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약자로도 발음하기가 그리 편치 않은 NLL(서해 북방한계선)사건이 한동안 또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그간 하도 많이 발생한 사건이라 연례행사쯤으로 흘려버리는 국민들도 많겠지만 우리 기호(畿湖)지방인들의 느낌은 훨씬 달랐을 것이다. 바로 머리맡에서 일이 터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피해 당사자격인 서해5도 주민들의 물적 심적 타격은 막대하고도 넘쳤을 것이다.(가뜩이나 경기는 안 좋다하고 어족 또한 주는 데다 생업터전인 어장 내왕(來往)도 불편했을 것이니 그 피해가 얼만지 짐작이 간다. 나아가 이 지역에 대한 군의 각종 규제도 심해질 것이며 피서철의 천혜자원 또한 큰 타격을 받음이 뻔하다.)


적군 앞에서 벌인 자중지란꼴

 
그럼에도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처사는 왔다리 갔다리식의 수준이하라는 평이다. 그것도 온통 군에만 신경을 썼지 민간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우리는 먼저 도발 당사자인 적군에 대한 손보기보다는 아군끼리 자중지란(自中之亂)만 벌인 꼴이었다. 합동조사단이 사건당시 군의 허위보고여부를 조사한 결과는 일부 군 간부들의 부주의로 결론을 냈다. 군의 처벌 또한 제일 약한 경징계 수준이라고 연막을 피우며 여론을 살폈다. 하지만 그간 청와대와 군이 대립하고 여당이 분수없이 덩달아 편을 들어 대립하는 양상으로까지 불거졌던 사태의 심각성에 비하면 용두사미(龍頭蛇尾)격 처사가 분명하다는 여론에 밀려 결국 특단의 칼을 뺐다. 관계 장관이 바뀌고 군 정보책임자들이 옷을 벗거나 문책대기중이다. 군으로서는 치명적인 사기저하에다 얼마나 큰 인적손실인가.(장성급의 군인재로 키우려면 어디 한두 푼의 나라세금으로 되는가. 더욱이 정보계통의 숙달은 분명 하루 이틀이 아닌 장기간을 요한다.)
 
군에 대한 불신과 사기 저하, 군 통수권자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비춰진 이번 사건처리를 보고 불안과 분노까지 치민다는 국민들이 너무도 많다. 때이른 가마솥 불볕더위에까지 시달리다보니 더욱 열이 났을 게다.
 
적과의 전쟁엔 연습이 없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산다. 지면 국민이고 나라고 가족이고 모두가 끝장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이기려면 당사자들은 누구보다 프로가 돼야 한다. 어느 부모형제가 아마추어를 믿고 단잠을 자겠는가. 작은 실수라도 있어선 안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인적 물적 피해가 막대해지기 때문이다. 헌데 적을 향해 대포까지 쐈다면서 상부에 보고가 안됐다면 그게 정상의 군무 수행인지 아니면 실수였는지 다시 묻고 싶다. 소총 한방만 오발을 해도 상하급부대가 야단법석인 것은 군에 다녀온 분들은 다 아는 일 아닌가. 북한의 최고 통치자는 국방위원장이다. 그 직(職)을 맡은 지 벌써 십 수년이 지났는데도 그 명칭엔 변함이 없다. 언제까지인지도 일절 언급이 없다. 사회주의 독재하에선 군이 국가의 최고이고 군을 잡아야 체제유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모두가 군과 전쟁의 프로들인 셈이다. 총 한방 쏘지 않고 남한을 뒤흔들었던 이번 사건이 입증하지 않았는가.(저들은 지금 우리와는 정반대로 축제 분위기에다 누군가는 영웅이 됐을 것이다. 삼국지에서 보면 힘 안들이고 적을 교란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술책이 반간계, 이간계이다. 이번에 우리가 당한 꼴이다.)


군심과 민심 함께 보살펴야

 
이제라도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살피자. 대비책으로는 우선 군과 국방부의 기부터 살려야 한다. 우리 군이 그래도 적과 맞서온 저력은 60만대군의 프로 정신과 기개에서 나왔을 것이고 주한미군의 후력(后力)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간의 민주화와 남북화해무드에 편승해 우리의 어딘가에서 프로정신이 퇴색되지 않았나 심히 우려가 된다. 이번 일은 국가 통치부(統治部)와 군부(軍部)중 어디가 아마추어인지 반드시 짚고 넘어야 할 중대사로 본다. 아울러 서해5도 주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물적 심적 피해도 보살피고 어루만져 줘야 마땅하다. 군심(軍心)도 물론 중요하지만 민심(民心)은 더욱 치세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현규 객원논설위원·동아방송대 광고홍보계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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