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찍한 통로에 좌우가 여유롭다. 진열된 상품이 눈에 확 와 닿는다. 고객을 배려한 씀씀이가 느껴진다. 색다른 풍경이 눈에 띈다. 가게에 모여 드는 동네 할머니들이다. 이들을 위한 작은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인천 부평구 창조할인마트의 첫인상이다. 인천 첫 나들가게 타이틀이 새삼스럽지 않다. 이제 할인마트 첫 백년가게라는 자랑거리가 늘었다. 이 동네 터줏대감 창조할인마트가 백년을 이어가겠단다.# 대형마트 못지않은 지역 사랑방 창조할인마트창조할인마트는 현재 이재성(60)대표가 1997년 문을 열어 24년간 운영하고 있다. 가게는 130~1
인천 부평 신촌교는 희미해져 가는 과거의 흔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지는 기억의 흔적이기도 하다. 다리 위 작은 리어카의 멍게 장수, 빨간 사과를 머금은 여인들 그리고 미군부대 사람들. 지금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지만 이들의 삶의 흔적은 이제 노랫말로 전해지고 있다. 연주자의 손을 통해 오롯이 전하는 기타 연주는 그들을 향한 기억이다. 백년가게 ‘락캠프’에서 멍게를 팔던 동네 아저씨를, 미군 담벼락에 기대선 누이를, 철없이 뛰어놀던 어릴 적 친구들을 노래한다. # 인천 최초 라이브클럽 ‘락캠프(ROCKCAMP)’락캠
하늘 높이 솟은 건물 숲속에 숨은 고개 찾듯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즐비한 요즘이다. 한 번쯤은 가고 싶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하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두 번은 고민이 된다. 나지막한 건물 사이로 순박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가게가 있다. 그곳에 있어야 제맛인 가게, ‘인현통닭삼계탕(인현통닭)’이다. 장모가 펼쳐낸 손맛, 사위가 지켜낸 전통, 손자가 이은 백년가게이다. # 손맛 살린 ‘1대 김영길·이영자’ 창업주 1978년 창업한 인현통닭삼계탕은 고(故) 김영길 옹이 창업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영자(85)여사가 1대
흡사 미로 찾기와 같다. 한때 인천 전 지역에서 몰려든 건어물 점포 찾기가 여간 쉽지 않다. 어렵게 찾은 점포에는 물건값을 후려쳐도 될 듯한 인심 좋은 사장과 전국 각 지역에서 올라온 건어물이 지천에 깔려 있다. 초행길 찾은 이곳 부흥상회가 왜 백년가게인지 알 듯하다. 발품 판 보람이 느껴진다. 백년가게가 그래서 좋다. # 전국에 팔려 나간 봇짐장수 ‘한정필’ 부흥상회는 건어물로 유명한 인천 부평진흥종합시장에서 1982년 창업했다. 창업주 한정필(69)대표는 1979년 진흥시장이 형성된 초창기부터 있던 몇 안 되는 이곳 터줏대감이다
희뿌연 김에 뜨거워 고개를 돌릴 법한데 능숙하게 판을 뒤집는다. 갓 쪄 낸 쑥개떡에서 향긋한 쑥향이 퍼져 나간다. 여름 초입에 맞는 쑥향이 생소하다. 그래서 초록 빛깔의 쑥개떡은 봄이 그리운 이에게는 늘 반갑다. 사시사철 시간의 문턱을 오가는 낙원떡집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정성 들여 빚은 떡은 내 부모님이, 내 아이가. 내 안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게다.# ‘정직’으로 ‘떡’을 빚다 경사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치레로 돌리는 게 떡이다. 받는 사람 역시 떡을 먹으면서 덕담을 건네고는 한다. 그래서 떡은 ‘좋은 것’이라
그 시절 그 여흥이 사라진 이곳에 매주 토요일이면 흥이 다시 살아난다. 1970~1980년대 풍미했던 재즈음악이 100여 년도 더 된 근대건축물과 함께 펼쳐지는 ‘레트로’의 향연이다. 손님에서 사장으로, 사장에서 손님으로 이어진 시간만 38년이다. 손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LP판은 버텀라인이 살아온 나이테가 아닐까. 고즈넉한 역사를 머금은 백년가게 버텀라인의 음악 얘기에 흠뻑 취해 본다.# 손님이 ‘사장’입니다 삐걱거리는 2층 나무계단을 밟고 들어섰다. 한쪽 라운지 뒤쪽 벽면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LP판에서 어떤 곳인지 읽힌다. 지
가게 입구에 ‘下心(하심)’이라 적힌 액자가 눈에 띈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겠다는 ‘하심’. 이 단어가 주는 편안함에서 이곳 주인장의 마음이 읽힌다. 공장 근로자들에게는 늘 푸짐한 상차림의 점심 한 끼가 그 마음일 게다. 늘 낮은 자세로 배우기 위해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얻은 덕수갈비 맛 역시 하심에서 비롯된 듯하다. 두툼한 고깃살에 맑은 육수의 갈비탕에서 그 진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덕수갈비는 오늘도 동네 사람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덕수갈비, 발‘품’으로 맛을 ‘품’다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큰 뼈는 여느
한입 베어 먹으니 두툼한 살들이 쑥 빠져나온다. 짭조름한 맛과 함께 슬며시 입안에 퍼지는 감칠맛은 속이 꽉 찬 인천 연평도 꽃게일 터다. 국산 꽃게 중 최고로 쳐준다는 연평도산 꽃게 말이다. 국산 꽃게만 고집한 뚝심이 이젠 3대인 손자에게로 대물림한 자부심이 됐다. 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은 손자가 기특하기만 하다. 할머니의 손맛을 마중물로 이젠 온라인 쇼핑몰에서 유명 맛집으로 이름을 알린다. 59년을 이어온 ‘삼대인천게장’이 써 내려갈 앞으로의 얘기가 재밌다. 백년가게 삼대인천게장의 미래에는 흥이 돋는다.# 연평도 꽃게와 특제
한 번쯤 못 이기는 척 화학조미료를 쓸 법한데, 끝내 그 고집을 내려놓지 못한다. 참 요령 없는 부대찌개, 아니 부대고기찌개다. 그래서 늘 한결같던가. 여태껏 먹어 왔던 이 맛에 이제는 아이들 손을 잡고 찾게 된다. 정직이라는 그 맛이 더 깊이 배어 나오는 국물이 요즘 같은 세상에는 정겹기만 하다. 백년가게 신흥부대고기가 있어서 즐겁다.#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이면♪ 신흥부대고기 완전체누구나 살면서 몇 번의 기회가 온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은희숙(73)여사 역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기회가 왔다. 남편을 따라
"딩동! 배달의 민족 주문~ 주문~. 딩동! 배달의 민족 주문~ 주문~." 점심시간 무렵 들리는 반가운 소리다. 넓은 가게에 드문드문 들어앉은 손님 속에서 들리는 배달 주문은 매출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인천 백년가게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잊지 않고 찾아준 단골과 배달플랫폼의 협업은 태능숯불갈비 ‘돈비어천가’에 힘을 보태고 있다. # 돼지갈비를 널리 알리기 위한 ‘돈비어천가’의 탄생 이야기 숯불갈비 전문점 돈비어천가는 1984년 태능숯불갈비가 시작이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1974년에 문을 연 ‘
잘 살아 보기 위해 시작한 빵집이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 만학도의 길을 걸었다. 배워 익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다. 빵만 잘 만들어 팔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갈까. 그런데 노력의 결실은 나쁘지 않았다. 흘린 땀은 오히려 전화위복을 위한 겨자씨와 같았다. 그렇게 흘린 땀으로 프랜차이즈라는 공룡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다. 배인필의 빵집. 그리고 백년가게 ‘세필즈’가 그 주인공이다. # ‘빵’으로 풀어낸 배움의 갈증 세필즈의 성공 비결은 끊임없는 제품 개발에 있다. 1987년 12월 창업한 배인필(64)씨의 길고도 긴 빵집
100년 전 세워진 사찰이 백년가게가 됐다.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흘러내린 외벽 틈 사이로 황토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식 건축을 딴 지붕, 중국식 내부 풍경, 그런데 어색하지 않다. 밀어 버려도 시원치 않을 건물이 정겹기만 하다. 묘한 감정이다. 1970년대로 회귀한 듯한 이곳 백년가게에 괜스레 정이 간다.# 신동양의 희로애락인천시 중구에 있는 중식당 ‘신동양’의 첫 대면은 여느 백년가게 못지않다. 구설로 전해지는 창업은 1960년대이다. 어머니 고(故) 국회련 여사가 1대 창업주이고 현재 아들 유영성(55)
비우니까 채워진다. 그러려고 비운 게 아닌데 말이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미래에 대한 공허함이 백년가게로 가득 채운다. 누구보다 자신 있어 시작했기에 일말의 후회는 없다. 실패의 기억은 쓰라리지만 그 흔적은 긴 인생항로에 방향타가 됐다. 백년가게가 가야 할 길 중 하나가 아닐까. 공교롭다. 비우고 채우는 게 먹고사는 일이 됐다. 평생 함께 할 천연인 것이다. 채웠으니 또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그렇게 신포순대는 하루를 시작한다.# 신포동에서 만든 순대백년가게 신포순대는 1978년 신포시장에서 창업했다. 창업자 김일순(73·여)
지난하고 고단한 삶이다. 물질을 너무 많이 해 양손 검지와 중지가 휘어 이제 접을 만도 한데 여직 가게를 연다. 그렇게 47년이다. 쇠심줄 같이 질긴 자가제면(전분 7대 메밀 3)으로 이어온 삶이 그렇듯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다. 하루에 수천 그릇의 냉면을 팔던 문전성시는 이제 없는데도 말이다. 바통을 이어야 하거늘 이마저도 어렵다. 그래도 백년가게 함흥냉면(인천시 부평구)의 시곗바늘은 돌아간다. 잊지 않고 찾는 단골이 있어서다.# 넘사벽 인천 ‘함흥냉면’ 북한 함경도식 함흥냉면은 창업주 허흥례(78·여)씨와 남편 고(故) 배용철
누런 황금 들녘에 내려앉은 원앙과 봉황.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그것. 여름철 마루에 깔고 앉은 꽃문양 자리. 바로 화문석(花紋席)이다. 화문석의 시작은 신라시대이다. 고려시대에는 인삼과 함께 주요 교역품이기도 했다. 38년간 고려 왕도 역할을 한 강화도의 화문석은 그 중 특상품이라고 한다. 화문석을 짜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고드랫돌로 너비 6자(181㎝), 7자(212㎝)의 화문석을 2인 1조로 해도 보름이 걸린다. 화문석의 재료인 왕골 또한 여러 손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겨울철 선조들이 구들방에 모여 보내 온
인적이 뜸한 인천시 동구 샛골로는 한때 지역을 대표한 곳이다. 1980년대 은행과 경찰, 관공서 등으로 황금상권으로 분류됐다. 이곳을 중심으로 들어선 상권은 늘 문전성시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는 없다 했을까. 그때 그 시절 밥집이며 문방구는 이제 없다. IMF(1997)와 금융위기(2008)가 오면서 명맥만 유지한 노포(老鋪)들은 하나둘씩 지워져 갔다. 이제 코로나19는 또다시 우리의 노포를 위협한다. 늘 변함없이 지켜온 그곳도, 현대물텀벙도 그렇다. # 37년 동안 변함없는 현대물텀벙 현대물텀벙은 박복순(69)여사가 1984년 창
전동집이라고 적힌 흑백사진이 있다. 1995년 가게를 기억할 수 있는 사진에는 당시 메뉴들이 나열돼 있다. 생태찌개와 낙지볶음, 생선조림은 외할머니가, 어머니가 내놓은 음식들이다.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그 시간까지 늘 그랬다. 1957년(추정) 창업주인 외할머니 고(故) 채간난 여사가 문을 연 곳은 지금의 인천시 중구 인근 동광철공소 옆자리. 올림포스호텔 근방으로 짐작되는 이곳은 당시 월미도가 매립되지 않은 섬으로 남아 있을 때다. 맨간장을 넣은 생선조림은 새벽녘에 일을 찾아 나온 부두 하역노동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별미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 대를 이어온 가업이 이젠 어엿한 지역 명물이다. 강산이 변하고 하천과 들이 콘크리트 조형물로 뒤덮여도 그 시절 그 손맛은 비켜간 세월에 웃어 보인다.그들이 이제 백년의 전통을 잇고자 한다. 바로 백년가게다.세월의 무게만큼 깊게 스며든 맛을 ‘활자(活字)’로 남겨 본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코로나19라는 고뿔이 창궐하면서 그들에게 백년의 궤적은 아스라하다.본보와 인천중소벤처기업청의 공동기획 ‘인천 노포(老鋪) 백년가게’는 매주 1회 연재로 그들의 모습을 그려 낼 예정이다. 백년가게들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