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를 겪은 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공통점이 하나 목격된다고 한다. 테러 당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테러가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점이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섬광기억’이라 하는데, 사람들이 놀라거나 충격을 받은 순간을 스냅사진을 찍은 듯 생생하게 기억하는 현상을 말한다.나에게도 또렷이 남은 기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그날은 고대하던 수학여행 날이었다. 교실이 아닌 운동장에 모여 학급끼리 두 줄을 서고, 친구들과 여행지 중 어느 곳이 가장 기대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연이은 연예계 열애설로 대중의 피로도가 상당하다. 잇따르는 열애설 발표가 조작됐을 가능성과 더불어 일각에서는 국민들의 ‘모를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당연한 일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도한 정보가 한꺼번에 그들을 덮친 셈이다. 심지어 열애설과 함께 은폐된 사건을 조사하고 경위를 파악해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대한 많은 몫이 일반 대중에게 돌아가고 있다. 내가 습득한 정보에 대한 이해와 판단, 평가·활용을 하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의 뜻이 변모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포함
며칠 전 버스에서 흘러나온 라디오 뉴스가 인상적이었다. 대중교통을 탈 때면 곧잘 착용하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잠시 빼자 세상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과 조국을 심판하는 것이야말로 민생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은 타 당 대표들을 심판하는 것이야말로 민생이라고 말한다니, 상식적이지 않다 싶었다. 국민들이 편안한 삶을 영위하도록 여당으로서 좋은 정책을 펼치며 민생을 살피겠다고 하지 않고 누군가를 심판하겠다고 말한다. 설령
민속 신앙을 소재로 한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가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했다. 2024년 개봉한 영화 중에서, 그리고 오컬트 장르 영화 중에서 첫 1천만 영화다. 연일 화제를 모으는 ‘파묘’는 장손들이 기이한 병을 앓는 집안의 의뢰를 받은 풍수사와 장의사, 무당들이 묘를 이장하며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담은 영화다. 초반은 박씨 집안 조상의 기이한 묘와 이장 이후 잇달아 벌어지는 이상한 심령현상에 대한 이야기다. 조상 묘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와 ‘험한 것’이 드러난 영화 후반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분투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아래 부에 따른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어렴풋이 알 것이다. 비행기를 타도 저가항공기,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앉아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대형 항공기 일등석에서 누워 편안한 비행을 즐긴다. 비행기를 타 보지 못하는 이들도 존재한다.계급 형성에는 개인 노력도 기여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집안 환경이나 태어난 지역과 같이 타고난 복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운에 따라 달리는 중 가속이 붙거나 뒤처지기도 한다.그렇다고 해서 계급 타파를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인류 역사
필자에게는 조금 특이한 로망이 있다. 자동차를 좋아해 넓은 들판에서 덤프트럭으로 드라이브를 하는 게 꿈이다. 낭만에 죽고 낭만에 산다. 너무 ‘낭죽낭살’인가 싶으면서도 지는 해에 노랗게 물든 들판을 배경 삼아 하는 드라이브라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이러한 로망을 들은 사람들은 "슈퍼카도 아니고 덤프트럭을?"이라며 의아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덤프트럭은 일반적으로 부를 상징하는 슈퍼카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낮은 시야를 가진 슈퍼카보다 높은 곳에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트럭이 좋다. 어렸을 때부터 트럭을 타서 높은 시
나에게는 개인적인 뜻이 있어 시청을 되도록 꺼리는 콘텐츠가 있다. 일반인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의 일상을 편집한 영상을 보면서 연예인과 전문가 패널들이 반응을 나누고 설루션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지금은 최대한 시청을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아직도 기억난다. 식당 운영을 미숙하게 하는 사장이 등장하면 국내 최고 프랜차이즈 권위자인 백종원 대표가 나서서 그 부족함을 꾸짖고 사장과 갈등을 겪다가 설득에 성공하는 모습. 그렇게 성공적인 설루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인간의 사회활동과 그들의 삶 전체를 연극에 빗대어 표현했다. 고프만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지구별 극장의 어떤 무대 위 연극 배우인 셈이다. 이때 자신만의 사회적 가면을 만들어 내는데, 가면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스러운 자아상을 기반으로 타인의 기대를 적절히 반영한다. 만들어진 가면을 쓴 배우는 사회라는 무대에 오른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흔히 말하는 백스테이지에서 가면을 벗고 잠시 숨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연극이 끝나
완전한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달프다. 기회비용이 들기도 하고, 환경과 주변인에 따라 급속도로 바뀌기도 한다. 유행이 곧 내 취향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고백하자면 실은 요즘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이 예뻐 보이고, 음원 차트 상위권에 있는 노래가 왠지 명곡처럼 느껴지곤 한다. 취향과 기준이 확고한 사람이 되고 싶어 더 이상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무색하게도 유행하는 웬만한 것들이 취향에 닿아 버리고 만다. 이를 깨달을 땐 조금 허무해지기도 한다.다짐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느 날
얼마 전 인기 먹방 유튜버 ‘쯔양’이 필리핀 여성을 흉내 내는 개그우먼과 함께 방송을 진행해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개그우먼 김지영은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결혼이주여성 ‘니퉁’을 연기했고, 쯔양과 함께 베트남 음식 먹는 방법을 소개했다. 해당 영상은 많은 시청자들의 비판으로 인해 현재 삭제된 상태고, 쯔양은 유튜브 커뮤니티에 인종차별적인 영상 내용에 대해 사과문을 게시했다.많은 필리핀인은 영상 댓글창을 통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필리핀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이름인 ‘니퉁’을 사용하며, 필리핀 음식도 아닌 베트남 음식을 먹는
친구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감정을 털어놓지 못했다. ‘내가 화내도 되는 상황일까’, ‘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이것저것 따지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이야기를 꺼내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집에서 잔소리하는 부모님께는 쉽게 짜증을 내면서도 밖에서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큰소리를 내거나 날카로운 말로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은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통한다. 나 역시 화를 억누르고 차분하게, 좋은
얼마 전 영화 ‘코다’를 봤다. 배우 윤여정의 수어 수상 발표로 화제가 됐던, 그뿐 아니라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었던 그 영화. 나 역시 코다를 안 지 꽤 됐지만 최근 수어와 관련한 전시를 보고 문득 생각이 나 보게 됐다. ‘Coda’는 청각장애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 말이다. 청인인 자녀와 농인인 자녀 모두를 아우르지만 보통 청인인 자녀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목에서 알듯이 영화 주인공은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 ‘루비’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청인인 루비는 당연하듯 가족의 곤란한 일을 해
"근로자는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서 노동3권을 명시한 규정이다.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에 관심이 갔다. 노동조합에 관한 오해를 해소하기도 하고, 왜 그들이 지금 모습이 됐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아갔다.노조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다. 기업의 세계관과 노조의 세계관은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다르
최근 카카오톡 인공지능 서비스를 사용해 친구와 대화하며 웃고 떠든 경험이 있다. 제공된 AI 기술은 채팅창에 입력한 문구를 각종 어투로 변환했다. 이를테면 ‘웃기다’고 입력하면 ‘허허, 이거 정말 웃기는구나’ 또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따위로 바꿨다.처음 사용하는 낯설고 재밌는 서비스에 채팅창에는 ‘ㅋㅋㅋ’를 비롯한 웃음이 난무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알 길 없는 불쾌함이 마음 한편에 맴돌았다. 내가 작성한 문구는 도대체 어디로 전송되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변환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처럼 인공지능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
최근 모 연예인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이를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나 커뮤니티, 언론에서 주로 다뤄지던 의견은 ‘안타깝고 슬픈 죽음’이었다. 마약 혐의자로 알려진 후 세상이 떠들썩했던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연이어 터져 나온 외도 관련 사생활 이슈는 대중의 눈이 돌아갈 틈 없이 해당 사건에만 붙들어 뒀다. 역시나 이 또한 큰 화제가 돼 각종 매체를 뜨겁게 달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살했다. 조사 결과 마약은 음성이었고, 무혐의 신분이었음과 동시에 마약 혐의와 관련 없는 사생활이 노출됐다는 점이 안타깝다
2024년이 밝았다. 무려 청룡의 해다. 나와 같은 2000년생 용띠 친구들에게는 큰 의미가 될 해다.이제 세는 나이로 25살이 된 만큼, 1월 1일 0시가 되자마자 송지은의 ‘예쁜 나이 25살’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유의 ‘팔레트’를 들었다. 두 노래 모두 가수가 25살 때 발표했고, 나이에 대한 자전적 내용을 담았다. 두 노래 모두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됐다는 내용의 가사가 있다. 하고 싶은 대로 당당하게 살겠다는 ‘예쁜 나이 25살’과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는 ‘팔레트’를 들으
최근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타인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구는 상대에게 화가 나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못된 말을 뱉었다는 일화였다. 이때 친구의 한마디가 마음에 걸려 곱씹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이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을 때 자주 뱉는, 흔한 말인데도 왜 친구의 말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찝찝함을 느꼈을까.답은 책 한 권에서 찾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삶의 모든 답은 한 마리 개 안에 있다」는 독일 한 철학도가 개와 함께 보낸 14년 동안 얻은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 개에게서 과연 어
나는 조금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바로 사우나 데스크 일이다. 특이하다기보다는 생소하다고 할 법한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7개월이 조금 넘어간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볼 때 공고를 본 적도 없고 딱히 스스로 알아본 적도 없는 듯한데, 역시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오픈 담당이라 새벽 4시 20분에는 일어나야 여유롭게 출근이 가능하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출근하면 교통비는 조조할인을 받고, 늘 같은 사람들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마주치는 분들과는 알게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쌓이는 느낌이다. 아르바이트를
어느덧 3학년 2학기도 끝나 간다. 여러모로 즐거운 일이 많았던 2학년까지 학교생활과 다르게 3학년 생활은 ‘사망년’이라는 말처럼 갑갑하고 진로 고민에 혼란스럽다. 주변 사람들이 슬슬 명확한 성과물을 만들고 성장하는 모습에 놀라 나는 1학년 때와 달라진 게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여러 고민을 하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소위 ‘고시류 시험’을 준비하기로 하고 2학기를 시작했다. 지금 보면 너무 순진했는데, 당시에는 치밀하게 2학기 계획을 세웠다. 수험 과목과 정말 듣고 싶었던 수업을 반반씩 섞어 들으며 공부량
환경에 대한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커지는 추세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환경오염과 파괴는 과연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의 나은 삶을 보장해 줄지 의문이다.이제 문명 발전은 점점 공포로 다가온다.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실감한 사람들은 개인 차원에서의 노력을 실천한다. 저탄소 생활을 실천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것이다.반면 환경부는 최근 종이컵 규제를 없애고, 플라스틱 빨대 규제의 계도 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사실상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없앤 셈이다. 정부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환경보전 흐름에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