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아동권리협약을 반영해 2016년 선포한 우리나라 ‘아동권리헌장’은 마땅히 보장해야 할 기본 아동권리를 9개 조항으로 나열한다. 1조는 ‘아동은 생명을 존중받아야 하며 부모와 가족한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2조는 ‘아동은 모든 형태의 학대와 방임, 폭력과 착취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다. 안전한 환경에서 학대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아동에게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수원시는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를 운영해 학대로 고통 받는 아동을 구조하는 데 집중한다. 나아가 다양한 공공기관과 민간 자원이 한데 힘을 모아 아동학대사건 현장의 최일선에서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아동과 가정을 보호하려 노력한다.

수원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에 소속된 실무자들이 센터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에 소속된 실무자들이 센터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발 빠른 대응으로 학대아동 보호

11살 A양은 방임된 아동이다.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거의 날마다 혼자 지냈다. 아버지는 경제활동을 이유로 주말에만 집에 왔고, 캄캄한 밤에도 홀로 집을 지키기 일쑤였다. 결국 지난해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시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A양을 계속 찾아가고 서비스를 연계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담당자들한테 재신고가 이어져 학대아동쉼터 입소를 권유할 때마다 A양은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가끔 찾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는 듯했다.

지난 7월 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 담당 공무원들의 신고로 담당자들이 동행 출동했다. 법원에서 ‘피해아동보호명령’도 받아 조치를 적극 취했다.

방학이 되면 하루 종일 혼자 있게 될 A양을 걱정한 담임교사와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 공무원이 함께 마주 앉아 긴 시간 설득했다. 하루만 쉼터에서 지내자는 제안에 드디어 A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A양은 분리 조치 이후 현재까지 수개월간 쉼터에서 지낸다. 공동생활에 적응해 보호자가 제공하는 따뜻한 식사와 포근한 잠자리를 누리며 등교, 학습 지원 같은 조치로 쉼터에서 가까운 학교를 다닌다. 공동대응센터 중심으로 수차례 사례판단 회의를 진행, 아동안전망을 비롯해 필요한 사례관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A양 사건을 조사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공동대응센터가 긴밀하게 기능하면서 피해아동을 방임 상황에서 가까스로 분리한 사례"라며 "대답도 잘 하지 않고 항상 위축된 아동의 모습도 많이 밝아졌다"고 했다.

수원시와 아동학대 관련 기관들이 지난 12일 광교호수공원에서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펼쳤다.
수원시와 아동학대 관련 기관들이 지난 12일 광교호수공원에서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펼쳤다.

# 위기가정 지키는 정확한 판단

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는 다양한 기관들의 짜임새 있는 협조로 빠른 대응은 물론 정확하게 판단하는 구실을 한다.

지난 5월 학교에서 최초 신고를 했던 B(16)양의 사례가 이를 보여 준다. 날씨가 따뜻해지는데도 두껍고 헐렁한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교사가 B양과 상담을 하다가 상처를 발견해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경찰에 접수된 신고는 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를 거쳐 관계 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공유되며 모든 기관이 즉각 공동 대응했다.

더구나 B양은 병원을 연계하느라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아동학대 전담 의료기관에서 체계 있게 진료를 받았다. 의료 자문과 치료가 적절히 이뤄지고,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에 소속된 담당자들이 학교와 병원으로 동시에 출동해 분리 조치도 빠르게 진행했다. 덕분에 B양은 4주간 쉼터에서 생활하며 자신에게 맞는 치료와 서비스를 받았다.

공동대응센터는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는 사례판단 회의를 열어 아동학대 여부를 판정했다. 경찰과 전담 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 교육기관의 의견을 종합해 부모에게 학대를 받지 않았고 상처도 스스로 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후 B양에게는 아동의 보호는 물론 위험에 처한 가정 회복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를 제공했다. 가정으로 복귀한 B양에게 청소년안전망을 연계해 심리치료를 지원하고, 거주하는 동 행정복지센터도 사례관리에 참여해 줄곧 가정을 모니터링한다.

시 아동학대조사 전담 공무원은 "공동대응센터에서 여러 관련 기관 담당자들과 함께 신고에 대한 빠른 대응은 물론 다양한 처지와 상황을 반영해 정확한 판단을 하게 돼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수원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한 울산광역시 남구청과 수원시 관계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지난 5월 수원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한 울산광역시 남구청과 수원시 관계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 아동학대 대응 중심

학대아동을 위한 대응의 중심에는 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가 있다. 지난 5월 2일 경기도 최초로 설치한 공동대응센터는 수원지역 아동학대 대응 관련 기관들이 함께 모여 아동학대 사건 초기에 효과 있게 대응하도록 운영한다.

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에는 모두 6개 기관이 참여한다. 시청, 경찰서(남부·중부·서부), 수원교육지원청, 아동보호전문기관, 동수원병원, 화홍병원이다. 시가 운영을 총괄하고, 112신고로 학대 신고를 최초 접수하는 3개 경찰서가 자료를 공유하며 출동할 때 동행한다.

전담병원은 응급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례관리를 담당하며, 수원교육지원청은 아동 안전망과 모니터링에 힘을 보탠다.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의 시초는 2020년 9월 구성한 ‘수원시 아동학대 대응 정보연계협의체’다. 당시 수원시와 지역 3개 경찰서, 수원교육지원청, 수원아동보호전문기관, 지역 협력기관들이 협의체를 구성했다. 각 기관에 분산된 아동학대 관련 정보를 조합하고 상황을 공유해 제때 개입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후 시는 아동학대조사를 전담하는 아동보호팀을 신설해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피해아동 보호와 대응에 적극 나서며 공동대응센터 설치와 운영을 주도했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아동학대 전담 의료기관을 지정하면서 공동대응센터 설치가 급물살을 탔다. 아동학대 전담 의료기관은 치료가 필요한 학대 피해아동에게 빠르게 의료서비스를 지원한다. 의사 소견서 발급 같은 복잡한 절차도 순조롭게 진행하도록 협조해 신고 이후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원활하게 지원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 5월 열린 수원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 개소식.
지난 5월 열린 수원시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 개소식.

# 공동대응센터 효과 UP…잇따르는 벤치마킹

시 공동대응센터는 독립된 사무실을 갖추고 참여 기관의 아동학대 담당자들이 합동 근무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경찰관, 아동보호 전담요원, 상담원이 함께 모인 구조다. 다수의 기관이 한 사무실에서 공동 근무하는 방식의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은 전국에서 수원시가 유일하다.

다양한 기관의 실무자들이 함께 근무하면서 아동학대 대응의 시너지 효과가 높아졌다. 신고 접수와 출동·조사, 즉각 분리 같은 조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간 의료기관의 참여는 복잡했던 의료비 문제를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5월 문을 연 이후 공동대응센터는 90여 건의 신고에 합동 출동했고, 60회의 합동 사례판단 회의를 열어 500여 사례의 학대 여부를 판단했다. 활발하고 원활한 정보 공유는 다양한 처지와 의견을 종합한 판정으로 이어졌다. 수원시의 학대 판정률은 60% 수준이다.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 운영과 전담의료기관 운영 같은 대응으로 수원시는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감소했다고 나타났다. 수원시 월평균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 95건에서 올해 67건으로 30%가량 줄었다.

벤치마킹도 잇따랐다. 경기도와 울산시 남구, 부천시가 공동대응센터를 직접 방문해 운영 방식과 대응 절차를 살펴보며 수원시의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을 참고했다.

시 관계자는 "수원지역 다양한 기관들이 아동학대 공동대응센터를 중심으로 아동학대 사건에 긴밀하게 대응한다"며 "아동학대 대응뿐만 아니라 모든 아동이 안전한 ‘아동친화도시’로 나아가고자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사진=<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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