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Neolithic age, 기원전 6천 년~1천 년)는 사람들의 정착(settlement)이 시작되는 시기다. 대부분 강가에 정착이 시도되며 정착이 이루어지면서 최초의 가족(family)이 탄생되고, 한 가족의 자식들이 3개 가족을 구성하면 씨족(clan)이 이루어지고, 씨족이 3곳 이루어지면 최초의 작은 마을(Hamlet)이 생기고, 작은 마을 3곳 이상이면 촌락(Village)이 탄생하고, 그리고 여자는 반드시 외혼(外婚)을 한다는 내용을 이미 소개했다.

최근에 한국신석기 문화가 4단계로 나누어지고 있다. 초기단계는 기원전 6천 년~4천 년으로 융기문(隆起紋) 토기 사용단계이며, 제2단계는 기원전 4천 년~3천 년으로 대표적 유적은 부산시 영선동 패총이다. 제3단계는 기원전 3천 년~2천 년으로 빗살무늬토기가 남부지역에 유행하던 시기이며, 후기 제4단계는 기원전 2천 년~1천 년으로 빗살무뉘가 사라지고, 2중구연(주둥이 부위) 토기가 유행한 시기 등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약 150곳이다. 이 유적들은 주로 대동강과 한강 유역, 그리고 서해안 지역, 두만강 유역을 포함한 동북지역, 그리고 낙동강 유역을 포함한 남해안 등 3곳이다.

신석기시대 석기는 석촉(화살촉), 창, 돌도끼, 조합식 낚시바늘 등이다. 한강변의 암사동 유적에서는 석제 그물추가 출토돼 그물에 의한 물고기잡이가 제시됐고, 강원도 오산리유적과 부산시 동삼동에서도 낚시바늘이 출토됐다.

신석기시대 집자리는 수혈주거지, 즉 땅을 파고 만든 움집으로 오산리 유적에서 14기 집자리는 원형과 타원형이며, 대표적 암사동 유적의 집자리는 길이(장축) 5m, 깊이 1m 정도의 방형 또는 원형집이고. 후기 집자리의 서포항의 집자리는 장축 7m 이상의 장방형 집 등이다.

신석기시대 무덤은 춘천시 교동과 시도 유적에서 확인됐다. 전자는 동굴에 시체와 죽은 자가 사용하던 물건(부장품)이 확인되고 후자는 길이 1.65m의 타원형 돌무지무덤이 확인됐다.

음식으로서 도토리가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암사동, 미사라(한강변), 오산리(양양) 등이다. 부산시 동삼동 패총에서는 도미, 대구, 농어, 감성돔 뼈와 오리 등이 확인되고, 동삼동 패총에서 거대한 고래뼈도 확인됐다. 이 유적에서는 31종의 조개류가 채집됐다. 특히 그것들은 굴, 꼬막, 소라, 바지락, 홍합, 고동, 전복과 우렁이 등이다.

신석기시대 유적 출토의 동물 뼈는 사슴, 노루, 멧돼지, 영양, 산토기, 고양이, 너구리, 물개, 물소와 개 등 10여 종이다.

농경생활 흔적은 뚜렷하지 않지만 북한 궁산리 유적 출토의 돌괭이, 멧돼지 이빨제의 낫, 사슴 뿔제의 땅 파는 도구와 북한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유적에서 피 또는 기장으로 추정되는 곡물이 3홉 정도 출토됐고 이와 함께 맷돌, 저장용 토기, 돌낫 등이 출토됐다.

당시의 의복 제작용 가락바퀴(방추차), 바늘과 실 등이 확인됐다. 가락바퀴는 직경 4~6cm의 진흙제로서 중앙에 구멍이 있다. 이 구멍에 나무 손잡이를 끼워 실을 감아 사용됐다.

당시의 장신구로서 뱀, 개, 새 등의 동물 추상형이 출현하며, 이 표시를 뼈 위에 조각해 목걸이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생활도구로서 가장 중요한 토기는 순서대로 융기문토기, 빗살무늬토기, 단도마연 등이다. 문양처리는 융기문(돌출문), 눌러 찍는 무늬(압인문), 침선문(빗살무늬) 등이며, 마지막 단계는 이중구연(겹아기리) 등이다.

당시 석기는 도끼류는 섬록암제, 석촉과 칼 등은 점판암제, 그리고 숫돌은 사암제 등이다.

신석기시대 한반도 주인공들은 몽고지역에서 황인종과 백인이 혼합된 고아시아족(Paleo-asiatics) 또는 고시베리아족(Paleo-siberians)이라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대해 옛 소련의 시뇌크카노후 학자와 중국 동북지역 학자들은 한민족 기원의 고아시아족 또는 고시베리아족은 기원전 6천 년경 퉁구수족으로 통합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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