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뜨거운 입술을 가진 주인공은 변덕이 심하고 까다로워서 한 달 두 달 세 달, 내내 마음을 후끈 달궈놓고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조마조마 흥미진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작가가 여름을 묘사한 글이다. 읽는 순간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예카테리나2세다. ‘변덕을 부리다’를 단순하게
바쁘다. 이번 달에는 추석이 있어 모임 날짜를 조정하다 보니 월화수목금토일 비는 날이 없다. 비장한 도원결의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점심과 저녁 약속이 번갈아 있던 날은 늦은 밤 귀가 길도 신경 쓰이고 식구들 눈치도 보게 된다. 짚어보니 이런저런 연으로 발을 들어놓은 모임이 꽤 된다. 하나씩 늘어난 모임은 과부하가 걸려 스케줄 소화하기가
유난했던 여름의 끝자락이다. 절기상 처서도 지났다. 열대야가 사라지면서 바람결에 까슬함이 느껴진다. 밤까지 이어졌던 열기가 식으니 생각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격정과 무기력에서 벗어난 안정이다.가을은 정서의 깊이가 온유해지는 시간이다. 세상을 대하는 눈빛이 어느 계절보다 부드러워 부산스럽지 않다. 차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자고 한다. 그래서인지 독서 캠페인은
유난한 여름이다.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는 수은주가 불볕더위란 말을 실감나게 한다. 전력난까지 겹쳐 최악이라 올 여름은 휴식도 피서도 만만하지 않다. 인파 복잡한 휴가철 피서지가 내키지 않아 집에서 보냈다. 예전처럼 휴가 여행에 들뜨지도, 기대도, 기다림도 없어진다. 나이 먹은 탓인가, 그냥 집이 제일 편하다. 최대한 간편한 복장으로 세상사람 시선 신경 쓸
비 오는 오후가 한가롭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창가에 서서 빗소리를 들었다. 키 큰 나무 잎에도 키 작은 화초의 꽃잎에도 똑같은 양의 비가 내리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빗소리가 제각각이다. 식물들은 저 많은 양의 빗물을 적당히 필요한 선에서 품고 내뱉고를 알맞게 조절한다. 키가 크든 작든 여러 해를 살든 한해살이풀이든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있다. 과욕
아이는 걸 그룹의 춤을 신나게 춘다. 아이의 무대공연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저 끼 많은 아이가 감당했을 외로움과 상처에 분노가 치민다. 아이의 절박함에 무심했던 시선들 중에 우리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일 년 반 만에 초등·중등·고등 학교 과정을 마친 영민한 아이다. 쉼터에 와서 밝아지고 꿈이 생긴 아이가 예쁘다. 무
비 오던 날 업무 관계로 여러 해 알게 된 분과 오붓하게 차를 마셨다. 단독주택이라 마당이 한적한 그분 댁에서 저녁까지 먹고 하루를 잘 보내고 왔다. 약속을 하고 방문할 때는 차 한 잔 마시고 나올 예정이었는데 비 내리는 뜰을 내다보며 마음이 천진해져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다. 그분은 남편과 사업을 해 왔다. 초창기 터 잡을 때는 남편 혼자 고생을 했
외로운 죽음,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 혼자인 고독사는 우리 사회의 쓸쓸한 풍경이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현실이지만 1년에 1천여 명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젊은 층도 있지만 대체로 고독사는 노인이 많다. 개인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는 1년에 3만여 명의 노인이 고독사로 생을 마친다 하니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두렵다. 살아온 길이 빛이 났
가톨릭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분석한 교황청의 보고서에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가톨릭에서 규정하고 있는 7대 죄악 중 남자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죄는 정욕이며 그 다음이 탐식·나태·분노·교만·시기·탐욕 순이고, 여자는 교만의 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고 뒤이어 시기·분노·정욕&
이-메일함에 여러분들께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 한 장과 주소록이 남아있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산처럼 선 대로 살다가 한 그루 나무되어, 이끼 낀 바위 되어 다시 만나리. 당신으로 하여 이 세상 더욱 즐겁게 살다 갑니다. 고맙습니다.’변해명 선생님이 떠나신 지 1년이다. 세월은 무심하고 지천에 핀 꽃들로 아름다운
벚꽃 분분히 날리는 봄날, 문학회에서 여행을 떠났다. 장거리 이동이라 좀 지루해질 무렵에 버스 앞좌석에 앉은 선배님이 막간을 이용해 한 말씀하겠다며 들려준 이야기다. 칠십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처음으로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했다 한다.선배님껜 실례가 될 말이지만 샘 많고 참견 심하고 직설적이라 우리 회원 누구나 한두 번은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선
호평을 받은 영화에는 대개 독특한 개성이나 탁월한 연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조연배우가 있다. 흡입력이 강해 한순간에 존재감을 각인하는 이 배우는 때로는 주연배우보다 더 주목을 받는다. 말 그대로 미친 존재감으로 자신을 알린다. 이런 경우를 ‘신 스틸러’라 하는데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다. 잠깐의 등장으
수년 전에 마음 맞는 몇 사람이 모여 조촐한 모임을 시작했다. 각자 하는 일이 다르고 나이도 위아래 30년 층이 나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구성인데 의외로 마음이 잘 통했다. 맛집순례도 하고 전시회도 다니고 봉사활동도 하는 모임이다. 다솜회가 생겨난 배경이다.올해는 강원도 양구군 정림리에서 의료봉사를 하기로 했다. 그곳에 박수근 화백의 기념 미술관이 있다.
귀가 큰 나라님이 나타나 백성의 소리를 잘 듣고 선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큰 귀 나라님처럼 귀가 큰 사람이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며 마을 사람을 배려하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삽화로 그려 넣은 큰 귀를 가진 사람의 얼굴이 나라님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라님의 큰 귀는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잘
어제 박근혜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이 열린 국회의사당 광장에 초청된 인사만 7만 명이다. 현장에 가진 않았어도 국민의 눈과 귀가 그곳에 집중하고 세계적인 관심도 받았다.2월 셋째 월요일은 미국 역대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일인 ‘프레지던트 데이’다. 44명의 전·현직 대통령 중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여전히
‘올 설, 나는 탈옥했다.’ 어제오늘 내리 명절안부 전하는 카카오톡과 문자 알림음 소리에 예민해진 밤 시간. 뜬금없이 한 줄의 문자가 왔다. 가풍있는 집안의 장손에게 시집간 친구다. 주부들의 명절증후군은 코미디 프로의 단골 소재이고 토크 쇼의 주 메뉴가 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해 올해도 떠들썩 갑론을박으로 좌불안석 주인공이다.
지인 중에 도예 작가가 있다. 그의 작업실에 갔다가 흙을 주물러 작품을 만들었다. 불가피한 약속이 생겨 잠시 다녀오겠다고 도예가는 외출하고 혼자 무료를 달래려고 흙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흙덩어리를 조물조물 뭉치고 늘리고 쌓아올리고 그러면서 뭔가 만들어보는데 마음에 들진 않고, 다시 뭉쳐 새로 만들기를 여러 번. 작업실 곳곳에 보관해 놓은 작가의 작
돌잔치·결혼식·문상. 순서대로 신년 첫 주말이 바빴다. 사람이 나고 자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중요한 통과의례를 둘러본 셈이다. 낮에는 축하자리에 참석해 축복의 덕담을 나누고 밤에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돌잔치·결혼식의 행복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살아생전 고인의 분방함으로 어지러운 뒷감당을 떠안아 힘들어하는 상주를 위로했다.
한동안 지구 종말론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표시되어 있는 마야력 때문이다. AD 9세기경 홀연히 사라진 고대마야문명은 우주의 시간과 주기를 재는 데 탁월했다. 고고학자들의 손에서 천체우주과학자들에게 넘겨진 마야력은 경이로움이었다. 현대과학으로도 측량이 어려운 천체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해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백 년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업무와 관련된 협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 역시 눈 때문에 미끄러워 서로 붙잡고 종종걸음을 옮겼다. 엉덩방아찧는 일행을 보며 장난기가 발동해 한바탕 눈싸움이 벌어졌다. 추위에 발그레해진 얼굴들이 개구쟁이마냥 천진한 동심으로 돌아가 웃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쌓이는 눈을 털어내며 다시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