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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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교육
<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0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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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에게 후천적으로 개발된 재능은 그 사람의 아이에겐 선천적 재능이 된다.’ 글을 모르는 비문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그분들의 설움을 공감하면서 절절하게 와 닿는 말이다. 초등 수준의 읽기·쓰기·셈하기가 전혀 불가능한 완전비문해자가 성인 인구의 8.4%이고, 조금 복잡한 읽기·쓰기·셈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성인 인구까지 포함하면 24.1%가 비문해자라는 통계를 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했다. 그런데 문해교사 교육을 받으면서 실태를 이해하게 됐다.
세상을 사는 데는 여러 가지 익혀야 할 기능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절실한 것 하나를 뽑으라면 단연코 글을 아는 문해능력이다. 그래서 문해교육은 인권을 찾아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비문해자들이 털어놓는 사연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아프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의 시간표를 읽을 수 없어 책가방을 싸 줄 수도, 준비물을 챙겨줄 수도 없었던 옛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이는 분, 은행만 가면 팔에 붕대를 감고 가서 창구 직원에게 팔을 다쳐서 글씨를 못 쓴다며 대필을 부탁했다는 할머니, 단독주택에 세들어 살 때 우편함에 들어있는 남의 집 우편물을 잘못 가져와 돌려주지 못하고 잘게 찢어 버린 일을 지금도 미안해하는 분, 자식에게조차 문맹이 들킬까 평생을 조바심으로 수치 속에 사셨다는 분…. 가슴에 쌓인 한을 털어내며 눈물로 웃으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비문해자는 대대다수가 여성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남존여비로 차별받고 가난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경우가 많아서다. 손자에게 생일카드를 써주고 싶은 할머니는 교실 문을 나서면 배운 글자를 잊어버리고 책을 덮으면 깜깜해져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세상을 사는데 빛이 되어줄 문해교육은 이분들에게 희망이고 자기 삶의 당당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떳떳한 재산이다.
사례 발표 시간에 5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결혼해 서울 수유리에 사는 딸네 집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이번 역은 수이리역입니다.’ 안내방송을 놓칠까봐 조바심이 나서 귀를 집중하고 긴장하다 보면 손에 땀이 나고 수이리 역에 내리면 심신이 지쳐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문해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한글을 읽게 될 무렵, 딸네 집 가는 지하철 노선 어디에도 수이리역은 없고 수유리역만 있어서 당황한 아주머니는 주변을 둘러보고 익숙한 풍경에 목이 메었다고 했다. 온몸의 세포를 열고 초긴장으로 집중해 들었던 역은 수이리가 아니고 수유리역이었다. 이제는 손녀에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버스도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노선보고 탈 수 있고 영어도 배우고 세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졌다며 좋아하셨다. ‘세탁기가 고장 나서 A/S 신청을 했는데 어느 회사 제품인지 묻는데 알아야 대답을 하지. 당황해서 쩔쩔 메다가 그냥 와 보라고 했는데 그 회사 제품이 아니었어. 이제는 SAMSUNG도 알고 LG도 알잖아. 어느 회사 제품인지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어서 타 회사 A/S 기사에게 민망할 일도 타박들을 일도 없어.’ 삶이 달라지는 공부 평생하면서 이 좋은 세상 열심히 즐겁게 받은 만큼 봉사하며 살겠다고 하신다.
비문해자는 생각 외로 젊은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계층에 분포한다. 이분들이 세상에 눈을 뜨고 자신감을 확보해 사회적 관계 형성에 참여해 봉사도 하고 공동학습으로 시민 자질 확보도 해서 더 나은 양질의 삶을 살아가도록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싶다. 저임금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은데 직업 활동에도 상승 작용을 해 자격증을 따거나 상급하교 진학으로 학위도 받고 주위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한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손이야 내 손이지만 내 눈으로 못 찍었지. 70평생 내 눈으로 찍어본 적이 없어. 이제는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찍고 싶어.’ 다음 선거에는 후보자들의 면면을 꼼꼼하게 살펴서 구의원이고 국회의원이고 참 인재에게 내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할 것이라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문해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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