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한성수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20년 평북 신의주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선생은 민족교육의 요람인 정주 오산학교에서 공부하고 1939년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해 전수대학 경제학과에 다녔다. 재학 중 독립운동 관련 서적을 읽다가 발각돼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1944년 초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선생은 중국 중부지역인 강소성 서주 인근의 일본군부대에 배속됐다 그해 3월 일본군을 탈출해 안휘성 부양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로 찾아가 입대, 광복군 대원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설치된 한국광복군훈련반에 들어갔다.

여기서 교육 훈련을 받고 광복군 장교로 입관한 뒤 광복군 제3지대의 기간요원이 된 선생은 적 후방 공작을 펴며 광복군 대원 모집 활동을 벌여 많은 한인 청년들을 광복군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1944년 11월 상해를 비롯한 화남지역 공작책임자로 임명돼 활동하면서 상해 일본군내 젊은 한적 장병들과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공작을 진행, 10여 명의 한인 청년들을 포섭했고, 공작거점도 확보했다.

선생은 이를 기반으로 상해의 한인 갑부인 손창식을 찾아가 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가 써준 메모를 건네면서 군자금 제공을 요청하는 등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 1945년 3월13일 상해 주둔 일본 헌병대에 체포된다.

결국 선생은 상해 일본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남경 일본육군형무소에 이송됐다가, 1945년 5월13일 참수되며 순국한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한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돼 관련 자료와 사진을 5월 한 달간 전시하며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이 달의 독립운동가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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