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에서 청중은 결혼식의 하객과 같은 존재다. 한 번도 주인공으로 나서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다.

음악사에서도 어떤 작곡가가 무슨 곡을 발표했다든지, 어떤 지휘자가 어떻게 음악을 연주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만 부각될 뿐 청중에 대한 이야기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와타나베 히로시 도쿄대 대학원 미학예술학 교수가 지은 `청중의 탄생'(윤대석 옮김·강 펴냄)은 소외돼 있던 `청중'을 클래식 음악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저자는 나아가 음악의 흐름을 주도한 것도 청중이었다고 주장한다. 1천 명이 무대에 오르는 말러의 `천인 교향곡'을 예로 들어보자.

소수의 귀족이 음악의 주 소비층이었던 모차르트나 바흐 시대에는 천인교향곡 같은 음악은 태어날 수 없었다. 베토벤 시대 이후 수많은 부르주아들이 청중 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연주자가 필요한 교향곡이 클래식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청중만을 위한 공간인 객석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연주가 시작되면 객석을 지금처럼 어둡게 하는 관행은 사실 근대에 들어 정착됐다.

무대 만큼이나 밝은 18세기 연주회장의 객석은 음악 감상보다는 `사교의 장'으로 활용됐다. 한 음악회와 관련한 당시 보고서에는 “여자는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남자는 여자들을 보기 위해 연주회에 온다”는 말이 나온다.

19세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리스트는 요즘의 `오빠부대'처럼 수많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다. 어떤 여성은 그가 마시다 남긴 홍차를 향수병에 넣어 간직하는 등 광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저자가 최근의 경향 가운데 하나로 지적하는 것은 `거장' 또는 `명곡'을 감싸고 있던 신화의 해체다. `불멸의 거장' 베토벤, `베토벤의 제왕' 카라얀 등 이른바 `영웅'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저자는 `서울에서 맛있는 집' 같은 카달로그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음악이 가치없이 병존하는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또 음악을 쉽게 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명곡에 싫증을 느끼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280쪽. 1만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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