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을 보면서 얼마 전 관람했던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한 카피라이터의 죽음에 대한 숨가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줄거리이긴 하지만 잘 나갈 때 떠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영화였다.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적시(適時)를 잘 판단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앉아 있을 때인지, 서 있어야 할 때인지, 자리를 떠날 때인지, 더 머물 때인지를 분간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를 읽는 능력이 중요

이해찬 국무총리는 5선이라는 풍부한 의정경험도 있고,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교육부장관을 역임하는 등 지방과 중앙정부의 행정경험도 있다. 차기 여당의 대권예비 후보의 하나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느 장관이 이 총리는 국정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신속한 의사결정과 결단력을 갖춘 능력있는 실세총리라고 평가하는 소리를 들었다. 백번을 양보해서 행정부 2인자로서 국정수행 능력이 출중하다고 인정하더라도 때를 읽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아니면 오만 때문에 자연의 섭리인 때를 거역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국무총리는 골프 칠 때를 잘못 선택했다. 국무총리라고 골프를 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좋아하는 운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인으로서 국정수행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권장할 수 있을 것이다. 총리공관에 간이 골프 연습장을 설치하는 것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국무총리의 3·1절 골프는 황제골프, 접대골프, 내기골프, 동반자의 부적절성 등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최초에 불거진 것은 골프를 친 때 때문이다.

때를 잘못 선택한 것은 그날이 3·1절에다 철도 파업 첫날이었다. 국무총리는 전에도 부적절한 때 골프를 쳐 국민에게 사과까지 한 전력이 있다. 지난해 4월 식목일 강원도 양양지역에 산불이 발생한 날, 7월 2일 남부지역의 집중 호우로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하는 날 골프를 쳤다. 더구나 3·1절 골프 바로 전날 국회에서 홍준표 의원이 법조 브로커 윤 아무개씨와 골프를 치고 후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총리는 “도덕적 법률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응수하면서 홍 의원의 선거법 위반 전력을 제기한 막말 공방이 있었다. 실세총리로서 국회를 경시하는 안하무인이라는 비난을 받은 바로 다음 날 또 골프 파문을 불러온 것이다.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부적절한 때 골프를 쳤다. 이쯤되면 여론이나 때를 무시하는 오만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진실해명의 때를 놓쳐 문제를 더 키웠다. 3·1절 기념식에서 순국선열의 애국충정을 기리던 순간 골프를 친 것이 문제되었을 때 곧바로 사실대로 털어놓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진솔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물론 라운딩을 같이 했지만 엉뚱하게 교육부차관이 나서서 거짓해명을 하고, 계속해서 진실을 호도하려는 모습을 보여 의구심을 키웠고 파문이 확산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반자가 확인되었고, 황제골프, 접대골프, 내기골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골프장 직원과 도우미가 있고 내장객이 있고 카드 결제전표와 운동기록이 있는데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부적절한 골프의 보안이 지켜지리라고 믿었다면 판단 착오다.

                진퇴의 때를 읽을 줄 알아야

세상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필드에 나갈 때가 있고, 산에 오를 때가 있다.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운동 날을 잡는 것도, 무슨 문제가 터졌을 때 진실을 밝히는 때도 중요하지만 본질은 자리에 있어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판단하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으로 때를 읽을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박수 받을 때 그 자리를 떠날 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용기있는 결단 같다. 손가락질 받기 전에 그 자리에서 물러날 줄 아는 용기를 아무나 발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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