 시위를 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현행 규정에서 범죄인 인도는 홍콩의 회고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개정하는데 의회 심의가 없어지고, 행정수반과 법원의 문서 검토로 인도할 수 있다는 정...
소설 「에코토피아」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가 세계의 여러 국가들과는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지만 미국과 철저히 단절돼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이 나라의 실상을 현지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공평하게 평가하기 위해 뉴욕의 신문기자 윌리엄 웨스턴이 방문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미국으로 상징되는 정치와 경직된 사회구조, 그리고 오로지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세계에 대해 원칙을 내세워 반대하는 비판적 지성과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웨스턴 기자는 ‘수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 에코토피아 사...
요즘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 장기 저성장 및 주거환경 악화로 인한 도시 기능의 쇠퇴에 대응해 시민들의 주거 복지와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향후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혁신사업으로 도처에서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될 예정으로 있다.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선정됐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도시개발 정책의 사회적 본질에 ‘개발 이익’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서울역 일대에서 지난해부터 이뤄지고 있는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음식을 매개로 공동체를 회복시키겠다는 신선한 발상으로 ...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주 홍군(인민해방군 전신)이 ‘대장정’을 시작한 장시성 위두현의 장정 출발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면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면서 의미 있는 장면을 보여줬다. 장정 출발 기념비는 85년 전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수뇌들이 국민당 군에 포위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과감히 홍군 주력부대를 도하시키고 1년여가 넘는 기간 동안에 약 1만㎞의 거리를 걸어 옌안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이른바 ‘마른장정’의 출발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유적이고, 이후에 공산당 지도부는 전략을 세우고 인민들의 지지를...
벌써 17년이나 지난 일이었소. 그때 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수행하여 평양에 갔었소. 이 무렵 미국의 대통령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였는데 그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자 ‘선제공격으로 정권을 교체시켜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고, 백악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어떻게든 북한을 궁지로 몰기 위해 온갖 꾀를 쓰고 있었소. 이런 판국이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께서는 최대한 쿨하게 평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소. 당일치기로 갔고, 우리 일행은 그 흔한 오찬 대신에 챙겨간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웠소. 사상 첫 일·북 정상...
재발견의 시대라고 해야 할까? 잊혔거나 잊히고 있는 걸 되찾는 건 도시재생이나 역사유적의 브랜드화나 헌책방의 가치를 찾는 새로운 경험 등등에서 나타나 곳곳에서 신선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 2000년대 들어 전주 서부권 신시가지가 조성되고 도시외곽 우회도로가 개통되면서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전주역 일대가 ‘첫 마중길’ 사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삭막한 8차선 도로에 숲을 조성하고, 도로변에 노천카페가 들어서 이국적 풍치를 더해주고, 야간 조명을 설치해 밤 풍광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거리를 만든 것이다. 물...
최근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살인부터 광주의 12세 소녀 보복살인까지 참담한 비극이 연속 일어나고 있다. 마치 악당들의 천하처럼. 혹자는 이를 두고 조현병 운운하거나 경찰의 미숙한 대처 등등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지만 문제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법은 너무나 멀리 있고 흉포한 자들은 가까운 곳에서 설쳐대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도대체 공권력에 호소했다가 이에 앙심을 품은 악당이 보복살인을 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누가 책임지고 누가 적절한 대처 방안을...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살인 사건이나 경북 영양에서 경찰관이 숨진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이 폭력 전과가 있다는 점인데 정신질환 쪽으로 향하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진주 사건의 안 아무개 씨는 범행 당시 힘없고 약한 사람만을 골라 공격하는 분별력을 보였다. 설령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폭력 전과는 간과해서 안될 일이었다. 병이 있든 없든 그는 위험 인물이었다. 자활센터 직원 폭행, 층간 소음 시비, 오물 투척, 이웃 주민과 다툼, 술집 주인 폭행 등 올해 경찰에 신고된 것만 7차례였다. 안 아무개 씨의 형은 병원과 경찰...
망언, 험담, 가짜뉴스, 불법 영상 등등 온라인 시대에 부끄러운 우리 모습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더구나 그 행태는 날로 더해가고 있다. 고작 한다는 게 제멋대로 날려 보낸 후 적당히 반성 운운하고는 없었던 일처럼 얼버무리기 일쑤다. 마치 일회용품처럼 소비하고 버리는 것이 온라인에 쓰는 효율적 방법 철검이 돼 버린 오늘이다. 정치인의 망언, 대학가의 험담, 단톡방에 난무하는 불법 영상은 쓰레기나 다름없이 취급되는 데 최근 중국에서 ‘칭찬과 격려’의 콰콰췬(誇誇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펴져나가더니 이제 캠퍼스를 넘어 회사, 지...
전통시장의 역할이 도시의 성장에 따라 낙후된다는 생각은 의외로 넓고 깊게 퍼져 있다. 상인들 스스로 전통시장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배운 것이 모자라 입에 풀칠하기’ 위해 장사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과연 그럴까? 중국의 옛 재래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 외에 혼담(婚談)의 중요한 기능을 했고, 개항기 이후 조선 상인들의 저항은 항일운동의 중추적 기능을 했으며, 아직도 일본의 시장 주변에는 금융시설, 학교, 위생시설, 관공서, 다양한 상설 점포들이 있어 지역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 세계 각국의 유명한...
최근 중국 TV와 온라인에서 사극(史劇)이 얼어붙었다는 보도가 화제다. 작년 여름 대륙을 사로잡았던 ‘연희공략(延禧攻略)’, ‘여의전(如懿傳)’이라는 사극 드라마 두 편이 무려 총재생 수 150억 회를 넘겨 사극 드라마의 제작 붐이 일어난 점에 비춰보면 화제의 대상이 된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연희공략’이 청의 건륭제 시기에 한 소녀가 궁녀였던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궁궐에 들어간 뒤 온갖 음모와 계략을 뚫고 귀비(貴妃)의 지위에 오른다는 내용이고, ‘여의전’ 역시 건륭제 시기에 궁녀들의 암투와 음모를 그렸다는 데 있다. 이 ...
사드 배치로 불거진 한중 관계는 지금껏 양국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회오리를 불러 일으켰고, 끝내는 동북아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켜 왔다. 근래 중국 관광객의 예전 수준 입국이나 수출입에서 호전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한중 양국의 우호는 살얼음판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대체적 인식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관계를 해소시키는 묘약은 물론 있을 리 없을 것이나 그래도 내일을 위해 개선점을 찾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려면 무엇보다 양국 국민의 민간 교류나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확대돼야 ...
조선의 세종 임금은 동북아 역사에서 단연 손꼽을 수 있는 명군 가운데 명군이다. 당나라 태종이나 청나라 강희제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재들의 의견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경청화법이 뛰어났다. 당태종이 간관(諫官)이었던 위징과의 대화에서 "폐하, 제게 충신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는 말에 "어찌 충신이 싫단 말인가?" 하면서 까닭을 묻는 대목이 있고, 강희제는 정년퇴임하는 노재상에게 "그대는 좋겠다. 짐은 백성들이 굶어 죽을까 얼어 죽을까 노심초사하는데 한적한 시골에서 아무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