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선수와 동등하게 겨루는 것이 매력〃

【하남】모든 분야에서 이미 금녀의 벽이 무너져 성 구별 없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온 지 오래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적 여건을 감안 관행적으로 일정 부분을 배려하거나 동성끼리 경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특히 운동경기 등에서 남성과 동등한 상황에서 혼성으로 편재돼 기량을 겨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경기가 이성간의 열등과 우등이 아닌 각 성에 내재하고 있는 특징을 반영, 성을 구분 지어 동성끼리 경쟁한다.
 

그러나 경정만은 아니다. 남녀가 한데 어우러져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우승을 놓고 숨막히는 각축전을 벌인다. 이것만을 놓고 볼 때 경정에선 가혹하리 만치 성에 대한 배려가 없어 양성의 평등을 말한다면 가장 진화한 경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홍일점(紅一點)이란 구태의연한 표현은 경정에서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주영(23·여)씨가 물살을 가르며 보트와 자신이 하나돼 치열한 승부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중 하나다.

올해로 경정선수 2년차인 이씨는 지난해 첫 도입된 여성 선수의 실전 경주에서 높은 승률로 두각을 나타내며 일찍이 촉망받는 선수로 주목받았다. 첫 경주에서 1착을 하면서 출발부터 쾌조를 보인 이씨는 지난해 46경주에서 60% 넘게 1착으로 결승선을 통과, 본인에게 우승상금 등 영예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올해 3월2일 개장과 함께 펼쳐진 레이스에서 보트가 전복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우수한 기량과 투지로 다시 정상을 되찾아 지난해의 명성을 재확인하며 승률을 갱신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씨가 보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체고에 입학 조정선수로 활동하면서다. 전국체전 조정 더블스컬에서 우승하는 등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자연스레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연습을 하다 바로 곁에서 이뤄지는 박진감 넘치는 경정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는 것.
 

자신의 승부 근성과 기량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판단 경정으로 전향을 작정했지만 잦은 사고에 노출돼 있는 경정의 위험성을 알게된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흔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끈질긴 설득에 부모도 백기를 들었으며, 이제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경정은 선수와 보트, 모터 등 세 박자가 맞아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선수의 뛰어난 기량이 있어도 추첨에 의해 배정되는 보트와 모터는 그야말로 운에 의해 좌우된다. 추첨운이 없어 또는 자신의 실수로 하위로 들어올 땐 자신을 믿고 투표한 관객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쳐다볼 면목조차 없다는 이씨는 앳된 얼굴이지만 보트에 오르면 다부진 승부사의 근성을 발휘, 거친 배싸움의 승자가 돼 동료들의 부러운 시샘을 한 눈에 받기도 한다.

여느 운동과 마찬가지로 경정도 부단한 기량연마가 선행돼야 한다. 즉 다양한 기술습득 등 외롭고 고단한 훈련을 인내하는 외로운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자가 된 뒤에야 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경마나 경륜같이 사행심 조장이라는 따가운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국민의 레저문화를 건전한 방향으로 한 단계 승화시킨다는 명분으로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경정운영본부(사장 송국섭)가 4년전에 경정을 개장한 이래 꾸준히 성장해 왔다. 지난해 연매출 3천370억 원을 올리며 인기를 누리고 있으나, 올해엔 전반적인 경제부진으로 매출실적이 감소하고 있어 특히 여성선수들의 활약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 가운데 주목받는 이가 단연 이주영 선수다. “우리나라 여성 경정의 역사를 새롭게 쓰며 산 증인이 되기 위해 체력이 따라줄 때까지 경정장에 서있겠다”는 이씨는 “우승이라는 화려한 삶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투쟁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남는다면 만족한다”고 말해 경정장의 여전사로서 든든함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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