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멍석이여/티끌마저 이 아침/아름다운데//좋은 일들이/넘쳐나게 많구나/봄날의 벚꽃//학이 노니네/저 멀리 높은 곳에/설날 해맞이//매화 향기여/새들은 잠재우고/밤이 새도록//휘파람새야/목 터지게 울어도/눈 덮인 후지(富土)”
 
에도막부 시대, 일본을 찾은 조선통신사에게 일본 여류시인 치요조(千代女)가 지어 바친 일본의 시가 형식으로서 한국의 시조 정도에 해당하는 `하이쿠'(俳句) 21구 중 일부다. 
 
제11회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한 1763~64년(영조 39) 가가번(현재 이시가와현)이란 곳의 최고 행정관인 번주(蕃主) 마에다 시게미치(前田重敎)의 명으로 족자 6폭과 부채 15자루에 하이쿠를 써서 번의 토산품으로 상납했다. 당시 조선통신사 우두머리인 정사(正使)는 조엄이었고, 이 사신단 일행에 영-정조 시대를 대표하는 서얼 문인 성대중도 동행하고 `일본록'이라는 기행문도 남기기도 했다.

손순옥(58)중앙대 일어학과 교수는 저서 `조선통신사와 치요조의 하이쿠'(한누리미디어 펴냄)에서 이 일을 주목하면서 “사절단의 일행 중 일본의 서민문학인 하이쿠를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물질적 선물보다 정신의 표현인 시를 선물로 택했다는 것은 가가번이 조선을 문화적 이상국으로 존중함과 동시에 학문을 중요시했던 번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양국의 우호관계를 증명하는 하나의 표징으로도 볼 수 있다”고 적었다. 
 
손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에도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치요조의 하이쿠 100여 편을 소개했다.
 
“나팔꽃이여/두레박 감아놓아/얻어 마신 물”(`나팔꽃')이라는 하이쿠는 아침 일찍 밥 지을 물을 길으러 우물가를 찾은 여인이 두레박에 휘감긴 나팔꽃 줄기를 발견했을 때의 감정을 단시로 읊은 것이다. 
 
손 교수는 “치요조는 작품을 헌상하고 난 뒤 그 감격과 기쁨을 보존하고 싶어 21구를 따로 한 장의 종이에 깨끗이 써서 직접 표구해 가보로 전하고 있다”며 “당시 대중의 시였던 하이쿠를 선물로 바쳤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296쪽.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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