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술로 통칭되는 알콜 성분의 음료는 B.C. 5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판비문자에서 맥주양조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명돼 그 유래를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술의 기원에 관한 신화는 없지만 음주에 관한 전설은 고구려 주몽신화에 등장하고 있으며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부족국가시대의 제천의식에서 마을단위로 술을 빚어 음주와 가무를 한 기록이 있다.

그 후 술은 삼국시대에 귀족중심으로 자가로 소비되는 형태를 나타내다가 귀족을 대상으로 술을 판매하는 기생집이 생겨난다. 김유신 장군이 기생 천관녀의 집에 드나든 이야기는 신라시대에 이미 귀족을 상대로 한 술집이 생겨났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백제 의자왕은 삼천궁녀와 주지육림속에 파묻혀 결국 국가를 망하게 하기도 했다. 음주문화는 역사와 함께 그 시대를 그대로 반영, 세상의 근심거리를 잊는 약이 되기도 하고 패가망신하는 독이 되기도 했다. 1910년 한·일합방후 우리나라 식자들은 나라를 잃은 우울과 통분을 삭히기 위해 술을 마셨으며 6·25이후 백성들은 정치적 불안과 가난에 시달려 이 때의 술은 현실을 잊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해 이 때의 술은 소수소(掃愁簫)라 하여 한잔을 마시면 근심을 잊고 속취를 벗는다 했다. 60년대 이후 산업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우리의 음주문화는 전통의 가치관과 새시대의 문화적 충돌속에서 폭주의 시대로 접어든다. 군사독재시절인 70년대 초반 히트를 친 `한잔의 술'이라는 대중가요는 군사독재의 암울한 상황을 단 시간에 술로 쓸어버리고 저항의 한 방법으로 폭음이 성행했다.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술은 밤 문화를 지배했으며 자연스럽게 술로 인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음주폐해 예방사업과 알콜중독 치료 및 재활사업 등 음주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술에 5%의 정신보건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주세외에 추가로 부담금을 부과하겠다는 발상으로 폭음문화가 없어질지는 두고볼 일이다.
(植)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