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약력

인천대학교 대학원 경제학박사 과정

재능대학교 경영과 겸임교수

중앙세무법인 고문 세무사

유네스코 인천시협회장

기호일보 시민편집위원회 위원장

고전(古傳)하는 우화 한 토막입니다. 한 골깊은 산에 유난히 먹성 좋은 호랑이가 살았던 모양입니다. 성질이 포악해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사냥을 즐겨 끊임없이 짐승들을 물어 죽이는 통에 이 산의 토끼가 멸종 직전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원로 토끼 하나가 죽음을 무릅쓰고 호랑이를 찾아가 담판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포악을 떠는 짓은 네게도 결코 이로울 것이 없다. 이렇게 해서 토끼가 모두 씨가 마르면 결국 너와 네 자식도 언젠가는 굶어 죽을 것이 아니냐. 그러니 배고프지 않을 때 공연히 사냥하지 말고 새끼 밴 어미는 죽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기 기를 쓰고 이 산을 떠나겠다”는 것이 그 원로 토끼의 협상 카드였고, 결국은 대안이 없게 된 호랑이가 이를 받아들여 협상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암토끼는 죽지 않으려고 시도 때도 없이 언제나 배가 불러 있을 만큼 자주 포태를 하게 됐고, 호랑이는 새끼 밴 짐승은 먹질 않게 됐다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그래서 하나의 슬기로운(?) 협상이 한 산에서 생명의 고리를 지켜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적으로도 별호가 날만큼 다양한 정치사적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모든 형태의 정변이 이 땅에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일어났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식민독재와 군부독재, 이데올로기 분쟁의 경험은 너무도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지금 조야(朝野)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따지고 들여다보면 모두 그의 후유증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그러나 이제, 세월은 갔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군부의 시대마저도 역시 한 토막의 역사가 됐습니다. 이 땅에 민주의 새날을 가져다주려고 삶의 모두를 내팽개쳤던 이들도 모두 YS를 따라, DJ를 따라 이 나라 고관대작의 경험을 두루 거쳤으며, 그 때 대열에 들지 못했던 이들마저 이제 어느 곳에서 건 그들의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천지는 여러 번 개벽을 한 셈입니다.

하오나, 이러한 변화에도 지금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사분오열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걱정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역이 찢기고, 세대가 갈리었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앙앙불락은 이제 그 대책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상하가 싸우고 좌우가 멱살을 잡으며, 스승과 제자, 심지어 스승과 스승, 제자와 제자가 편을 갈라 으르렁거립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각들이 산산이 갈라져 최악의 저주를 서로 퍼부으며 끝도 없이 싸웁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대를 이끌어야 하는 당신들에게서 오늘 우리가 듣는 목소리마저, 당신께서 어느 편에 서있든지에 상관없이, 오직 “나를, 나만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거나, 최소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수 있을 만큼 필요한, 무엇을 잘 모르고,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어 계몽을 거쳐야 하는 대상이라는 주장뿐입니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언젠가 어디선가 우리가 진저리치게 듣던 이야기인 것 같아 아연할 따름입니다. 부인하시겠습니까? 거기에 무슨 또 다른 역사적, 철학적 깊은 함의가 있다고 현학적 수사로 입막음을 하시겠습니까?

이 좁은 지면에 `민주'의 백과사전적 정의를 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멀고 긴 국가와 민족의 삶에 있어 `혼자'보다는 `함께'를 선택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해서 큰 잘못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나 민족의 생존을 위해, 이미 주어져 있거나 오직 하나뿐인 가치는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오늘, 우리가, 선택할 뿐이다”라고 생각해야 비로소 소위 민주적 사고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민주주의란 우리 삶의 선택에 관한, 연구→토론, 타협→실천을 효율적으로 반복하는 기술 이외에 무엇이겠습니까.

무릇 어떠한 형태의 싸움도, 하나의 가치만을 맹신하는 집단간의 갈등일 뿐입니다. 따라서 민주와 평화는, 그러한 독선을 버리는 것으로부터만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쌍방간의 성실한 설득과 경청, 이기의 절제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양식의 유지만이 그러한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들께서는 이러한 정신적 토양을 사회에 확산하고 앞에 말한 민주적 순환을 보좌하는 의무를 짐져야 하는 분들이 아니십니까.

하물며 당신들 자신이, 이데올로기와 독선만을 무한 확대 재생산하고 사회적 의무보다는 법률적 권한에만 집착한다면, 어떻게 당신들께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정히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할 어떤 사유가 당신들께 있는 것이라면, 당신들께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우리가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호랑이와 토끼도 한 산에서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당신들의 권한보다는 의무가 무엇인지를 하루에 한 시간씩만이라도 고뇌하는 우리의 `진정 잘난 분'들이 되어 주시기를 엎드려 빕니다. 새해 이 나라와 지역사회를 위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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