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계절, 낙엽 뒹구는 삼청동 길을 찾아 떠났다. 강의도 해야 하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기회라 일부러 아주 천천히 걸으며 곧 떠날 것 같은 가을의 뒷자락을 잡듯 그렇게 걸어 봤다. 처음 본 광경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셀카봉이라는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아무 때나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 스스로를 촬영하기에 바빴다. 자기 존재 확인과 자기만족에 한껏
세계 금융의 중심지 런던에서 뱅커들과 가끔씩 점심을 같이 하며 느낀 것은 답답하리만치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온 정신을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은행원들에게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가 파이낸셜 타임즈를 통해 1년간 수도원에서 지내는 것과 같은 유사한 체험을 반드시 해 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윤리와 철학을 연구하고 기
우리 연구원이 진행하는 경기·인천지역 CEO를 위한 아카데미가 어느덧 6기에 접어들었다. 다양한 과제의 연구와 정보 공유, 공적 토론의 장을 마련해 가며 사회적 과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고견과 자문을 받아 그에 대한 아름다운 해결 방안이나 따뜻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특정 이념도 없고 그러한 편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다만 사
계절의 순환이 주는 의미는 항상 진지하다. 그것은 시간이고 역사이며 흔적일 수 있는 반복과 되돌림의 미학이다. 아마 내가 가진 나이가 가을 즈음의 단풍을 떠올리기에 아주 적당한 듯, 그렇게 가을이면 과묵해지는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화려한 채색으로 우리 주변을 마음껏 물들여 놨다가 또 어느 순간엔가 낙엽이 돼 버려진 채 거리를 나뒹굴며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
며칠 전 저녁 뉴스에 강남 어느 아파트 주민이 경비에게 먹는 음식을 던져 주며 사람 이하의 취급을 한 데 분개한 당사자가 분신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상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옳은지에 대해 분명한 가치들이 점점 더 퇴색되거나 퇴행적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만을 위한, 내 가짐만을 위한 철저한 초이기적 세태가
아침 시간 다소 여유가 있는 날이면 신문과 함께하는 원두의 커피 향이 어느새 중독이라도 된 듯하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찾게 됐는지 모를 일이고 건강과 기호, 소비의 경계를 제맘대로 넘나드는 그런 형국이다. 그러다 가끔 카카오톡 신호음이 울려 확인을 하면 주변 지인들에게서 커피 선물이 도달해 온다. 심지어 내 스마트폰에는 내가 밖에서 마실 커피가
인문은 삶의 의미를 사람중심의 가치로 실현해 가는 길이며, 이것은 본질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것이다. 며칠 전 은행 후배를 만나 보니 20년 이상 다녔던 은행에서 퇴직을 하게 됐고 그것도 아주 비정상적 압박, 겉으로 볼 때는 전혀 문제 없는 합법적 권고사퇴식 몰상식한 처리로 단행됐다며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근 들어 다시 금융권 퇴직자 수가 급
지금 인천에선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피와 땀, 눈물의 진검승부가 아주 작은 차이로 승부를 가르며 환호와 탄식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쥐어 짠 근력과 난이도 높은 기술에 정신력까지 동원되는, 그야말로 인간의 모든 아름다운 모습이 모여 보는 사람조차도 흥분과 좌절, 꿈을 맛보는 축제라는 점이다. 근력이라는 피지컬(Physical), 머슬(Muscle)의 의
어느 CF 장면인 듯 스치는 기억이 있다. 해변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파도가 밀려오는 곳, 그곳에서 개 한 마리가 그것도 선글라스까지 의젓하게 끼고 정말로 멋진 서핑을 하고 있었다. 아마 서핑을 좋아하는 주인이 성공할 때마다 먹이를 하나씩 던져 주며 훈련을 통해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게 만들었으리라 추측이 된다. 문제는 잠깐 웃음기가 돌았을 뿐 그 어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에 대한 내 자신의 경계라고 생각해 본다. 이번 추석에도 온 가족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나같이 자기 이야기에 매몰되고 자기 입장에서의 자기 관점만을 말하게 된다. 내용이야 두루 일상사라 할지라도 가정에서 뿐만 아닌 회사,
얼마 전 내가 경영하는 기업의 현장 직원이 우리 연구원으로 관련 분야의 박사학위를 들고 감사의 인사를 하러 왔다. 내게 최대의 찬사로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전적으로 본인이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그래서 한 분야 최고의 자리를 얻은 것이다. 회사 대표로서 물심양면, 음으로 양으로 최대한의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이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의 낮은 자세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가 않아서인지 생활 전반을 되돌아보는 일이 부쩍 잦아진 요즈음이다. 겸양과 낮춤의 미덕에 대해 생각하고, 또 되뇌어도 도무지 미칠 것 같지 않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름 세속적인 성공을 어느 정도는 이뤘다고 여겼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한없이 내 자신이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래전 ‘굿 윌 헌팅’이란 영화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려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제자를 다독거리는 선생의 모습이 나온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교사가 유
왜 자꾸 대형 사고가 줄을 잇는지 모르겠다. 참담하고 부끄럽기까지 한 사건·사고들이 연일 대서특필된다.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 반문해 보지만 그래도 사회적 위기의식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학자가 모든 일에는 연(緣)과 인(因)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연은 직접적인 것이고 인은 근본적인 것을 이야기한다. 인간사회에
서아프리카가 진원지라는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가 납량특집 같이 갑작스레 휴가철을 덮치고 있다. 공포를 야기한 내용이 병의 치명적 증상과 전염성이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막연한 대응책 발표 같은 일치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흐름에 대한 불신이 더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본다. 며칠 전 본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에선 진화된 유인원들이
처음으로 교통신호체계를 이해하고 길을 나선 이제 막 다섯 날 난 손녀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서 배웠는지 녹색 신호등만 만나면 한쪽 팔을 쭉 펴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길을 건넌다. 빨간 신호등에서는 조금치도 움직일 수 없다는 듯 꼿꼿이 등을 세우고 긴장 상태로 대기하곤 한다. 아마도 나 역시 어렸을 때 어른들이 가르치는 대로 그렇게 생각 없이 인위적
한때 ‘장자는 나비 꿈을 꾸고, 보르헤스는 모래 꿈을 꾼다’라는 어구가 유행한 적 있었다. “장주(莊周)는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더니 일찍이 꿈에 나비가 되어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잠시 후 깨어 보니 놀라 있는 장주였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나오는 글이다. 본명이 장주인 장자는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전 고궁 뜰을 거닐며 연못 한가운데 탐스럽게 피어난 수련꽃을 보게 됐다. 수련은 여러해살이 수중식물로 굵고 짧은 땅속 줄기에서 많은 잎자루가 자라 물위에 꽃을 피운다. 낮 시간 동안 활짝 피었다가 저녁에 꽃잎을 오므려 잠든다고 해 수련의 수자는 잠을 나타내는 것이다. 피었다가 잠이 들고, 다시 핀다고 하는 수련꽃은 흔히 물 수(水)의 수자로 알고 있지
어느 잡지에 ‘협상 시 상대방과 윤리나 관습, 가치관이 충돌한다면?’이라는 제하에 그 해결책으로 ▶서로를 나쁜 사람으로 보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말해 보면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된다.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차이를 받아들이려는 방법을 배우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출처 Negot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주변에도 진정성을 갖고 대하는 사람들의, 특히 한 조직의 리더의 모습은 결국 진심을 가지고 조직을 관리하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라는 메시지다. 진심이 통해야 관리가 되며, 관리가 돼야 경영이 되는 것이다. 제임스 길모어(James H. Gilmore)와 조지프 파인 2세(B. Joseph Pine Ⅱ)가 쓴 「진정성의 힘:Aut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