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유쾌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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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유쾌한 수다
(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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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여행지에서 만난 그녀들. 유쾌하고 솔직해서 보기 좋았다. 그녀들은 사십대에서 육십대까지 연령대가 20년의 간격이 있었다.
“세상에 나 보고 시어머니 심술 그대로라네. 젊은 지들 비위 맞춰 줘. 입에 착 감기는 맛난 음식 해다 날라. 물렁이 호박죽같이 사는 날 보고 시어머니 심술 그대로 받았다니 이런 억울할 데가 어디 있담?”
“아유, 형님. 우린 뭐 그냥 받기만 했나요? 꼬리 흔들고 애교 부리면서 십 년, 이십 년 형님 말씀에 순종했잖아요. 이 나이에 예쁜 짓 하느라 다 망가졌어요.”
“부모 맞잡이인 형님을 어디 감히 어르고 놀리나. 우리 동서들 혼 좀 나야겠지요?”
짐짓 근엄한 표정이 동서들 웃음소리에 참지를 못하고 어깨를 끌어안으며 웃음보를 터트린다. 연세 지긋한 맏동서가 우리 일행에게 자랑 섞인 농을 한다. 우리 같은 동서 관계를 본 적 있느냐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마음 잘 맞는 동서들이라며, 부럽지요? 은근히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사실 동서끼리는 교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으면서도 마음 터놓고 편하게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사이다. 이분들은 며느리 넷이 모여 사 동서 사단이라며 독특한 우애를 과시했다.

집안에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큰형을 선두로 아들 넷이 의논해 부인들을 위한 이벤트도 열어 주고 단체 여행도 보내 준다고 한다. 남자 형제들이 참으로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시댁일로 가슴에 앙금을 남기지 않게 남편들이 처신을 잘하는 집안이다. 이 집안의 동서들은 만나면 허심탄회하게 속을 열어 조금이라도 고까운 감정이 있으면 털어내 쌓아 두지를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돈독한 관계를 맺기까지는 맏동서의 포용과 남편들의 우애도 한 몫 했으리라 본다. 여자들 마음을 잘 헤아려 주어야 집안이 평안해진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우친 아들 형제들도 존경스럽다.
사소한 이해관계나 별반 득 되지 않는 자존심에 언성 높이고 감정이 상해 시댁 시자만 들어도 속이 상한다는 주부들이 많다. 누구는 시자 들어가는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그랬다. 한 집안으로 시집와서 같은 배를 탄 운명을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풀어간다면 시댁일도 부부사이도 만사형통이겠다. 세상 며느리들이 모두 이렇게 지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 이분들이 돋보이는 것이겠다. 사 동서인 우리 시댁도 남다른 인연으로 지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가장 나이가 많은 맏동서는 작년에 회갑을 치렀고 막내 동서는 사십을 갓 넘었다고 한다. 같은 집안으로 시집온 지 많게는 사십 년에서 짧게는 십여 년까지 세월의 층은 다양해도 한 집안의 며느리로, 위 아래 동서 사이로 살아가는 애환을 이렇게도 나누는구나. 그네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그러나 처음부터 딱딱 마음이 맞지는 않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한 집안의 며느리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에도 각자의 자리가 다른 데서 오는 입장 차이를 메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옹이진 마음에 눈 흘기며 돌아서 비죽거리는 일도 있었고, 형제 순서보다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는 남편들의 위치 때문에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집안이 시끄러워져 맏형 부부가 먼저 마음을 열고 무조건 끌어안았다고 한다. 밑에 동서 부부는 젊은 세대답게 개성이 강해 쉽게 수용하지 않았다는데 살면서 어려운 일도 겪고 나이도 들고 그러면서 진자리 마른자리 함께 밟는 형님 아우님이 됐다고 한다. 핏줄보다 더 끈끈하게 마음 나누며 여자로 살아가는 삶을 공감하게 됐다는 말이 진하게 와 닿는다. 굴곡과 상처를 겪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자주 얼굴 맞대다 보면 애틋함도 생겨난다.

몇째 시동생이 혹은 몇째 시아주버니가 이 먼 타국까지 과일 바구니를 주문해 보내 주고, 특별히 둘러 볼 여행지를 옵션으로 넣어 주고, 여행 경비를 부담해 주고, 전화로 안부를 물어 주고. 사 동서의 행복한 수다는 끝이 없다. 누구보다 잘 통할 것 같으면서도 속속들이 마음 나누는 사이가 되지 못하는 이율배반이 동서 사이다. 동서끼리도, 남편들의 형제끼리도, 시부모와의 믿음이나 사랑도 원만하면 괜찮지만 어느 한구석 삐걱하는 틈이 생기면 화합하기가 어려워진다. 동기간의 각별한 정을 자랑하는 그분들의 수다가 기분 좋았던 것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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