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도시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부천에서 제9회 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지난 1997년 출범 당시 여러 어려운 여건 하에서 출발했겠지만 벌써 나름대로 입지를 탄탄히 하면서 우리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제의 영문 머리글자 Pifan(Puch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을 조금만 관심있게 보면 머리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부천의 공식 영문 표기는 Bucheon으로 되어 있어서 Bifan으로 해야 할 것인데 왜 처음 출범 당시의 표기를 고집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두게 된다. 나름대로 판단해 보면 초기 문구가 널리 알려져 있어서 변경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Bifan으로 되었을 경우는 우리 발음으로 `비판'으로 불리워질 것 같아서 Pifan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한글의 영문 표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있다기보다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 다른 나라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즉 고객 중심, 고객의 눈높이에서 판단해 보면 그 답은 쉽게 나온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 측면에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로마자 표기는 일반적으로 MR방식(McCune-Reischauer system)을 채택하고 있다. 즉 부천을 Puchon으로, 인천을 Inchon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거기에는 우리의 `어'와 `오' 발음에 대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매크론(macron)이라고 하는 것을 붙여서 혼돈을 피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그것을 생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하여 아직도 외국에서 간행하는 학술지, 지도 등은 여전히 우리 현행 방식을 따르지 않고 MR방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은 거의 확고 부동한 로마자 표기가 정립돼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의 웨이드(Wade) 방식을 포기하고 1980년대 초반부터 병음(Pinyin) 방식을 채택했다. 예를 들면 북경을 전자는 Peking으로 표기하고 후자는 Beijing으로 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거의 1세기 이상 헵번(James Hepburn) 선교사가 창안한 방식을 모체로 로마자 표기를 통일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로마자 표기의 대혼란의 극치는 개인 이름에서 절정에 이른다. 발음상 동일한데도 자기 개인 취향대로 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씨 이름을 보편적으로는 Lee라고 하지만 이 순신 제독은 (Admiral Yi) 라고 해 Yi 라고 표기하고 있다. `노'씨 경우는 No 라고 하면 되지만 그저 부정어라는 인식 때문에 동일한 표기와 발음을 두고 Roh, Rho, Lho, Loh, Noh 등으로 기록한다.

둘째는 북한의 로마자 표기 방식이다. 분단 반세기가 넘다 보니 모든 분야에 걸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북한은 우리에게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즉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은 우리의 체제와 방식을 다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일한 예외를 인정한다면 북한의 로마자 표기 방식이 우위에 있다. 즉 그들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MR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 출범한 개성공단의 개성을 우리 방식이라면 Gaeseong 으로 해야 할 텐데 Kaesong으로 표기하고 있다.

우리의 로마자 표기는 1980년대 이전에 소위 문교부 방식 (Ministry of Education system)이라고 하는 MOE 방식을 채택해 사용하다가 약 20년 정도 MR 방식으로 잘 사용하던 중 4년 전에 로마자 표기가 문제가 있다고 해 수십억, 아니 수백억 원의 예산을 출혈해 개정한다고 한 것이 겨우 과거 방식으로 회귀한 것이다. 그저 돈 한 푼 안 들여도 될 것을 온갖 인적 조직을 설치해 천문학적 금액을 출혈해 겨우 나온 결과가 퇴보적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권율정(인천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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