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이 나던 2001년 9월 11일, 작가 변종곤(55)씨는 브루클린 아파트에서 비극의 현장을 망원경으로 건너다 보고 있었다.

빌딩의 붕괴 장면과 함께 망원렌즈에 들어온 한 쌍의 남녀. 이들은 손을 꼭 잡고 한동안 지상으로 낙엽처럼 떨어져내렸다. 변씨는 이 비극적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신은 죽었는가'라고 외쳤다.

3월 4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신은 죽었는가'에는 당시의 충격을 상징적으로 담은 작품 20여점이 출품된다. 그는 20여년간 뉴욕에 살며 회화와 조각이 결합된 아상블라주(assemblage) 작품을 제작해왔다.

출품작에서는 당시의 비극이 발견되지 않는다. 변씨는 사건 자체를 재현하기보다 화려한 문명과 소비사회의 실상과 허상을 일기 형식으로 표현하려 했다. 신부와 수녀의 키스 장면은 광고사진을 옮겨놓은 것으로, 신의 사망을 치열하게 묻고자 한다. 아홉 개의 열쇠에 붙잡혀 허우적거리는 작품 속 인물은 현대자본주의에 함몰된 현대인의 현실을 웅변한다.

변씨가 아상블라주 작업을 한 것은 빈한했던 미국생활과 관련이 있다. 1970년대 후반, 고향인 대구의 미군비행장 폐허를 사진으로 찍어 극사실화로 재현한 그는 이후 정보기관의 미행을 받는 등 부자유스런 생활을 하다가 1981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감 살 돈이 없었던 그는 주변에 버려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모아들였다. 이 물건들은 그에게 안성맞춤의 작품재료가 됐다. 사전구성 없이 마음 내키는대로 조합한 뒤 여기에 회화적 요소를 가미했다. 그는 "어려움은 예술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다.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긴장이 사라진다. 현실을 불평하면 예술가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9.11 테러의 충격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좋은 창작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변씨는 뉴욕에 흠뻑 매료돼 살고 있다. 현재 사는 곳은 할렘가. 그는 "흑인은 무척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마음을 열면 여기처럼 안전한 곳이 없다"고 들려준다. 그는 이곳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소재로 하루 10시간 이상씩 작업하며 지내고 있다. ☎ 549-7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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