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념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작년부터 소위 ‘뉴라이트’를 자칭하면서 새로운 우파 보수 세력임을 자임하는 집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더니 급기야는 최근 ‘뉴레프트’까지 등장했다. 아직도 남북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좌니 우니 하는 이념 논쟁은 과거 냉전적 사고방식의 소산으로 생각해 식상해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의 논쟁은 전부 앞에다 ‘뉴’자를 붙여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정치 세력을 전부 ‘올드’자를 붙여 청산되어야 할 집단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들 새로운 세력에게 한 가지 공통된 것은 대체로 40대에서 50대로 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비교적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아직은 현실 정치에 몸을 담지 않은, 그래서 비교적 때 묻지 않은 전문가 집단들이라는 점이다.

               이분법에 기초한 좌우이념 의미 상실

이런 긍정적인 점에서 볼 때 이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봄직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새로운 이념 논쟁을 일으켜 우리 사회에 진정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꼭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나이만 젊다고, 그리고 전문적 지식이 있다고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먼저 적어도 과거와 다른 콘텐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21세기 패러다임 부재의 시대에 이념의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다. 과거 계급을 중심으로 노동과 자본의 이분법에 기초한 좌우 이념의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좌가 진보로, 우가 보수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논리도 구소련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역전되고 있다. 구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우파적 정책이 진보적이 되고 과거 좌파적 정책이 과거 체제의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보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구소련을 중심으로 했던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21세기 좌파는 이미 오래 전에 제도권으로 들어 온 유럽사회주의 안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과 프랑스 사회당의 분열, 독일 사민당의 변신 등 유럽 좌파는 과거 우파의 많은 테제를 받아들이면서 보수화되고 있다. 적어도 이념 논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사상사적 전통과 아시아의 문명사적 전망에 기초한 새로운 21세기 이념 논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인 상의 구축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후진적 정치 문화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의 기본 자질과 도덕성 사이의 불균형 때문이다. 과거 우리 사회의 정치인 공급원은 크게 두 부문이었다. 하나는 군부와 관료를 중심으로 한 산업화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운동권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이었다. 전자는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관리 능력 등에서는 앞섰으나 독재에 빌붙었다는 도덕적 비판을 면치 못했다. 후자는 민주화를 주도하면서 도덕적 정당성과 명분은 확보했으나 투쟁 일변도의 삶에서 건설적인 행정 능력과 전문성을 기르지 못했다. 작금의 새로운 이념 논쟁 세력이 진정 기존 정치세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동시에 균형있게 구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전문가 시대에 도덕성이 더욱 문제가 된다. 운동권을 자칭하거나 말로만 개혁을 떠들면서 이름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이비 도덕성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진정 우리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기희생을 해 오면서 리더십을 키워 온 각 분야의 보이지 않는 작은 영웅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

                 지역통합을 새 비전으로 삼아야

마지막으로 새로운 이념 논쟁은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타협 및 양보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의 하나는 21세기 새로운 비전의 하나로 동북아나 아시아 지역통합을 화두로 삼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지역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끼리만'이라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남을 인정하고 차이를 이해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대내적으로 사회 통합을 제대로 못하면서 대외적으로 지역통합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통합을 완료해야 대외적으로 지역통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티를 탓하기보다 우리 주변국과 같이 잘 사는 방안을 찾으면서 이념의 차이를 좁혀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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