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는 어릴 적 월미도에서 형과 친구들이 함께 통통배를 타고 소풍가던 기분으로 다녀왔던 그 시절에 멈춰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지금이야 공항으로 출입하는 입장이라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어릴 적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산과 논길을 버스타고 다니던 그때만 못하다.

 어릴 적 눈으로 봤을 때도 인천 도회지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섬의 풍경은 지금도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듯한데 개발의 뒷전에 밀린 일부 지역에서만 그 흔적을 볼 뿐 나머지 지역도 반듯하게 솟은 건물로 예전 영종도의 풍경은 퇴색했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천국제공항이 대규모 갯벌매립을 통해 건설됐고 신도시와 공항고속도로가 조성돼 과거의 흔적은 주변에 솟아있는 산으로 대충 짐작할 정도로 상전벽해를 실감케 하고 있다.

 현재 영종도에서 가장 큰 변화를 실감케 하는 곳은 공항배후단지로 조성된 공항신도시로 하루에도 수백 대의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공항 옆에 오붓이 자리잡고 있는 공항신도시를 찾아봤다. 〈편집자 주〉

영종도는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제비가 많아 자연도(紫燕島)라 불렸는데 지금은 제비 대신 수백 명의 사람을 태운 제트여객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긴마루라는 뜻을 가진 영종도(永宗島)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북으로 세력을 넓히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던 조선 효종 무렵인 1653년부터로 남양부에 소속됐다.

이후 1875년 인천부로 이속됐다가 1914년 부천군으로 편입됐으며 지난 73년에는 옹진군에서 들었다고 89년 중구로 편입돼 영종동으로 개칭됐다.

지금도 일부 토착민들이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공항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논밭에서 나는 곡물과 갯벌에서 조개를 캐며 풍족한 생계를 유지했으며 멀리 연평도까지 나가 조기를 잡기도 했다고 한다.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공항방향으로 10여 분을 달리다 신도시IC로 접어들면 아파트와 상가가 밀집된 마을이 나온다.

   
 
   
 
이곳이 인천공항 배후단지로 조성된 공항신도시다.

지금은 6천852가구, 1만6천여 명이 거주하는 영종도 내 최대 도시로 주민들이 오붓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살고 있다.

공항신도시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 주민들은 대한민국 1%의 특권을 누리는 도시라고 자부하고 있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사는 곳에서 5분 거리에 산과 녹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10분 거리에는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공항과 청라경제자유구역이 있으며 30분이면 서울도심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최근에는 공항철도 운서역이 생겨 김포공항까지 20여 분, 서울도심까지 30여 분이면 도착이 가능하고 곧 영종경제자유구역 570만 평 개발이 가시화되면서 외국학교와 인천대교 등 각종 건설사업으로 도시가치가 향상되는 특권의 도시라는 이름표가 따라 붙는다.

   
 
   
 
공항신도시는 인천공항 건설과 함께 만들어졌다.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인천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갯벌을 메꿔 조성됐는데 이곳은 지금의 공항신도시와 자유무역지역에 원래 자리잡았던 삼목도와 공항고속도로 신불IC가 자리잡은 신불도를 허물어 조성된 것이다.

지난 90년 우리나라의 국제항공수요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유발된다는 점 때문에 영종도가 공항입지로 결정됐고 92년 11월 첫 삽을 뜨면서 대공사가 시작됐다.

외지에서 골재를 반입하지 않고 자체 섬과 산을 깎아 지난 2001년 3월 개장한 인천공항은 세계 허브공항으로 여객 1억 명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평생을 땅에 의지해 살던 주민들의 피눈물도 담겨 있다.

공항에 대한 공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삼목도는 160여 가구 740여 명의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틈나면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 내다 팔면서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고 한다.

삼목도 갯벌은 천혜의 자원으로 조금만 나가면 온갖 종류의 조개가 천지여서 대부분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부수입으로 조개를 캐면서 어느 하나 쪼들린 생활을 한 주민들이 없었다고 한다.

▲ 원주민 강영복 옹
당시 삼목도에 살며 공사반대에 앞장섰던 강영복(73)씨는 “농지도 비옥한 데다 갯벌에서 조개까지 캐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생계를 이을 땅을 잃어버리게 돼 주민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주민들도 국가에서 하는 사업을 막을 길이 없어 보상과정을 거쳐 뿔뿔이 헤어져 타지로도 나간 주민도 있지만 당시 살던 주민들의 70%는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신도시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민들의 희생 속에 개장한 인천공항은 개항 6년째를 맞아 여객운송 세계 10위, 화물운송 세계 2위, 세계공항협의회(ACI)가 주관한 세계공항서비스 평가 2년 연속 최우수 공항으로 선정되는 등 명실공히 세계적 공항의 반열에 우뚝 올라섰다.

공항신도시 주민들은 인천공항의 발전과 함께 도시의 질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권의 도시라고 불려지고 있지만 주민들은 문화적으로나 복지도시로서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종합병원이 없어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육지로 나갈 수밖에 없고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주민자치센터가 있지만 제대로 된 문화·복지시설이 없어 주민들의 갈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주민들은 비싼 통행료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어 오는 22일 대대적인 동전내기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공항신도시 주민협의회 김대영 상임대표 인터뷰

“공항신도시 주민의 힘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참여자치를 실현하고 지역 주민들과 아름다운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겠습니다.”

인천공항신도시 아파트 입주자 대표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인천공항신도시 주민협의회(이하 신주협)' 김대영(51)상임대표는 신주협 활동을 이렇게 요약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통행료 동전내기 운동의 핵심단체로 부상하면서 관심을 끈 신주협은 공항신도시 주민들의 환경, 교육, 문화, 교통, 복지 등 지역의 문제에 대해 앞장서는 신도시 주민들의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신주협은 그 동안 신도시 인근의 공항소각시설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각시설 주민지원협의체와 주민감시단 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공항신도시 유수지정비사업과 삼목석산 보존운동을 전개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내고 있다.

김 대표는 “공항신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주변의 좋은 환경을 갖고 생활하고 있지만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신주협은 이러한 주민들의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신도시 주민 대부분이 그렇듯 영종토박이는 아니다.

지난 2002년 사업관계로 신도시에 정착하면서 상가번영회장을 맡으며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신도시라고 해 봐야 극장 하나 없고 그렇다고 변변한 체육시설이나 복지시설은 물론 종합병원도 없어 주민들이 겪는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다 통행료 감면제 폐지로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민들은 한 달에 40만여 원에 달하는 비싼 통행료까지 물어야 하는 불합리한 점 때문에 최근 신주협 활동은 통행료 감면운동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우리가 통행료를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천에 속해 있으면서도 무료 대체도로가 없는 상황이라 최소한 인천구간은 대체도로가 만들어질 때까지 무료로 해 달라는 것이고 서울구간은 다른 고속도로와 형평성을 고려해 낮춰 달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 대표는 “통행료 문제는 단순히 주민들의 부담만이 아니라 물류비에 포함돼 지역물가를 상승시키고 인력난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경제자유구역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어 정부가 인수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신주협이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심도있는 검토를 통해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건전한 시민단체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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