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로 예정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 당의장으로 출마한 정동영 상임고문이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했다. 정 고문은 22일 “가능하면 2015년 이전에 군병력을 현재의 절반인 30만~40만으로 감축하는 획기적 평화구조가 구축될 경우 2020년까지 연평균 8~9% 증액토록 돼 있는 국방비에서 상당한 재원을 여유로 갖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안보관련 발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최근까지 통일부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집권여당의 당의장 후보로 출마했을 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후보가 되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병력 절반감축 주장은 안보불안감 초래

저 자신 20여년 전에 한국군을 절반 이하로 감축할 것을 제안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20여년 전에 군병력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한국군이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 정치개입의 능력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군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군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단, 핵무장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후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절대 선제공격을 하지 않고 단지 우리나라가 먼저 공격을 받는 상황이 오면 핵무기를 사용해 방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공표하자는 단서 조항을 달았던 것이다.

정 고문이 군병력을 절반으로 감축하자고 주장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절대절명의 과제로 내세우면서 이를 위해 세금을 더 거두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재원마련의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평화체제구축 방안의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병력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주장은 국가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오는 것이 사실이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나 연방제 통일방안 등에 대해 남북한 간에 은밀한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평화체제구축을 언급한 것은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남북 분단의 고착화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잉여안보(surplus security) 때문에 과다하게 지출되는 분단비용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국가안보가 튼튼하다면 병력도 줄이고, 국민개병제도 지원제로 바꾸고, 안보비용을 대폭 삭감해 국민복지 증진과 양극화 해소의 재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안보는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우리만 군병력을 절반으로 줄인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군축에 합의하고, 그 이행이 국제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우리 병력만 감축한다는 것은 안보공백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6자회담이 진행 중에 있지만 북한이 핵무장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재래식 무기나 병력도 우리보다 월등하다고 알려졌다. 한미군사동맹에 이상 기류가 형성됐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상황이다. 아무리 남북한 국력차가 크고, 남북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 긴장이 완화됐다고 하지만 평화체제구축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행방안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군병력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안보공백에 대한 대안 제시해야

 그렇지 않아도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이 삭제되고, 국가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으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 나라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구체적 대안제시 없이 군병력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경솔한 감이 없지 않다. 군병력을 절반으로 줄여 남는 재원을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활용하자는 주장은 초등학교 학생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력을 절반으로 줄인 후 안보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제시가 있어야 한다. 현실성 있는 병력 절반 감축 방안을 제시해 안보 불안감을 해소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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