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돈을 벌어 세금을 내고, 나라는 이 돈으로 나라 살림을 한다. 나랏돈은 공공의 돈이라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기초연구자금이나, 문예진흥기금이나, 공공복지기금이나, 사학에 대한 보조금도 공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랏돈에는 보이진 않지만 항상 ‘공공에 대한 의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셈이다.

             나랏돈은 멋대로 못쓰는 거북한 돈

개인 돈은 제 맘대로 쓸 수 있겠지만 나랏돈은 제 멋대로 쓸 수 없는 참 거북한 돈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나랏돈을 마치 눈 먼 돈처럼 여기고 있다. 모두들 나랏돈 쓰는 것에 대해 겁이 없다. 예산 늘려 잡기를 주저하지 않고, 전체 예산은 아랑곳없이 자기 지방자치단체나 자기 부처의 배정만 많이 받으려 할 뿐이다. 사업을 하는 어떤 이들은 나랏돈 먹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기도 한다.

최근 황우석 교수 사태는 허위와 거짓에 대해 무감각해진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정직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은 부끄럽게도 별로 없다. 권력을 휘두를 여지가 있도록 일부러 비리 영역을 남겨두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서로 묵인되고 조장되는 비리의 영역은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악어와 악어새처럼 널려 있다.

일례로, 시나 국가의 문예진흥기금이나 사회단체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하려는 단체는 대체적으로 지원받을 돈 이상으로 자기 부담금을 더 마련해야 한다. 서류대로라면 일을 많이 하려면 할수록 해당 단체는 자체로 모아둔 돈을 쓰든지 아니면 회원들에게 회비를 더 걷어야 한다. 요즘 시민사회단체의 후원금이 많이 걷힌다는 풍문은 전혀 없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항상 너도 나도 기금을 더 달라고(더 받으면 제 돈을 더 써야 할 텐데) 아우성이다.

남의 일인 듯 줄기세포 논문조작으론 비분강개 하다가도 금방 뒤돌아서 자신의 기금 신청 서류는 태연하게 부풀린다. 여기서부터 거짓의 순환은 시작된다. 연구 보조금, 사학에 대한 보조금 등 각종 국가지원금은 절대 이렇지 않다고 정말 장담할 수 있을까?

구조적 모순을 뛰어 넘어, 털어도 먼지 안 날 모델을 어디서부터 만들어야 할까? 바로 시나 국가의 지원금을 받는 그곳에 해답이 있다. 왜냐하면 공적 기금을 받는 곳은 당연히 공공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만큼은 더 깨끗하게 쓰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디보다 이곳이야말로 자기정화의 시발점으로서 적격이다.

복식부기를 해라, 현금영수증을 발부해라,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라고 자영업자나 고소득자에게 주문하지만 사실 거기보다 먼저 솔선하라고 주문해야할 곳은 바로 시나 국가의 지원금을 받아쓰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나랏돈 쓰이는 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차라리 여기저기서 돈을 걷어 분배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정책이며, 새로 걷기 전에 갖고 있는 돈부터 제대로 잘 쓰는 것이 올바른 분배 정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공공의 돈은 공공의 의무 지녀

어쨌든 돈을 어떻게 썼는지 확실하게 공개하고 깨끗하게 경영한다는 전제 조건을 수락하는 개인이나 단체에게만, 모든 국가지원금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 일을 위해 가져간 공공의 돈에는 자정(自淨)의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 공공의 돈에 관한 한, 회계와 경영은 정직하고 투명해야 한다. 만약 나랏돈을 갖다 쓰는 곳에서부터 사회의 모델이 될 만한 것이 시작된다면, 서서히 민간 기업까지 정직한 모델은 확산될 것이다.

현재 논란 중인 개방형이사제도도 단지 사학 비리 방지책의 하나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인 비리 방지책은 궁극적으론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관리 시스템의 정착일 것이다.

결국 모든 ‘공공의 돈’은 반드시 공공의 의무를 지닌다. 그러므로 공공기금을 받는 곳은 ‘공공에 대한 의무’로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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