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먼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피던 고리짝 그 옛날은 아니더라도 옛날 이야기책 또는 역사책에서 보거나 들었을 법한 과거의 삶이 옮겨진 곳.
 
옛 선조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며 어린아이들에게 윽박지르지 않더라도 그곳에 가면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난감한 질문에 역사에 대한 무지함을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그곳이 박물관이다.
 
요즘은 옛날 서적부터 그림, 각종 생활도구 등을 전시해 놓은 전통적인 박물관은 물론 불과 30~40년전을 살았던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보여주는 달동네박물관과 자장면박물관, 이민사박물관 등 다양한 소재의 테마박물관이 잇따라 들어섰거나 들어설 계획이어서 문화불모지 인천을 빛내고 있다.
 
늦여름의 지루한 치근거림을 시원한 빗줄기로 날려버리며 겨울로 달음박질치는 이 가을날에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주변의 박물관들을 천천히, 자세히 그리고 느긋하게 돌아보는 시간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편집자 주〉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자유공원 내리막길에서 동인천역 뒤로 우뚝 솟은 야산에 아파트단지가 삐죽거리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수도국산이다.

지금이야 푸른 녹지와 아파트가 훤하게 들어오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서민들의 피와 한숨이 섞인 온갖 형태의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였다.
 
원래 이곳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바닷가 한적한 언덕으로 만수산 또는 송림산으로 불리웠으나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가 1906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를 착수, 이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를 설치하면서 수도국산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수도국산의 역사는 일제에 쫓겨난 수탈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수도국산의 비탈진 소나무 숲으로 쫓겨난 가난한 식민지 민중들은 수도국산을 보금자리로 삼았으며 이후 6·25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까지 모여들면서 대규모 피난민촌이 형성됐다.

여기에 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의 영향으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찾은 사람들은 좀 더 싼 생활터전을 찾기 위해 산꼭대기로 들어와 재개발 이전까지 3천여 가구가 빼곡하게 수도국산을 메우며 하늘아래 첫 동네인 달동네의 전형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3천여 가구가 살던 이곳은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공원으로 탈바꿈하면서 100여 년간 수도국산에 담긴 서민들의 삶의 고달픔과 애환도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업화와 자본에 밀려난 우리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아픔과 고통만이 아니라 서민들의 사랑과 기쁨, 그리고 여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달동네 특유의 끈끈한 정이 녹아든 수도국산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으로 지난해 10월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 개관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서 맞닥뜨리는 좁다랗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보면 숨이 멎는다. 아주 오랫동안 잊었던 어릴 적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나기 때문이다.
 
한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 여기저기 붙어있는 반공포스터며 쥐잡기표어, 오래된 판잣집, 박치기 왕 김일의 레스링 경기가 열리던 날이면 TV가 있는 집에 모여 앉아 가슴 졸이던 그때의 기억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집 한 쪽 구석에 쌓여있는 십구공탄(연탄)이며 연탄보일러, 은율솜틀집, 대지이발관, 어릴적 다 터진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구슬치기며 딱지치기에 정신 팔려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놀던 달동네의 풍경들에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동네 어귀에서는 수도국산 달동네를 지켰던 실존인물들이 다른 마네킹과 달리 석고상처럼 분장없이 놓여져 있는 것도 다른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평남 안주에서 출생해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인천기계제작소에서 퇴직한 이후 송현동 주변에서 폐지를 주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을 베풀었던 고 맹태성 씨의 모습이 골목입구에서 폐지를 줍던 그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다.
  바로 앞에는 황해도 은율지방에서 피난내려와 동인천 구름다리에서 `은율면업사'라는 이름의 솜틀집을 3대째 해 온 고 박길주 씨의 솜트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고인의 유언에 따라 박물관에 솜틀을 기증했다고 한다.

이웃하고 있는 대지이발관과 연탄가게도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마네킹이 당시 추억을 되살려 놓고 있다.

김현지 학예연구사는 "나폴레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유명인사는 아니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땀의 대가로 지금 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치열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실존인물을 모델로 세웠다"고 말했다.
 
이곳을 지나면 매일 아침 한 손에는 구겨진 신문지를,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지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엉덩이를 배배꼬며 줄을 서 있는 모습과 함께 빨리 나오라고 소리지르는 모습이 연상되는 공동화장실을 지나게 된다.

한 쪽 구석 쪽방에는 그 시절에 언니 오빠들이 입었을 교복이 가지런히 걸려져 교복을 입고 기념촬영도 할 수 있고 그 시절 잘나가던 만화가게도 볼 수 있다.

전시공간 끝부분에는 매점도 마련돼 당시의 딱지와 장난감, 성냥 등 기념품을 고르는 것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완결짓게 된다.

달동네박물관의 배경은 1971년 11월 초겨울이라고 한다.

모형과 그림으로 옮겨진 달동네는 비교적 아름다운 색채와 표현으로 낭만이 깃든 곳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오죽하면 달동네에서 생존의 끈을 이어갔을 우리네 우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은 어른에겐 시간을 거슬러 그 당시 아픔과 고통을 추억하는 곳이지만 무심한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대를 돌아보는 교육장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과거형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달동네는 여전히 아픈 추억이다.

* 관람안내(문의 ☎032-770-6131)

관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매표마감은 관람종료 30분 전)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요금은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이다.

 
▶어린이박물관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어른들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는 아이들이 노는 토요일에 함께 갈 곳을 찾는 것이다.

괜히 기름값 없애고 힘들여 멀리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문학월드컵경기장으로 가면 만사 OK다.

문학월드컵경기장 스탠드 밑 800여 평에 자리잡은 국내 최대 규모의 `인천어린이박물관'은 전시물을 단순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체험식 박물관으로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과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꾸려낸 각각의 방을 지나면서 신나게 놀고 상상력을 키우다보면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엄지손가락이 올라간다.

출입구를 들어서 문화탐구관에 들어서면 1960~70년대 교실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을 보며 당시 국민학교에 다녔던 부모들이라면 이러한 것을 어떻게 수집했을까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당시 썼던 교과서와 공책, 교복은 물론 어떻게 앉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은 책·걸상, 그리고 `벤또'라고 불렸던 양은도시락까지 당시 국민학교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지구촌 문화탐구방에는 대륙별로 지구촌 여러지역의 역사와 문화, 신앙이 담긴 크고 작은 민속유물과 생활용품, 중세 유럽의 기사가 사용했던 무기와 근대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사용했던 유물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학탐구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들이 활기를 띤다.

어렵게 생각했던 과학의 여러 가지 원리를 직접 만져보고 돌려보면서 과학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곳에는 공기의 흐름과 압력의 원리를 이용한 `떠 있는 공', `발로 하는 피아노', `사이클 헬리콥터', 광센서를 이용한 하프를 직접 시연해볼 수 있다.

공룡탐험관에서는 중생대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데 공룡의 움직임과 울음소리 등 현존하는 지질학적, 생물학적 자료를 토대로 복원한 공룡들을 통해 지구와 생물의 진화를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의 탄성을 불러내는 곳이 또 하나 있다면 교육용 만화영화를 초대형 화면을 통해 만화 캐릭터와 상황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3차원 입체영상관'으로 특수안경을 끼고 빠져들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이외에도 민속탈 채색하기, 도자기 아트 등 다양한 종류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미술체험방이 있다.

무료한 토요일 온 가족이 들러볼 수 있는 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들에게는 체험교육의 장이지만 부모에게는 유익한 가족나들이를 겸한 유쾌한 문화공간이 될 것 같다.

* 관람안내(문의 ☎032-432-5600)

관람은 연중무휴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요금은 중학생 이상 성인 5천 원, 어린이 6천 원(20명 이상 단체는 1천 원씩 할인)이다.


▶인천시립박물관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릴 것만 가리고 말인지 비명인지 모를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로 돌도끼를 들고 맘모스와 멧돼지를 쫓았을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하다면 인천시립박물관으로 가 보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

선사시대부터 근대 인천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실물과 비슷한 모형은 물론 당시 출토된 토기 등 생활용품은 물론 각종 무기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 1946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문을 연 인천시립박물관은 한국전쟁으로 유물과 본관이 소실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1953년 중구 송학동에 복관됐다.

이후 1990년 현재의 옥련동 청량산 밑자락에 자리를 잡고 일반에 공개됐다가 개관 6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7월10일 재개관했다.

종전보다 배나 넓어진 전시실에는 선사시대 유물을 비롯해 1883년 인천개항 후 격동의 한 세기를 걸어 온 인천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역사1실에는 비류백제의 발원지인 문학산 일대와 계양산 주변의 토광묘와 돌도끼, 돌검, 녹청자 등 선사시대 유물을 비롯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다.

역사2실에는 일제 강점기 인천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는데 1918년 완공된 인천항 갑문의 모형과 개화기 인천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공예실과 서화실에서는 도기, 청자, 불상, 금속공예는 물론 서화, 문인화 등 각종 그림과 서예작품이 전시돼 있다.

남자 아이들이라면 각종 무기류에 정신을 빼놓을 수도 있다.

* 관람안내(문의 ☎032-832-2570)

어린이 무료, 성인 400원(월요일 휴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김현지 학예연구사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어둡고 구질구질한 가난만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더불어 함께 살아온 미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김현지(36) 학예연구사는 달동네박물관이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치를 `모둠살이'라고 한다.
 
"급속한 산업화로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달동네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나서서 늦은 밤이 돼서야 집에 들어와도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고단한 삶이지만 작은 것도 함께 나누는 시골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는 모둠살이를 보여줍니다."
 
사실 그랬다.
 
그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 때 그 시절, 달동네 집은 항상 열려있었으며 쌀이 떨어져 수제비를 끓이다 이웃이 오면 물 더 붓고 수저 하나만 놓으면 그만인 기쁨과 고통까지 함께 나누며 살아갔던 모둠살이의 전형이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 동구청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지만 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고 흔적만이라도 간직한 까닭이 부지런히 일하며 더불어 살아온 달동네 이웃들의 모습이 오늘의 삶의 가치라고 믿었기 때문일 게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다고 한다.

"이곳은 3대가 함께 오더라도 전혀 괴리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계층마다 떠올리는 추억이 다르지만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니 손을 잡고 온 아이들도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그 시절 얘기를 들으며 산교육을 받는 공간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어린 시절 물지게를 졌던 기억과 한겨울 연탄을 갈며 가스를 마시지 않기 위해 얼굴을 찡그렸던 기억, 이발소에서 머리를 상고머리를 깎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바쁜 일상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김현지 학예연구사는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고생스럽게 보냈던 과거를 떠올리며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 이웃을 기억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부지런함과 모둠살이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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