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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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신효성 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0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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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얼마 전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3일간의 날씨가 매일 달라 봄인가 싶다가 매서운 한풍이다가 비가 내렸다가 종잡을 수 없는 사흘을 보내고 왔다. 그래도 수목원엔 봄맞이 준비로 사뭇 분주해 보였다. 한껏 부풀린 몽우리가 곧 꽃잎을 열 것 같은 목련 앞에서 추위를 이겨낸 긴장이 기특해 사진 한 장 찍고 팽팽한 개화를 미리 축하했다.
우수도 경칩도 지났다.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움츠렸던 몸을 펴 뒷다리에 힘을 준다. 이젠 삼월. 성급한 가슴이 봄을 보챈다. 햇살 고운 창가에 앉아있으면, 풋내에 헛배가 불러오고 바깥풍경이 부드러워 보여 봄이 터를 잡은 줄 나른한 착각을 한다.
시린 계절을 말아서 장롱 속에 정돈해 놓고 봄맞이에 나섰다. 온 몸의 세포가 열린다. 허물어진 강물이 미립자의 물방울로 안개 되어 퍼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꽃샘추위. 민꽃식물의 포자 같은 스모그가 미필적 고의의 사고를 유발하는 푹한 날, 세상은 변함없이 질서대로 가는데 겉보기 멀쩡한 나만 속이 풀어져 분분하다.
그래서 이맘때면, 헤살거리는 웃음도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꽂은 꽃도 없이 조악한 분장으로 급하게 마무리한 삼류배우의 표정연기마냥 조춘(早春)의 하늘이 서러움으로 다가온다. 시절이 시간과 혼재되어 소심한 가슴에 하강과 상승을 하면서 강한 제트기류를 만든다.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기류를 탄 바람은 강약을 섞어 봄을 시샘한다. 
베란다 한구석에 방치했던 영산홍 화분에 꽃망울이 가득하다. 거들떠보지 않은 계절을 원망하지 않고 겨울잠 자는 지혜로 버려짐을 견뎌낸 천 개의 꿈. 미온의 생기를 흡수해 냉정한 시간을 뚫고 나온 선홍색 꿈이 기특해 보인다.
누에고치의 가장 바깥에서 뽑아낸 질 낮은 괘사가 있어서 속의 명주실이 아름답듯이 안 해도 좋을 공상 덕에 겨울의 어둠을 넘길 수 있었던 영산홍 화분은 새치름한 꽃송이를 달고 만끽할 봄을 준비한다. 흔들림 없는 내공이다.

바람벽에 장식으로 써 붙인 결구마냥 봄이 되면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비평이 지루하다. 끗수가 낮은 사람이 선을 하는 화투 패는 심드렁해 싫증나게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좇아, 내 안의 외침을 자아올려 인위 도태 없는 자성일가를 이루어 보고 싶다.
내 주장의 안목을 믿는 요긴한 자애주의자가 되어 보자. 당장은 지금거리는 이물감이 버겁더라도 나를 구박하지 말자. 타인의 삶을 추심하느라 허비한 시간은 여기서 봉해두자.
우월이든 비굴이든 내 주장을 자양분 삼아 자기감응을 따르라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본다. 여태껏 비판으로 긴장하고 있어서 뻣뻣했던 목이 유연해진다.
여든여덟 살 미수연에도 하고 싶은 꿈 여직 이루지 못해 가슴이 미어지랴, 눈치로만 내비치는 내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 태우며 볶아치랴. 내팽개쳐 둔 꿈을 불러와 푸른 녹을 닦아냈다.
유난하게 추위를 타 굳어져 다물고 있었던 몸에 팔랑팔랑 신호가 온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부드러운 진동이 몸을 깨운다. 못 해, 자신 없어, 허락이 안 돼. 시작조차 해 보기 전에 주눅들어 움츠렸던 마음이 풀린다.
오달진 봄이 사무친다고 경솔하게 대들지 않기를 연습한다. 세상과 맞서려면 흠이나 거품을 걸러내는 수고와 지혜가 필요하듯이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나침판이 필요하다. 차가운 땅을 뚫고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여린 새싹은 만개할 꽃송이를 잉태하고 찰지게 몸을 밀어 올린다.
저만치 봄은 오고 있다.
꽃샘추위는 삶의 묘약쯤이라 해두자.

<필자약력>

*『한국문인』소설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개인 수필집 『사랑은 증오보다 조금 더 아프다』외 공저 다수
*굴포문학 회장 역임
*현재 YWCA 홍보출판위원
*굴포문학회, 부평문학회, 남동문학회 동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이메일 주소:shinsung0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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