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우스꽝스러운 유니폼을 입고 우중충한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에 고정된 시뻘건 눈을 해서는….” 1991년 6월 25번째 생일을 앞둔 스티비 스미스는 `인생 공황'에 빠졌다.

  프랑스OECD 본부라는 근사한 직장에 다니던 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린 것이다.  50년 후 “진정한 내 인생이 아니었어. 내가 진심으로 선택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어”라고 회고하게 될까 두려웠던 스티비는 `진심으로 선택한 삶'을 위해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단, 조건이 있었다. 비행기나 자동차 대신 자전거, 페달보트 등으로 `몸으로 때우는' 여행을 하는 것. 스티비는 대학 동창인 제이슨에게 여행을 제안했고 둘은 의기투합해 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세계 최초의 `무동력 지구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스티비 스미스가 쓴 `25세, 인간의 힘만으로 지구를 여행하다'(전2권. 디오네)는 1994년 7월 영국 그리니치에서 출발해 99년 5월 미국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사실 여행은 한심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고통을 늘릴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사전 훈련조차 하지 않았던 이들은 여행을 떠난 지 5일도 안돼 길을 잃어버렸고 바다에 나가기 전 날 술판을 벌여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며 보트의 페달을 밟았다.  자동차 전용다리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경찰에 발각돼 쫓겨나기도 했고 사소한 일로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이들의 여행기는 그래서 더 큰 공감을얻는다. 텐트 쳐본 경험도, 자전거를 열심히 타 본 적도 없는 이들의 좌충우돌 세계여행은 노련한 탐험가의 영웅적 이야기보다 더 깊이 와닿는다.

  이들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티비는 영국의 한 해변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며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고, 제이슨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인도네시아 섬들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여행 중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스티비와 제이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진심으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느냐'라고. 유쾌한 모험담이지만 마냥 쉽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정은지 옮김. 각권 232-248쪽. 각권 8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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