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학교 저학년 남학생이 소위 ‘n번방 사건’을 모방한 범죄행위를 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등교하지 못하고 온라인 원격수업을 시작한 이후 발생한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 사안을 접하고 담당 책임자로서 실로 참담하고 당혹스러웠다. 더욱이 그 학생이 이미 비슷한 다른 범죄에도 연루돼 있다는 경찰의 통보를 받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창 여학생을 상대로 저지른 일로 피해 여학생은 상대가 누구인지 경찰이 한 달 이상 IP 추적 수사로 밝혀냈을 때까지 전혀 몰랐으며 n번 방의 ‘악랄한 성인’
전 세계가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각 나라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지금처럼 지구 대부분 국가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위기에서는 난국을 극복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지도자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 뜨겁다. 실제로 몇 개 국가의 지도자들은 위기 극복의 탁월한 성과를 주도한 공로로 국민적 신망을 얻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최고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에는 그런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픈 판단과 행동, 우유부단한 결단력, 지극히 이기적이고
요즈음 학교현장의 청소년들을 보면 안타까움과 측은지심이 함께한다. 그들에게 학교생활에서 과연 행복은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학교에서의 모든 교육활동이 스스로 원해서 참여하고 또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는 차치하고 학생들이 해야 할 활동이 너무 많아서 처음부터 엄두를 못 내어 시도조차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 바탕에는 시도 때도 없이 어른들이 변심하는 교육제도가 있다. 그들의 힘든 삶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교육은 청소년을 힘들게 하는 주범으로 세계적인 악명이 높다. 어찌 보면 아예 처음부터 행복한 학생을
U-20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 국가대표 축구팀의 전임 정정호 감독은 모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신세대 선수들과의 성공적인 소통법을 밝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Z세대라 칭하는 신세대에게는 그들에게 적합한 소통방식이 있다. 따라서 이를 적용해 교육해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 성공하는 리더는 이렇게 맞춤식 소통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짐이 드러났다. 그의 지도자로서의 통렬한 성찰과 절차탁마의 성과를 두고 모름지기 진정한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노력의 지대한 결과로 만들어진 ‘SSC’식 교육 방식임을 다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국가마다 전쟁을 선포하며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발원지 중국을 뛰어넘는 사망자가 나온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나의 유럽은 국가 간의 봉쇄에 들어갔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확진자의 급속한 증가로 3월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은 이제 서서히 지쳐가고 이를 지켜보며 관리, 감독하는 부모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로선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어떻게?’라는 위기 타개책만이 유일한 관심사가 됐다. 따라서 인내심과 절제력을 가진 성인에 비해 즉흥적이고 우발적, 돌출 행동
대한민국에서 만 18세는 매우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사회적·법률적 인격체로서 성인 대우를 받는 시작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결혼할 수 있고, 부모의 법률상 부양의무에서 제외되고, 운전면허를 딸 수 있고, 또 공무원 시험도 볼 수 있다. 일찍이 어느 가수는 18세의 연정을 ‘낭랑 18세’로 노래하기도 했다. 여기서 ‘낭랑(朗朗)’은 한자어로 사전적 의미로는 ‘소리가 맑고 또랑또랑하다’ 와 ‘빛이 매우 밝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낭랑하다’의 어근(語根)이다. 그래서 가장 청초하고 청량한 젊음의 상징으로 대변된다. 그만큼 상큼하고 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는 등 국가적 재난 속에서도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들에 대한 위촉식과 연수교육을 어렵게 마치고 정식 운영에 들어갈 준비를 모두 마쳤다. 2004년도에 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2011년 개정 이래, 처벌 위주로 시행하다 보니 학교가 너무 법정화(法庭化)돼 교육적 기능이 저하됐다는 비판에 따라 마침내 지난해 8월 다시 개정해 가벼운 사안에 대하여는 학교장의 교육적 조치에 대한 재량권 행사 범위를 넓히고 그 근거를 법률에 명시해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얼마 전에 국가 대표 운동선수와 관련된 폭력 사건이 공개되면서 세상의 공분을 자아내게 했다. 아직도 폭력에 의존하는 교육 방식이 국가대표 수준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최고의 수준에다 최고의 역량을 갖춘 지도자들이 국가 대표 선수를 교육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 교육 방식이 과거 해묵은 신체 폭력을 동반하는 방법으로 지속된다는 것이 그저 의아할 뿐이다. 억압과 강제적인 방식, 특히 신체적인 체벌을 근거로 훈련 효과를 높이려 한다는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고 하듯이 한 분야에서
학생이 그려보는 교실 모습, 학부모가 바라보는 학교 모습, 그리고 선생님이 있고 싶어 하는 교육 현장은 다를 것이다. 학생 개인과 국가 사회 발전에 이상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교육에 대한 물음에서 우리가 이뤄 나갈 교육 세계는 어떤 세상일까?이제까지 학교에서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제자를 가르치는 자리에 만족하면서 그냥 열심히 철부지 제자들을 위해 착각이겠지만 자신의 자녀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인성 지도와 교수-학습에 최선을 다하는 좀 시대에 뒤떨어진(?) 선생님이 있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학교 현장에 갈등과 편 가르기로 전체적인 교육
한동안 평생직장으로 다니던 교육 현장을 떠나면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동안 취미로 하고 싶었던 이런저런 건강 스포츠나 컴퓨터 등에 관심을 갖고 평생교육기관에 다니면서 배우는 재미가 있다. 퇴직 전 직장에서 가졌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대놓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소~’ 하고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이젠 10년이 지나면서 알 만한 옛 친구들이 다 알고 있기에 자랑 아닌 나 자신으로 스스럼없이 말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건강이 무너지면 큰일인데∼ 더욱이 제대로 걷지 못하면 산목숨이 아니지’ 하면서 다른 사람 몰래 구청
요즈음 우리는 자주 청소년들이 꿈이 없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탄식을 한다. 꿈을 상실한 청소년! 이는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초·중등학교 아이들은 꿈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상당수가 꿈이 없다고 답하거나 또는 꿈을 꾸기가 두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서 꿈을 빼앗아 갔을까? 인생의 여정에서 꿈꾸기를 특권으로 내세울 나이에 이런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은 그저 암울할 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꿈을 간직한 청소년들도 단지 무엇이 되고자 하는 직업만을 꿈으로 간직하는 경우가
아인슈타인은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유발한 제도(制度)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재 과학자가 한 말이기도 하지만 문제해결 관점에서 크게 공감할 수 있다. 현행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점들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그 제도 안에서 해결하려니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파생되는 현실을 보면 무언가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최근 구조에 대한 인상적인 기사를 접하게 됐다. 정아영 시각장애인 권리보장연대 대표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문제를 다룰 때 희망이나 극복 같은
지금 학교는 많이 달라졌다. 특히 교실 현장을 미래 주인공인 학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선생님, 사회, 그리고 교육 정책을 다루는 교육관계자의 생각이 달라도 많이 달라졌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일부 부모가 추구하는 자녀 교육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인물로 커가길 바란다. 특히 사회 지도층, 그 중에서도 교육과 관련해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사들의 요즘 말해서 내로남불의 뜨거운 모습에 아연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자녀 교육의 성취를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를 벗어난 일탈 행위가 도를 넘어서면서 힘없는 우리
우리 사회가 온통 갈등으로 인해 아수라장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영역 하나 안정돼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곳은 없다. 모두가 기득권 지키기와 집단 이기주의로 팽배해 있다. 나와 우리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향한 적대감과 혐오로 모두가 공멸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한 해도 정치는 혼란을 부추겼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으며 경제는 후퇴했고 외교안보는 설자리가 없으며 교육은 방향을 잃었다. 그러니 국민 간의 갈등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갈등 관리가 잘 되지 않으니 사회 발전의 촉매는 사라졌다. 혹시나 하던 국가의
자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하는 부모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 어디를 가든 차이가 없는 듯하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나타난 결과가 어쩌면 살면서 두고두고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블라인드 면접 등으로 학력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려 하지만 실제로 취업에서 학교 간판이 여전히 중요한 스펙이다. 요즘 공무원 취업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근무여건, 그리고 정년 이후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안정된 노후와 행복한 자녀와의 생활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 입시 관문인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둘러싼 열기는 누구도 가볍게 넘
인간에게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지식, 정보는 배움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그래서 현대는 ‘평생교육’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자고로 우리 사회는 옛날부터 입신양명하여 직위를 얻지 못하면 평생 배우는 ‘학생’이란 신분을 죽어서까지 유지했다. 그래서 고인(故人)에 대한 제사상 앞에는 그의 평생 직업인 학생을 기리는 ‘현고(顯考)학생(學生)부군(府君) ○○○ 신위(神位)’라 지방(紙榜)을 써 붙이는 것도 전통적인 유교사상을 이어가는 우리의 문화라 볼 수 있다. 그만큼 배움과 인간의 삶은 불가분의 관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뒤처지지 않고 열심히 체육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가까이 다가갈수록 일반인들이 노력하는 것 이상의 열과 성으로 체육 활동에 전념하는 것을 보면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다. 신체적인 어려움보다 사회적 편견에 도저히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체육 분야에서 자신감을 갖고 전국대회나 국제대회에서 이루는 성적은 당사자도 그렇고, 평소 관심으로 지원하던 관계자를 놀라게 한다. 일반 체육과 다르게 장애인 체육에서 신체적 한계를 넘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장한 체육인에게 늘 격려와 성원으로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청년들에게 나라 안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 그것도 반쪽으로 두 동강난 국토가 좁은 것도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심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국내에만 머무르기엔 우리 청년들이 너무 아깝다. 우리 젊은이들은 무궁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이다. 왜냐면 척박한 교육환경에서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 들꽃처럼 생존해온 그 뒷심이 그들의 내면에 잠재하기 때문이다. 세계 그 어느 또래집단 속에서도 웬만한 경쟁에선 살아남을 든든한 저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어느 기업인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에 ‘한국교육을 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교육열과 교사의 높은 질적 수준’을 제시하면서 선진국 지도자로서 넓은 포용력을 보여줬다. 그때마다 우리 교육의 위상을 한편으론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씁쓸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가 아닌가? 특히 학부모의 교육 참여는 한석봉의 어머니, 율곡의 어머니로 이어지고 최근엔 일명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으니 이는 세계문명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이다. 결코 한때의
일찍이 니체는 "하루의 ⅔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라고 설파했다. 그만큼 사람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주인과 노예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러한 명제를 적용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예로 살아가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마찬가지로 학문이나 연구, 정책 수립에 있어서도 외부 압력이나 영향에 의해서 좌우된다면 이 또한 자율성을 침탈당한 노예일 것이다. 지금은 정치가 세상을 움직이고 압도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분야별 자율성을 사수한다는 것은 이상론에 가까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