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을 보면 놀부가 켠 박에서 거지떼와 도깨비와 귀신들이 나오면서 놀부와 그의 처, 자식들이 벌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갖은 벌에 지친 놀부. 보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켠 박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먹음직스럽고 하얀 박의 속살만이 들어있다.

놀부와 그의 가족들은 박 속을 떠내 그것으로 국을 끓여 훌훌 마신다.

놀부는 대부분의 재산을 잃거나 얻어맞아 아픈 몸도 모두 잊은 채 뜨겁고 시원한 박국을 콧물까지 뚝뚝 흘리며 마시고는 잠시나마 행복해 한다. 물론 그 박국 역시 말 끝에 `당동'이란 말이 저절로 붙는 벌 중 하나였지만.

절망적 상황 속에서 마신 따뜻한 국물에 고마움마저 느끼던 놀부처럼 우리 민족의 음식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물요리, 혹은 탕요리는 현재도 갖가지 모습으로 그 특유의 식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항구도시 인천.

서민들의 지친 몸과 고픈 배를 달래주던 국물요리를 찾아 인천에서 이름난 곳을 찾아 돌아봤다.

 

◇탕과 국, 찌개

`국'이 순수 우리말이라면 `탕'은 한자어 湯에서 온 말이다.

湯의 원 뜻은 `끓이다'인데, 우리말에서는 `국'과 같은 뜻이거나 아니면 `국'의 높임 표현으로 쓰인다.

`탕'이 `국'의 높임말로 쓰이는 것은 제사 때 올리는 국을 가리킬 때지만 전라도 사람 가운데는 제사 때의 `탕'을 `탕국'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국'과 `탕'이 같은 높이로 쓰일 때에는 서로 쓰이는 경우가 구별되는 듯하다.

우선 채소 종류로 만든 경우에는 `탕' 대신 `국'을 쓴다. `토란국, 시래기국, 시금치국, 배추국, 무국, 미역국, 된장국' 등이 이런 예에 속하며 이 때문에 `감자국'과 `감자탕'은 내용물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감자국이 감자가 주된 재료라면 감자탕은 감자에 고기 종류가 섞인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더구나 `감자탕'은 근래에 들어 유입된 것으로서 전라도 지방에서는 `감자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생선도 집에서 흔히 먹는 동태나 오징어 등은 `국'을 쓰지만, 상품으로 개발된 생태탕, 대구탕, 조기탕, 매운탕 등에는 `탕'이 쓰인다.

복어탕도 전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복국이라 불렸지만 근래에 들어 상품으로 대중화되면서 복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추어탕 역시 전라도에서는 흔히 미꾸라지국이나 웅구락지국 등으로 불렸으나 추어와 같은 한자어를 쓸 때에는 `탕'이 결합돼 `추탕 또는 `추어탕'이라고 한다.

그밖에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넣은 국물음식은 `탕'이라 하지 않고 `국'이라 부른다.

찌개 역시 상고시대에는 국과 찌개가 갱(羹)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다가 차차 음식이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국과 찌개로 분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물요리

“어으, 시원하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말이나 문화를 배울 때 가장 의아해하는 표현이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라고 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뜨겁거나 매운 국물을 마시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맛있다, 맵다, 뜨겁다, 얼큰하다, 덥지만 그것이 싫지 않다, 속을 확 풀어준다' 등등의 뜻이 함축적으로 모두 포함된 이 표현, `시원하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물음식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예다.

밥상 위에 보글거리는 찌개 한 사발이나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국 한 그릇이면 뱃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추워지는 요즘. 놀부가 콧물을 뚝뚝 흘리며 먹던 뜨거운 국물 한 그릇이 머리가 아닌 입안에서 가득 떠오른다.

▶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물 음식, 설렁탕(혹은 설농탕)

설렁탕은 서울의 고유 음식으로 소고기 곰국의 일종이다.

설렁탕에 관한 설명을 손정규의 `조선요리'(1940)에서 살펴보면 설렁탕은 소의 고기와 내장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뼈가 붙어있는 그대로 넣고 하루쯤 곤 것이라고 적혀있다.

설렁탕과 곰탕을 확연히 구분짓기는 곤란하지만 설렁탕은 본래 곰탕보다 뼈가 많이 들어 있어서 오랜 시간 동안 걸쭉하게 끓이므로 골수가 녹아 국물이 뽀얗게 돼 곰탕과는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대중적인 국물음식이다.

전통적인 설렁탕집에서는 소를 한 마리 잡으면 소가죽과 오물을 뺀 거의 모든 부위, 즉 소뼈와 내장, 소머리까지 큰 가마솥에 함께 넣고 새벽부터 다음날 밤 한시까지 끓였다고 한다.

따라서 자정 무렵부터 밤 한시까지는 국물이 바짝 졸은 진국이므로 이때쯤이면 단골손님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요즘 음식점에서 급하게 끓여내는 설렁탕과는 음식 때깔이며 맛이 사뭇 달랐다고 한다.

뚝배기에 밥을 퍼서 끓고 있는 국물로 토렴해 식은 밥을 데운 다음 국물은 다시 솥에 따라 버리고 그 위에 국수를 한 사리 얹는다.

건더기는 채반에 가려 담아놓은 혓밑과 우랑, 우신, 혹살 등을 손으로 집어 얹고 큼직한 나무국자로 펄펄 끓는 국물을 퍼 담는다.

설렁탕의 기원으로 가장 유력한 설은 선농단(先農檀)과의 연관설로 서울시 동대문 밖 제기동의 옛 서울사범대학이 자리잡고 있던 곳에는 선농단이라는 제단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이래 농사신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을 모시는 선농제·중농제·후농제를 지내왔는데 그중 선농제만 구한말까지 남게 돼 해마다 나라에서 왕이 직접 매년 경칩 절기 후 해일(亥日) 축시(丑時)에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 행사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 둔 큰 가마솥에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짓고 소는 갈라서 국을 끓이고 돼지는 삶아서 썰어 놓는다.

소를 잡아 끓일 때는 신에게 바친 신성한 희생제물이므로 어느 한 군데도 버리지 말고 끓여야 하고 왕을 비롯해 선농단에 참례한 문무백관과 인근 마을 구경꾼과 심부름하던 노비에 이르기까지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가 설렁탕의 기원으로 가장 유력한 설이다.

하지만 다양한 기원 만큼이나 설렁탕, 설롱탕, 설농탕, 설넝탕, 혹은 중국의 농탕(濃湯)이란 음식에 흰 국물을 뜻하는 눈 설(雪)를 넣어 한자로 雪濃湯이라 표기한 곳도 있을 정도로 용어는 다양하다.

값이 비교적 저렴한 데다 따끈하고 뽀얀 국물에 소면과 고기를 섞어 한 숟갈 퍼 올린 뒤 큼지막한 깍두기를 얹어 한 입 가득 넣는 맛에 설렁탕을 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탕 요리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다.

▶얼큰한 국물의 진수, 생태 매운탕과 쏘가리 매운탕

야외로 나가 만들어 먹는 탕 요리 중에 가장 사랑받는 것이 바로 이 매운탕이다.

주로 생선류를 넣고 끓이는 요리로 국물은 맹물이나 쌀뜨물을 이용하고 건더기는 주로 민물생선인 천어(川魚)를 이용하는데 메기·붕어·쏘가리를 으뜸으로 치며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더하기 위해 미나리나 고추, 쑥갓 등 계절의 향채와 두부, 호박 등을 넣고 끓인다. 천어 외에도 민어나 조기, 대구, 도미, 동태, 준치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생태 매운탕과 쏘가리 매운탕은 보슬보슬한 생태살과 더불어 미나리를 듬뿍 넣은 얼큰한 국물 맛에 가장 사랑받는 매운탕으로 꼽혀 한 끼 식사는 물론 술안주에도 제격이다.

비오고 해없고 약간의 따뜻한 온도가 필요한 날에 생태나 쏘가리를 한 마리 사다가 무를 납작납작하게 깔아놓고 생태와 미나리, 두부 등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이면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쏘가리 매운탕은 다른 물고기에 비해 무겁고 살은 두꺼우며 잔가시가 없고 맛이 담백해 담수 물고기 중에 최고의 맛을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천자어라 했다.

매운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흔히 `지리'라고 부르는 맑은탕을 먹는다.

국립국어원은 `지리'라는 표현보다는 `국'이나 `맑은탕'이라는 용어를 쓸 것은 권하고 있다.

뜨겁고 매운 것이 특징인 매운탕의 맛에 외국인들은 적응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국물요리임에는 틀립없다.

▶밥상 위의 단골 메뉴, 김치찌개

우리네 밥상에는 대부분 국과 찌개가 따른다.

간단한 반찬 차림일 때는 국이나 찌개요리 중에서 한 가지만을 놓는 경우가 있어도 국과 찌개가 모두 생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겸상 이상에서 찌개는 여러 그릇에 떠놓는 일은 거의 없고 뚝배기나 냄비 한 그릇에 끓여 낸다.

찌개는 채소·두부·어패류·고기 등 여러 가지 식품을 함께 섞어 끓이는 것이 특징이며 뚝배기 등에서 오래 끓이면 여러 가지 재료의 성분이 함께 어울린 종합적인 맛을 내는 우리나라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사실 찌개라는 용어 자체가 김치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설도 있어 모든 찌개는 김치찌개의 변형이라 보는 시각도 있을 만큼 김치찌개는 김치의 또다른 형태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찌개 요리다.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김치찌개에 넣는 김치는 새우젓과 마늘, 파를 듬뿍 넣어 푹 익힌 김치여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시어버리거나 푹 익힌 김치는 국물의 맛을 진하고 깊게 해주고 얼큰한 맛을 더한다.

추운 겨울.

밥상에 올려진 얼큰한 김치찌개를 한 숟갈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있으랴.

 

◇인천의 맛집

▶대청도 -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인천시청사를 등지고 왼편으로 내려오면 푸른색 건물의 대청도 건물이 눈에 띈다. 우럭백숙으로 불리는 우럭 맑은 탕이 제 맛. 끓이면서 거품을 살짝 걷어내면 보슬보슬한 우럭살과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 가격대는 2만5천∼3만 원으로 다소 높은 편.

▶서울집 - 동구 화수동의 화수부두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인천에서 매우 오래된 집으로 얼큰하게 끓여내오는 서대탕이 일품. 가격은 1만∼1만5천 원선. 인적이 적고 남루해 보이는 집이지만 오랜 손맛 만큼이나 단골도 많다. 인천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봤다는 유명한 맛집이다.

▶중앙설렁탕 - 중앙면옥으로도 불리는 설렁탕 전문집. 미리 나온 날계란을 보글거리는 뚝배기에 담아내온 설렁탕에 풀어 먹는다. 중구 신포동 국민은행 건물 뒤편에 골목 안쪽으로 위치해 있으며 가격은 5천500원. 옛맛을 유지하고 있어 장년층 및 노인층이 자주 찾는다. 큼직하게 썰어 내놓는 깍두기도 설렁탕의 맛을 더한다.

▶경남횟집 - 중구 신포시장 안쪽에 위치했으며 회와 매운탕을 전문으로 한다. 특히 우럭 매운탕이나 민어 매운탕이 일품. 요즘은 민어철이 아니므로 우럭 매운탕을 주로 한다. 굵직한 우럭살에 미나리를 듬뿍 얹어 내온다. 가격은 2만∼2만5천 원선.

▶구봉산 - 남동구 구월동 길병원사거리에서 남동경찰서 방향으로 150m 정도 가면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다. 고기를 파는 곳이지만 점심에는 김치찌개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뚝배기에 각각 1인분씩 찌개를 내오는데 푹 익힌 김치로 찌개를 끓여 국물이 진하고 얼큰하다. 가격은 6천 원.


〈※ `인천의 맛집'은 인천시내 음식점 가운데 일부로서 고객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다는 점을 밝힙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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