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에 따르면, 반얀나무는 높이가 30m 정도 되고, 한 그루에서 끊임없이 가지가 퍼질 뿐만 아니라 하나의 가지에서 여러 개의 받침뿌리가 나와 금방 숲처럼 변합니다. 가지가 뻗어 나가다 휘어져 땅에 닿으면 거기서 뿌리가 나서 다시 가지가 자란다는 겁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안도현)에 인도를 대표하는 수목 중 하나인 반얀나무에 대한 글이 있어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뿌리가 약한 반얀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제 팔뚝에서 다시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습성이 있다. 수백, 수천 갈래의 뿌리들이 가지에서 땅으로
삶은 기회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힘든 상황에서는 이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라는 코믹 영화에서 나오는 명대사만큼은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TV 앵커인 에반 백스터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의회 의원이 되지만, 사실 그는 왜 세상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조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을 만나는 일에만 매달리게 되고, 그럴수록 가족과의 심리적 거리는 멀어져만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을 개업한 젊은 의사의 첫 환자는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치료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에는 병원에 달려온 그녀의 남편과 ‘엄마’를 외치며 눈물을 흘릴 어린 자녀들에게 그는 꺼내기 힘든 말을 해야만 합니다. 의사로서, 특히 자신이 치료한 첫 환자가 건강을 되찾는 모습을 고대했었는데, 저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의사의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을 겁니다.이런 경우, 독자 여러
꽤 오래전에 읽었던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에서 알게 된 자연의 놀라운 가르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자는 ‘눈(雪) 결정체가 모두 다르다면, 물의 결정체도 저마다 다르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풀려고 다양한 물의 결정체 사진을 찍어본 결과, 실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이나 ‘감사’라는 글자를 보여준 물은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체가 됐고, ‘악마’라는 글자를 보여준 물은 흉측한 모습이 됐던 겁니다. 음악에도 반응했습니다. 쇼팽의 ‘빗방울’을 들려주자 정말 빗방울처럼 생긴 결정체가 나타났고, ‘이별의 곡
TV 화면에는 대척점에 선 사람들의 분노한 표정이 적지 않게 보입니다. 국회의사당 안에도, 시청 앞 광장에는 대용량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분노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화가 지배하는 세상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은 ‘화’와 ‘애정’이라고 합니다. ‘화’가 발현되면 그 대상을 싫어하고, ‘애정’이 발현되면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취향이 갈리고 선호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그
하나의 사건이 계기가 돼 주변으로 비슷한 사태가 퍼져나가는 현상을 도미노현상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소한 일 때문에 짜증이 났고, 이 짜증이 동료와의 다툼으로 이어져서 때로는 후회막심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해 불편한 마음이 들고, 이 불편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사건건 분노할 일만 눈에 들어와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불편함은 현재 상황이 낯설 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낯선 상황은 내가 ‘변화’해야 할 때를 말해줍니다. 사실 변화에 적응하려면 불편함이
진실한 사랑일수록 때로는 엄합니다. 그래서 오해도 생기도 갈등도 생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때 비로소 미안함과 감사함의 눈물을 흘립니다. 「바보 되어주기(안순혜)」에 아빠에게 꾸중을 듣던 고교생 아들이 가출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이곳저곳 하염없이 걸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집 근처 놀이터 벤치에 벌렁 누웠습니다. 눈 안으로 별들이 가득 들어오자 스르르 잠이 왔습니다. 한참 후에 눈을 뜨고 나서야 자신이 아빠의 허벅지 위에서 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겨울 추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어?",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니?" 어린 시절, 수없이 들어온 말입니다. 분명히 말씀은 하셨는데 제가 제대로 알아듣지 않았거나 말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꽤 많습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개구리의 삶을 통해 가르침을 주는 라틴아메리카의 우화가 호세 페르난데스의 「똑똑한 바보」에 실려있습니다.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길가에 사는 개구리에게 충고합니다. "자네는 현명해서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더군. 그런데
요즘 국정감사 현장을 보면 오랫동안 지녀온 의구심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본질에서 벗어나 곁가지들에 매달려 정쟁을 일삼는 통에 결국 본질은 흐지부지되고 마는 것,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부른 증인을 몰아붙이거나 애써 보호하려고 하는 억지가 왜 고쳐지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목소리를 높이며 거칠게 말하는 의원들에게 「뒤주 속의 성자들」(김윤덕)에 나오는 그릇가게 주인과 손님의 다툼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릇가게에 들어온 손님이 작은 접시 한 장을 들고 "이 접시를 50개 사려고 하는데 얼마에
코로나로 인해 뜸했던 옛 친구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국에 가면 세 번씩이나 놀란다고 하는데, 놀란 이유가 흥미로웠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천국에 와 있다는 사실 때문이고, 둘째는 반드시 천국에 갈 거라고 믿었던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도 천국에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틀림없이 지옥에 갈 줄 알았던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것 때문에 놀랐다는 겁니다.그러자 다른 한 친구는 어느 책에서 읽었다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면, 첫 부류
올 추석 명절을 잘 보내셨지요? 예전과 달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환경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른들에게 피해를 드리지 않으려고 가지 않는다고 애써 자위해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고맙고 죄송할 뿐입니다. 예전에 기업 간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의 중간에 ‘지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답을 ‘선생님’, ‘성경이나 불경’, ‘상사’, ‘운’, ‘노력’ 등일 거라고 여겼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습니다
"불효자는 옵니다." "올 추석 효도는 내년 추석에 두 배로 받을게." "며늘아, 이번 추석은 너희 집에서 알콩달콩 보내렴"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보면서 코로나로 인한 오늘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보게 됩니다. 동시에 저렇게 말씀은 하시더라도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속내도 묻어나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저의 아버님은 40년 전에, 어머님은 2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잘못한 일만 떠오릅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그 당시는 못마땅하게 여긴 것들이 부모님의 사랑
아이의 눈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 밖을 보듯이, 사물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봅니다. 남의 말을 들은 그대로 믿고, 보이는 그대로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을 배워가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은 그렇질 못합니다. 자신의 기준과 관점이라는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자기의 입장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하곤 합니다.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이라는 책에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가 나오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
어느 월간지에서 본 짧은 글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영국에서 ‘어린아이가 놀다가 다쳤을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달려갈까?’라는 질문과 답에 관한 글입니다. 예시된 사람은 ‘밥을 먹여준 사람’, ‘야단친 사람’, ‘놀아준 사람’, ‘공부를 가르쳐준 사람’, 그리고 ‘힘들 때 다독여준 사람’이었는데, 아이들은 ‘놀아준 사람’과 ‘힘들 때 다독여준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예시된 다섯 사람을 부모라고 상상해보면 다섯 개의 역할은 곧 부모 역할이 됩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만을 들어주면 아이는 조화롭게 성장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공부도
살다 보면 악몽과도 같은 사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느닷없이 닥쳐서 엄청난 상처를 입곤 합니다. 요즘처럼 코로나와 태풍으로 인한 상처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원망과 분노가 밀려든다는 것입니다. 어느 스승이 제자들에게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더니 "이 막대기는 얼마나 무거울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답을 하지 못하자, 스승은 막대기를 멀리 집어던지고는 "막대기는 너희들이 들고 있을 때만 무겁다. 그러나 그것을 내려놓고 나면 무거움은 사라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재확산 위기에 이어 홍수와 산사태, 그리고 태풍까지 밀려온 나날들이 참으로 힘겹기만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이 피해만 속출하고 있는데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힘 있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소음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들은 어디서 위안을 찾아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신(神)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과연 신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만났다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신이 나타났을까요?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의 책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뉴스만 보면 온통 걱정거리뿐인 요즘입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이와 연계해 광복절 집회 개최를 두고 여야의 불편한 막말들이 오갑니다. 위기일 때일수록 조금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보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요즘 같은 위기 때는 정치적인 수사보다는 의료진들의 제언을 중시하는 겸손한 자세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 지음)에 겸손하지 않은 사람의 최후가 어떤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나옵니다. 어느 부유한 사람이 값비싼 신형 스포츠
코로나19가 가져온 엄청난 고통이 여전한데, 여기에 더해 물난리까지 겹쳐 온 국민이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부의 하소연과 돌아가신 분들의 유가족이 흘리는 눈물에는 절망의 소리가 느껴집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아니, 살아나야 합니다. 이 아픔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아픔을 가슴에 묻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번 참사를 겪은 분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고전 혁명」과 「내일이 보이지 않을 때 당신에게 힘을
2019년 10월 28일 연합뉴스에서 ‘두 대통령의 차이를 말해준다’라는 제하의 두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IS의 리더 제거 현장을 상황실에 앉아 모니터로 보고 있는 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8년 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상황실에서 모니터로 빈 라덴의 사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중앙에 앉았고 그의 좌우에 군 장성들과 각료들이 앉아 있었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모니터의 정중앙에 군 장성이 앉았고, 정작 대통령 자신은 장성의 왼쪽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전시 상황
아틀란테라는 여인의 기구한 삶이 그리스 신화에 나옵니다. 아르카디아의 왕인 이아소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들을 선호하던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산속에 버려집니다. 곰의 젖을 먹고 자라던 중 사냥꾼에게 발견돼 성장한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거친 사냥과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자라면서 그녀는 자신이 결혼하면 남편이 동물로 변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 영원히 독신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결투에서 늘 승리하는 그녀에 대한 소문은 아버지의 귀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