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당선자가 집권 청사진과 정치철학을 밝히는 자리에서 청탁폐해 근절 의지를 강력히 천명해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에서 나온 노 당선자의 이런 언급은 집권당 인사들의 마음가짐에 대한 강력한 주문인 동시에 지연,학연,혈연 등 우리사회의 연고주의와 이른바 `줄대기 문화'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다소간 격하다는 느낌까지도 주는 `걸리면 패가 망신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인사청탁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기업들의 청탁에 대해서도 `살아남지 못하도록 엄청난 타격을 주겠다'고 경고한 것은 청탁폐해 문제에 대한 당선자의 심중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노 당선자는 이밖에 권력구조 개편문제와 관련해서도 오는 2006년까지 개헌논의를 공론화해 2007년까지는 매듭짓겠다는 일정을 제시하고 정치개혁 등의 거대현안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일반국민의 관심은 아무래도 눈앞의 관심사인 새 정부의 인사정책쪽에 더 쏠리는 분위기다.

사실 청탁의 폐해에 대해선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능력과 실적에 따른 공정한 인사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 조직의 능률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구성원간 갈등으로 끊임없이 알력과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원천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는 낙하산 인사요, 아래에서는 새치기 인사가 밥먹듯 이뤄지는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리가 없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안면으로, 알음알음으로 수주와 각종 기업활동상의 편의가 제공되는 불공정 경쟁환경에서는 어느 기업도 효율향상과 기술혁신에 투자할 의욕을 가질 수 없다. 어떻게든 힘있는 쪽에 줄을 대 편하게 기업을 하겠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연고주의와 편법이 횡행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고, 과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줄을 대기위해 너도나도 바삐 뛰는 어이없고 천박한 사회행태를 어김없이 되풀이 목도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과거에도 청탁 근절에 대한 위정자들의 엄중한 경고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몇차례 일벌백계식 엄벌이 고작이었을뿐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 흐지부지됐고,줄대기 문화는 다시 고개를 들어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중의 하나로 고착화되다시피 한 것이다. 부정부패의 상당부분도 연고주의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짚어보면 청탁폐해 근절을 위해서는 단순히 선언적 경고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사실이 확연해진다. 겉으로는 급속한 현대화 과정을 밟아왔지만 전통사회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사회의 2중적 구조로 인해 연고주의와 청탁문화는 하루아침에 혁파하기 어려운 복잡한 배경을 깔고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청탁과 줄대기 풍토의 근절은 확고한 제도적 바탕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그것은 정치.사회의 모든 과정을 제도적으로 투명화하는 동시에, 새정부 최상층부터 인사에 관한 한 잡음이 없도록 솔선수범하는 길이다. 대통령 친인척에서부터 권력핵심부 인사에 이르기까지 어떤 인사나 이권에도 개입하지않는다는 국민적 신뢰의 바탕위에서야 연고주의 배제는 제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것이다. `무능하고 깨끗하지 못한 인사가 줄잡아 출세했다'는 체감적 사례가 주변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가장 가까이는 DJ 정부의 몰락도 그 출발점은 바로 인사문제라는 지적이 적지않다는 것을 노 당선자 진영은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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